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
이정훈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젊음은 죽음이란 단어와 친하지 않다. 젊음이란 피어나는 꽃이며 생기로 가득한 시간이다. 그곳에 소멸과 죽음이란 음울한 기운은 느낄 수 없다.  젊음 뿐인가.  살아 있는 누구도 죽음과 거리를 둔다. 나이가 들어서도 죽는다는 것은 그저 머릿속 상상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생물학적으로 죽음이 가까운 나이에 이른 사람들이 그렇게 돈과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아무도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존재란 본능적으로 죽음을 회피하고 삶을 사랑한다. 사람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오직 죽음을 목격할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은 그러므로 귀중하다.  누군가의 장례식에 들렀을 때 풍겨오는 그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납골당 선반위에 도열한 유골함과 영정사진들. 사람은 이런 경험들을 통해 죽음과 간접적으로 만나고 한층 성숙해지는 법이다.


여기, 한 청년 사업가가 있다.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장례사업에 뛰어들어,  8년만에 대한민국 상위 1% VIP 장례기획 분야 1위 기업을 일구어 낸 <중앙의전기획>의 대표 이정훈이다. 그는 30대 초반 아버지의 장례업을 돕다 천편일률적이던 장례 사업분야의 블루오션을 개척한다.  정.재계 유명인사들의 장례식과 순직경찰, 소방공무원, 군인 등 대한민국이 슬퍼하는 특별한 장례식의 뒷편에서 그는 장례기획자로 맹활약했다.  장례기획자는 일반 장례업에서 다루지 않는 독특한 분야다.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장례 분야를 개척하고 이젠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시킨 30대 한 청년 사업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 한 권이 등장했다.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느낌이 있는 책, 2015년)이다. 


자기계발서와 같은 제목이 붙었지만 청춘보고서 같은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가 견디어 온 가난하고 근성있는 청춘의 시간들이 그의 글을 받침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로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96년 갓 대학교에 입학 후 스무 살의 나이였다. 서울의 명문대학교에 다니던 누나는 감자로 하루 끼니를 때우며 버스비도 없이 걸어서 과외를 다녔고, 아버지는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취를 감춰 오랫동안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군문을 나온 후 집안은 한 겨울 보일러 기름조차 뗄 수 없는 지경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는 이 때, "나란 존재의 무기력함에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그는 빨리 돈을 벌어 집안을 건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행을 결행한다.  유학자금 800만원을 목표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출국 2개월 앞둔 시점에 유학원에 송금하려던 돈을 잃어버린다. 300만원 때문에 일본행을 포기하려다 어머니가 어렵게 모아둔 돈을 지원받고 결국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이때를 기억하며 "지금의 나를 키운 것은 온전히 어머니의 희생 덕분"이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의 든든한 뿌리였고, 그 뿌리가 있었기에 흔들릴 지언정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학생 신분으로 왔지만 목적은 일본에서 돈을 버는 것이었기에 일자리를 찾고자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언어와 지리, 문화에 문외한인 그에게 일본에서의 일자리찾기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겨우 구한 일자리는 한 여름 도시 전역에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며 일본에 온지 한달만에 15kg의 몸무게가 줄기도 했다.


그는 이후, 식당 서빙과 청소, 번역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일본의 2년제 대학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했다. 유학 초기엔 돈을 벌고자 했으나 어느 순간 삶은 일본어와 디자인 공부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가 열정에 찬 일본 생활을 정리한 것은 또 한 번 모아둔 학비를 사기 당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유학와 친하게 지내던 한살 위 형이 학비로 모아둔 돈을 들고 튀었고, 그는 결국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일본행은 실패한 셈이었다. 목적한 돈과 공부 그 어느것도 성취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서 경험을 지금 성공의 발판으로 생각한다. 일본어를 마스터한 것과 실내 디자인을 공부한 것은 훗날 그가 청년 사업가로 크는 데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지금의 작은 실패가 결코 영원한 실패는 아니란 교훈을 준 시간이었다. 


" 동경에 있는 기숙사에 여장을 풀고 내게 남은 전 재산이라고는 배낭 하나와 원화 17만 원이 전부였다. 타국 땅을 밟은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육체 노동을 시작했고 한 달 사이에 15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졌다. 일본에서의 생활 자체가 도전이었다. (중략..) 누구의 도움도 구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은 내면에 잠들어 있던 동물적인 생존본능을 일깨웠다.  살고자 하는 야생적 본능이 풀을 뜯던 온순한 동물을 사나운 육식동물로 변화시켰다. "   115쪽, 이정훈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


그가 일본 유학 이후, 장례업에 뛰어든 것은 아버지의 일을 곁에서 도우면서부터다. 젊은 나이에 장례업을 한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죽음을 꺼려하는 사회 분위기, 장례업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장례를 통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육체의 종말을 보면서 삶에 대한 허무함과 생에 대한 강한 집착"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는 직업적 체험을 통해 죽음이란 의례를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의 에세이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깊은 통찰과 혜안이 돋보였다.  이것은 죽음을 다루며 삶을 성찰해온 습관 덕분일 것이다. 


그는 기적을 믿는 사람이다. 기적이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VIP 장례기획사를 정상에 올려 놓은 지난 8년 동안 그는 무수한 기적과 만났다.  처음 VIP 장례 시장에 뛰어 든다고 했을 때, 채 1년을 못 버틸 거라 확신한 사람이 99%였으며 그 가능성을 믿은 사람은 1%, 곧 그 자신뿐이었다.   지방대학을 겨우 졸업했다고 말하는 그가 지금 대학 강단에 서서, 인문학과 장례기획을 강의하고 있는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 놓기 위해, 고군분투한 8년간, 그는 책을 쓰는 사람이 되는 새로운 꿈을 가졌고 그 꿈을 결국 실현시키고야 말았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글을 쓸 때면 영혼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는 그는 그 두 시간을 투자해 6개월만에 책 한 권이 될 만한 분량의 원고를 생산해 냈다.


" 나에게 일은 배움이고, 배움은 곧 놀이다. 나에게 일과 놀이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꿈꾸는 자는 꿈 안에서만 논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일을 생각할 때면 심장이 뛰고 흥분된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에 대한 묘한 흥분을 느낀다. 일을 사랑한다는 것은, 일 자체가 내가 `나로서' 살아가게 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는 증거다 "   226쪽


청년의 성공담은 놀라운 기적이지만 그 자체로 위험하다. 청년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때이른 성공'이란 말도 있다. 너무 이른 성공이 자만과 교만을 불러오고 결국 인생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30대에 튼실한 기업을 일군 청년들이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경우를 흔하게 보게 된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성공담을 책으로 엮었고 많은 독자를 끌어모았지만 결국 실망을 불러오곤 했다. 무엇이 이른 성공과 실패를 불러오는가.  나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되돌아봄, 곧 성찰이란 단어로 정의한다. 성공과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상에 올라서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자만하지 않고 겸손해지는 법이다.  실패하더라도 지나치게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 사람은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부와 권력은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생의 진실이다. 죽음은 평등하며 죽음은 외롭고 죽음은 단출하다.  돈과 권력, 인연과 관계, 기쁨과 슬픔, 원한과 증오 모두를 내려놓고 가야하는 것이 죽음으로 나 있는 길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이 길을 비껴갈 수 없다. 그러니, 돈보다 권력보다 명성보다 중요한 것은 매순간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다.  30대에 장례기획사를 일구어 성공의 반열에 오른 청년 사업가 이정훈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기획하며, 삶을 배워가는 사람이었다. 돈도 권력도 없이 처절한 밑바닥 젊음을 견디어온 사람이기에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말에는 진실과 공감이 담겨 있다. 


새벽 시간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업가는 흔치 않다. 책 속에는 삶의 상처와 가난과 고통을 이겨낼 보물들이 가득하다.  죽음을 기획하는 업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그는 인생을 오독하지 않을 듯하다. 삶 자체가 성찰의 기회로 가득한 젊은 사업가의 책 속에선 성공의 비결 하나가 등장한다. 그것은 곧 `죽음의 재발견'이다. 그는 "죽음의 끝에서 생을 발견하는 순간, 가족이라는 무거운 부담감은 살아가는 기쁨이 되고, 직장이라는 반복적인 굴레는 생산적인 에너지로 변한다"고 해석한다.  인생을 대하는 이런 성숙하고 의젓한 자세야 말로 독자들이 진정 주목해야 할 이 책의 고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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