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특별 보급판 세트 - 전9권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미생> 열풍에 동참했다.  9권짜리 만화책을 며칠에 걸쳐 읽었다.  짧막한 나의 소감은 드라마 <미생>이 훨씬 재밌다는 거다.   유머나 풍자 보다는 `공감'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웹툰이다. 현실성이 없는 드라마 같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생>은 비교적 든든한 현실 위에 이야기의 집을 짓는다.  더군다나 밋밋한 직장생활의 애환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것이라지만, 그래서 식상할 수 있다. 직장생활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라고 결론 내리면 더 이상 할 말 없다.  현실성 있는 주제를 공감가는 톤으로 풀어내는 드라마는 귀하다. 언제가부터 텔레비전은 드라마 천국이 돼 버렸다.  하루도 드라마가 빠지는 날이 없다.  그런데, 현실을 감추는 드라마 일색이다.  어쩌다 드라마에서 낯익은 `현실'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미생>처럼 열광하기 마련이다. 

 

지금 <미생> 열풍은 우리들이 정말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텔레비전을 켜면 뉴스는 거짓말을 하고 드라마는 세상을 감추고 예능은 맥락없이 웃긴다.  텔레비전은 우리 시대에 진짜 바보상자가 돼 버렸다. 드라마 <미생>을 본 사람들마다 공감간다고 말한다.  겨우 이 정도 캐릭터, 이 정도의 스토리에 저 열광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드라마 시간대를 맞춰가며 볼 자신이 없는 난 <미생>의 원작을 읽겠단 생각을 했다. 미생에서 내 직장생활을 보고 내 동료들의 얼굴을 보고 우리의 일을 되짚었다.  뜬금없이 이런 질문이 앞선다. 윤태호 작가는 직장생활을 해보고 이런 작품을 쓰는 것인가.  몇 군데 작위적이고 별 내용없고 지루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런대로 선전했다고 본다. 

 

사실, 종합 상사의 깊이 있는 비지니스를 우리가 어떻게 알 것인가.  이 작품도 그런 부분에선 한계를 보인다.  일은 하는 하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은 할 수 없다.  작가는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척 하지만 결국 사람들 사이의 이야길 하고 있다.  미생은 바로 캐릭터에 집중하게 한다. 그들 사이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다. 모든 직장에서의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힘들지 일은 힘들지 않다'  어떤 캐릭터가 내 상사인지, 내 후임으로 들어오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서 풀리지 않으면 일은 보이지도 않는 법이다. 그게 직장생활임을 실제 경험이 없을 윤태호 작가는 잘 꽤고 있다.  직장에서의 하루가 행복한 것은 정말 일 때문이었나.  뛰어난 성취 때문이었나.  사람 때문이다.  사람간에 소통이 되면 일은 이미 끝난 것이다.

 

모든 상사들에게 이상적인 후임은 바로 주인공 `장그래' 아닌가.   그는 일단 공손하고 예의바르다.  요즘 신입들 스펙이 얼마나 다채롭나. 그런 스펙에 견줄만한 능력있는 상사 사실 없다.  하여, 신입들은 자뻑하기 쉽다.  자기 소신 강하고 할 말은 한다.  경험이 없을 뿐이지 일처리 상사보다 더 깔끔하게 잘 한다. 그런데, 소위 말해서 `싸가지가 없다'면 직장생활 꼬이는 출발선에 선 것이나 진배없다.  장그래는 고졸 출신에다 2년 계약직이다.  스펙도 형편없고 파리목숨이다.  그런데, 내용상 상사들에게 인정받는다.   왜 그랬을까. 정직원이 되겠다는 정직한 욕심을 표출하면서도 시킨 일 군소리 없이 잘 처리한다.  신입은 인사성 좋고 시키는일만 잘 해도 통과다.  장그래가 2년이 지나고도 정사원이 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사회적 요인에 의한 패착이다. 

 

오차장, 항상 눈이 충혈 돼 있어 웹툰에서 토끼눈을 한 인물. 사내 정치나 직장 상사로서 갑질 같은 것엔 관심도 없다. 그는 언제나 일에 치여 산다. 그의 꿈은 승진이 아니다.  지금 직장에서 오래 생존하는 것.  그는 직장이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떤 인물들과 일하든 어떤 일을 맡든 그는 그 모든 것에 동화되어야 한다.  무채색, 그것이 그의 색이어야 한다.  끝까지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  높이 일찍 날아오른 사람들, 허튼 욕심을 부리다 샛길로 빠진 이들이 당도한 회사 밖 `지옥 풍경'을 그는 목격했다.  그 사이에 낀 10년 차 `김대리' 역시 이상적인 장그래의 상사이자 오차장의 후임이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 능숙하게 조율하고 적절히 질책하고 응원하는 분위기 메이커.  그러니까,  <미생>의 종합 상사 내 영업 3팀은 드림팀이다.  일단 캐릭터 구성이 아주 훌륭하다. 이런 인적구성 현실엔 쉬 없다.

 

<미생>은 캐릭터의 이상적인 팀 구성 때문에 또 다시 비현실적이란 멍에를 질 판이다. 뭐, 웹툰이나 드라마가 얼마나 현실을 보여주길 바라겠는가. 이것만도 감지덕지다.  `미생'이란 단어는 바둑에서 왔다.  사람들은 이 작품의 제목에 일단 끌린다. 미생은 바둑에서 사석(死石)과는 달리 살 여지가 남아 있는 집이나 대마 혹은 그 돌을 이르는 말이다. `미생'의 반대편에 `완생'이란 말이 있다.  미생은 생사 여부가 아직 명확히 갈려있지 않은 상태, 가능성으로만 똘똘 뭉쳐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작가는 우리네 직장에서의 삶을 바둑판 위에서의 위태위태한 승부와 그에 따른 승패에 비유하길 원했다. 바둑은 여러모로 삶에 빗대어지지 않는가.  바둑용어는 흔하게 통용된다.  포석, 대마, 사활, 장고, 훈수, 묘수, 자충수, 정석.  이 모든 단어들이 세상사와 엮인다.

 

장그래에게 오늘과 내일은 미생이다. 그는 한국 기원을 나와 들어선 첫 직장 원 인터내셔널에서 결국 `미생'으로 남는다. 그에게 정직원이란 완생은 오지 않았다. 그러면 오차장과 김대리 처럼 정직원들은 이미 완생에 이르렀는가. 웹툰의 끝에서 이들은 직장을 나와 새로운 사업을 도모한다. 그들에게 원 인터내셔널은 완생의 무대가 아니었다.  <삼국지>를 10번 읽으면 인생이 보인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믿던 시절도 있었다. 난 <삼국지>를 아직 읽지 못했다.  <미생>이 인생과 직장생활의 교과서라고?  상술이다.  삶이 그리 간단하겠는가.  <미생>만이 아니라 평생을 독서해야 한다.  그러고도 삶을 알 수 없다고 고수들은 전한다.  <미생>의 결말은 씁쓸하다.  허무하다.  윤태호 작가는 의외로 말미에 허무한 대사들을 심어놓았다.  이것이 그의 고갱이요 통찰력이다. 

 

" 업무만 아니라면 크게 부딪힐 일도, 사적으로 시간을 나눠야 할 필요도 없는 관계."  " 이런게 회사였지"

" 일 하나 하면서 무슨 일씩이나 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을까."  "학원이 아니라고, 여긴 직장이라고, 공부하지 마! 공부해서 와."

" 이런 거에 충족감 느껴봐야...(성취)  우리만 힘들어진다고요 (허무)"   

" 그런데, 왜 외롭냐  "  232-234쪽,  <미생> 제 9 권 

 

그들은 매번 혼신을 다해 일한다. 목숨을 내걸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 손에 회사의 운명이 내 걸렸으니까.  그런데, 그래봐야 월급쟁이다. 9권짜리 드라마가 이렇게 허무한 대사들로 마무리 되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허무개그 같은 마무리가 마음에 든다. 왜 직장인들은 깊은 외로움을 느껴야 할까.  월급쟁이의 일은 자아실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현시켜도 임원으로 고속 승진을 해도 그가 증명해낸 실적은 그를 대신해 누구든 그 자리에서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월급쟁이의 비애는 그를 대신할 수많은 `보충병력'이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자아가 대체될 수 있느냐가 직업과 예술을 가른다. 그래서 모든 예술가는 가난해도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자아의 유일성을 증명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내세울 때, 그는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다. <미생>을 읽는 독자가 아니라 <미생>을 지은 윤태호 작가가 바로 그다. 

 

모든 직장인들이 <미생>의 캐릭터와 닮진 않았다. 현실의 캐릭터는 훨씬 다면적이다.  그들은 한 때 장그래였거나 김대리였다가 오차장이었지만, 사내 비리로 퇴출되는 `박과장'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겠는가.  박과장보다 훨씬 더 `나쁜 놈'들은 드라마처럼 쉽게 퇴출당하지 않는다. 그들의 직장 내 생명력은 질기다. 처세의 달인들은 얄밉게도 승승장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가 그 얄미운 상사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야기 밖의 직장인들은 그런 `현실의 미생'위를 살아간다. 직장인을 괴롭히는 것은 직장 상사나 회사 만은 아니다.  정치에 기반한 정책은 때로 직장인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흔들기도 한다.  사는 일은 본래 치열하다.  동서양의 성인군자를 직장안으로 가져다놔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쉽지 않은 싸움을 매일 반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직장인의 숙명이다.   완생은 바라지도 않는다. "핵심은 남아 있는 것이다.(237쪽, 미생 9권)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답이 여기에 있다.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내게 `자아실현'은 필생의 꿈이었다.  직장을 잡곤 그게 1순위에서 밀려나 2순위다.  1순위는 밥벌이다. 굶고서 자아실현은 난센스다. 잘 살기를 바라진 않는다.  평균치가 가장 무섭다. 남보다 잘 살지 못해도 남같이는 살아야 한다. 직장 생활 10년 차, 대리에 이르자 그 생각도 또 약간 달라졌다.  1순위와 2순위는 똑같이 중요하다.  단지, 피치못한 순위경쟁일 뿐이다.  2순위가 1순위로 바뀌는 것을 모든 직장인은 꿈꿔야 한다.  자아를 잃는 것과 자아가 없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언젠가부터 저축에 목숨걸지 않는다. 세월호 이후, 젊은 청년들 사이에 떴다는 한 가수의 동영상 강연의 제목은 "늙어 잘 살기 위해 오늘의 아메리카노를 참지 말라"였다.  백배 공감이다. 언제 어떻게 생을 끝마칠지 모른다. "핵심은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근사치에 가까운 인생의 답이 참는 것이라면, 그게 다라면 참다가 인생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리자.  참는 것과 즐기는 것은 같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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