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후, 인생길 - 독서 100권으로 찾는
한기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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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10년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한다.  실제로 세상은 많이 변했다.  10년 전 스마트폰은 상상할 수 없었다.  요즘 스마트폰 보급율은 2013년 기준 73%나 된다.   개인적으로도 1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  10년 전, 나는 변변치 못한 직장을 퇴사하고 시골에서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직업도,애인도, 결혼도, 출산도, 집도, 자동차도 상상할 수 없는 처량한 청춘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곤 비정규직을 전전했다. 월급은 적었고 차별은 일상사였다. 지금은 그 때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졌다.  안도감을 드러내거나 자랑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과 그 어둠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운일 뿐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다.  운이 없었다면, 기회를 잡지 못했을테고 지금 숱한 청년들이 같은 고민으로 아파하듯이 내 인생도 별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밑바닥 청춘을 지나오면서도 내겐 든든한 자존감이 있었다. 가끔 여행을 떠났고 여행을 떠날 땐 책 몇 권은 꼭 챙겨 넣었다. 주머니에 돈이 궁했지만 지금처럼 책 몇 권 사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현실이 척박했지만 책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시골에 내려왔을 때, 내 가방에 잔뜩 들어있던 책은 이외수의 전집이었다. 책속에서 젊은 시절 이외수의 가난과 외로움을 만났다. 그 쓸쓸한 소설을 읽고보니 내 위치는 `꽃자리' 같았다.  다시 일어서야 할 용기 같은 걸 얻었다.  빈털터리 청춘에게 자존감을 선물했던 것은 바로 `책'이었고 책 속에서 만난 누군가의 삶이었다. 10년 전과 달라진 것은 많지만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책읽기다.  고민과 궁핍의 종류가 달라졌을 뿐, 삶은 고뇌를 주는 것이고 여전히 나는 책을 통해 길을 찾는다. 

 

교양도서(고전) 100권, 관심분야 도서100권으로 누구나 삶을 재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출판 마케터와 출판 평론가로 30년 동안 출판계에서 종횡무진해온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이다.  그는 신작 <마흔 이후, 인생길>(다산초당,2014년)에서 독서 200권을 통한 100세 시대 은퇴설계 방법과 마흔 이후의 인생 2막 40년을 준비하는 독서론을 설파한다.  독서 200권은 결코 많지도 적지도 않다. 지난 10년간 내가 느리게 읽고 써낸 서평은 겨우 300편 남짓이다. 10년간 꾸준히 읽어왔는데도 그 정도다.  그는 "어떤 분야든 입문서에서 전문서까지 100권만 읽으면 전문가 못지 않은 안목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이후, 고전 100권을 더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을 근본부터 이해하기 위해서란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인문학으로 약칭되는 것이 고전 100권이다.

 

마흔 이후가 됐든, 은퇴후가 됐든, 사람은 정말 책 200권으로 삶을 재설계 할 수 있는 걸까.  삶을 바꾸는 데 책은 어떤 역할을 하며 대체 사람들은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저자는 출판평론가로 일해오며 수많은 책을 읽고 출판 시장의 흐름을 짚어왔다.  이 책엔 저자가 출판계에 발을 들여논 시점부터 세상을 쥐고 흔든 책이 소개되며, 그 책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왔는지 분석하는 안목이 드러나 있다. 저자에게 책을 읽는 일은 출판시장의 동향을 통해 사회를 읽고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그들의 궁핍을 읽고 미래를 읽는 일이었다. 또, 그것은 감추어진 책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이었고 한 권의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삶을 바꿀 수 있는지 파악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가 그 오랜 시간 책을 읽어오며 얻은 확신은 책이 사람의 인생에 개입한다는 점이다.

 

"일반 교양은 원래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즉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학문'이라고 부릅니다.  교양은 어떤 상황에서도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세상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론을 담고 있기에 인간성이나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인맥을 형성하게 만듭니다. 좋은 지인, 좋은 친구가 늘어나면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는 법이 아닌가요? " 11쪽, 한기호 <마흔 이후, 인생길>

 

책과 동고동락한 30년 내공을 통해 저자는 책 200권을 섭렵한 독자가 자신의 삶을 재설계할 수 있는 근거와 방법을 풀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고도 성장기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대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었다.  열아홉에 `스카이'에 입학하고, 졸업후 대기업에 입사하기만 하면 퇴직까지 고용이 보장되며,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도 순풍에 돛단배 같아서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은? 한해 석,박사만 수만명을 배출하지만 스카이가 아니라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힘들다.  60세 정년은 옛말이고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으로 고용이 흔들린다.  운 좋게 정년을 다 채운다해도 60세 이후, 100세까지 40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인생 2막에 대한 준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30대는 싸고 품질 좋지만 조립해서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스웨덴 가구 이케아를 닮았다 해서, `이케아 세대'라 불린다. 고용불안에 지치고 미래가 암담해 절망에 빠진 이케아 세대는 취업,연애,결혼,출산,양육이라는 정규코스를 거부하고 `지금 이 순간 잘 사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부모세대는 스펙을 쌓으라고 강요했지만 이젠 스펙으로도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그들은 성공을 꿈꾸며 자기계발서를 탐독한 세대기도 하다.  학교는 어떤가.  스마트폰으로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과 접속할 수 있는 시대에 아이들을 하루 16시간씩 형틀에 묶어놓고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을 외우게 하는 것이 교육의 실상이니, 학교를 폐쇄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진국의 대졸자들은 인도나 중국같은 신흥국의 대졸자에게 고급 노동력을 염가할인하는 역경매 방식, `글로벌 옥션'으로 일자리를 빼앗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학벌과 스펙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을 양산해내는 교육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세상이 원하는 인재의 가치 기준이 바뀌어가고 있단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전문지식과 스펙은 산업구조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전공지식과 스펙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세상은 이제 `엑스퍼트'가 아닌 `프로페셔널'을 요구한다. 정보나 단순 지식을 검색하는 것은 스마트폰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지식을 편집하고 통찰하며 거기서 중요한 컨셉을 끌어내는 힘은 오직 다양한 책을 읽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적 능력이다.  

 

" 정보에 대한 접근 능력이 아무런 경쟁력이 되지 않는 시대에는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정보를 끄집어내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해 가치를 발생시키는 능력의 소유자만이 시대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 또한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중요한 부분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망각하는 능력, 즉 콘셉트를 제대로 뽑아내는 훈련을 제대로 한 사람만이 갖출 수 있습니다. "   261쪽 

 

입사한 후 습관처럼 영어 공부를 했다. 내가 영어 공부를 그만두고 오직 무위할 것 같은 책읽기에 올인 한 시점은 입사 후 5년이 지나서였다. 영어가 특별히 필요치 않아서기도 하지만 20년을 공부해도 제자리 걸음이었던 영어를 버리고 선택한 책읽기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직장 생활하며 더 많은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서평을 쓸 기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읽기와 쓰기는 한 권의 책에서 중요한 정보를 골라내고 그것만을 내것으로 섭취하는 연속된 훈련이었다.  내가 백수로 지내던 청년기 책읽기는 자존감을 건네준 통로였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사람은 좋은 일자리, 많은 돈, 큰 평수의 아파트, 사치스러운 자동차 같은 걸로 가치를 잴 수 없는 존재란 말이다.  행여, 그것을 잃는다 해도 존재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삶을 포기하는 이유가 때로 그것 아닌가. OECD 최고 자살율이 이를 뒷받침한다.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은 인생을 오독하지 않는 법이다.  노숙자들이 인문학을 공부하고부터 삶을 180도 바꿨다는 얘기가 뉴스거리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숙자에게 통하는 독서교육의 효과라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얼마나 클 것인가. 저자는 30만 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을 짓고 그 옆에 학교를 세워 하루에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 `독서 모델 학교'를 만들겠단 포부를 책의 말미에 드러낸다.  상상력과 존엄성을 잃어버린 한국 교육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킬 수단은 공독(共讀​)임을 저자는 간파했다. 지금껏 독서는 취미나 점수 따기 경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진정한 독서는 평생 계속되어야 하고, 그것은 목적성이 아닌 무위적인 독서여야 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보유한 청춘도 고작 대기업에 입사해 정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지금 교육엔 희망이 없다.  어떤 역경에도 어떤 문제에도 담대히 맞설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책이다. 하여,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 문제보다 한 권의 위대한 고전을 읽히는 것이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몇 배는 더 가치 있는 일이 된다. 

 

<마흔 이후, 인생길>에서 저자는 책읽기야말로 총체적 난세를 벗어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선포한다. 만약 오늘 내게 불행이 다가온다 해도 내 곁에 책이 있는 한, 나는 잠시 흔들리고는 다시 책을 잡을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행복과 불행에 덜 민감해졌다.  그것은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란 `체념'과 운명은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과 어쩌면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을 건네준 것이 책읽기라서다.  저자는 책읽기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한 권의 사소한 책이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며 단 200권의 책을 통해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확언한다.   지난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되돌아보니 내게 남겨진 것은 늘어난 얼굴 주름과 흰머리 그리고 예금 통장의 갯수 그리고 내가 읽고 소화한 책들 뿐이다.  10년간 읽어온 책이 삶을 바꿨고 지금도 바꾸고 있다.  꿈을 선물하고 꿈을 키워하게 한 것도 책이었다.   책, 그것은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기회이자 인생길의 터닝포인트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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