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성서>는 위대한 책이다. 인류 역사속에서 성서만큼 영향력 있는 책은 없었다. 기독교가 인류에게 전파되는 과정을 보라. 숱한 박해와 핍박이 신자들과 함께 했지만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죽음을 넘어설 말씀이 그 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을 버리고도 따르고자 한 가르침이 담긴 책은 흔치 않다. 복음이 한 문화권을 잠식해 공인되는 과정은 비슷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은 더욱 절박한 신앙으로 모든 고통을 이겨냈다. 젤롯(zealot)이란 단어가 있다. `열심'을 의미한다. 신앙적으로 흔히 열성적인 사람, 혹은 광신적인 신자를 표현한다. 이 용어는 1세기 유대교의 한 분파인 열심당(Zealots)에도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 시대, 평화가 아닌 무력을 통해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한 유대인 집단이었다.
레자 아슬란은 미국의 종교학자다. 1972년생인 그는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1979년 이란 혁명을 거치며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그가 미국의 주류 종교인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한 과정은 자의반, 타의반이다. 1980년대 미국 사회에서 모슬렘으로 사는 일은 화성인 취급을 당하기에 제격이었다. 9.11를 겪기 전이지만, 미국 사회는 타자들에 관용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앙을 키웠지만, 훗날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며 그의 기독교 신앙은 크게 흔들린다. 그리고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결코 환영받지 못할 책 한 권을 썼다.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라는 전제를 깔고 신앙의 대상이 아닌 1세기 유대 역사 속 예수의 흔적을 추적한다.
예수를 역사안으로 초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예수의 생애와 자취를 신약성서 외의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1세기의 팔레스타인 땅 유대의 정치적 위치는 유럽과 지중해 전 지역을 아우르는 제국, 로마의 주변적인 속국이었다. 더군다나 예수라는 인물은 그 유대땅 가운데서도 `가난한 갈릴리 농촌마을 나사렛의 시골뜨기' 출신이었다. 로마제국의 걸출한 역사가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예수를 알지 못했고 언급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하여, 레자 아슬란은 역사문헌이 전무한 상황에서 예수를 복원하는데 일종의 우회로를 통한다. 신약성서의 기자들이 보도하고 있는 예수의 공생애를 따라가며 실제 1세기 유대 땅의 정치,사회 지형을 로마의 공인된 역사와 교접하는 것이다. 이것은 망가진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공인된 로마의 역사속에서 유추된 예수의 삶은 설득력이 있다.
퍼즐조각을 이어붙이는데 아슬란은 두가지 `성역'에 손댈 수밖에 없었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과 `성서무오설(聖書無誤說)'이다. 성서에 기록된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졌고 하여 오류가 없다는 믿음이다. 반면, 아슬란은 적지 않은 역사적 오류와 의도적 왜곡이 신약성서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신약성서는 신앙공동체의 고백을 기록한 책으로 예수의 언행에 관한 직접 목격담이 아니며, 살아 생전에 그를 알고 있던 사람이 기록한 책도 아니다.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의 기록은 기원 후 70년 직후로 예수가 죽고 40년이나 흘러서 기록되었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생애 가운데 많은 부분을 빠트렸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기원후 90년에서 100년 사이에 마태와 누가 기자는 개별적으로 독자적인 전승을 덧붙여 복음서를 새롭게 쓴다.
신약성서가 예수 사후 수십년에서 1세기가 지난 후, 당대 수집된 다양한 문헌을 통해 조합되었다는 점과 그것을 기록한 이들이 역사적 인물보다는 신앙적 대상으로 예수를 묘사하는데 집중했다는 것은 유의미하다. 아슬란은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는 예수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단 두가지라고 확언한다. 첫째, 예수가 1세기 전반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민중 운동을 일으킨 유대인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그러한 예수를 로마 당국이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는 사실이다. 아슬란은 이 두가지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이 나사렛 예수(역사적 예수)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만들어낸 순한 목자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가정이다. 즉, 예수가 실제로는 유대지도층과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혁명가의 모습일 거라는 추정이다.
20년간, 아슬란은 예수의 삶을 연구했다. 그 최종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그는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수상'을 수정한다. 예수는 평화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였고, 또 육신으로 오신 하느님이었다. 그는 세상의 일에 초연한 사람이었다. 신약성서를 읽는 독자들은 예수가 발딛고 살았던 세계의 역사를 잘 느낄 수 없다. 그는 시간적으로 짧고, 공간적으로 좁은 1세기 로마 제국의 유대 땅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격이 다른 생명의 언어로 말하고, 죽은이를 살려내고 병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선보인다. 대속(代贖)의 의미를 지닌 장엄한 죽음과 부활의 신비가 펼쳐진다. 그것은 역사가 아닌 `계시의 드라마'였다. 하지만, 현실의 예수는 포악한 로마제국 아래의 핍박받던 유대인을 이끈 지도자였다. 일본의 야만적인 통치를 경험한 우리는 무력에 점령당한 속국의 지위와 그 민족의 비참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왜 복음서 속 예수에게서 그러한 유대 민족의 궁핍한 역사가 느껴지지 않는가.
아슬란은 예수가 결코 당대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았었다고 믿는다. 로마군의 폭력앞에서 과연 예수는 평화와 사랑을 최우선으로 가르쳤던 유순한 지도자였을까. 어쩌면 역사적 예수는 `열심당(젤롯)'만큼 과격한 민족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1세기, 유대 땅의 역사가 너무나 엄혹했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 2,000년이 흐른 오늘날, 바울이 만든 그리스도가 역사적 예수를 완전히 집어삼켜버린 셈이다.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제자들을 이끌고 갈릴리를 배회하던 혁명적 젤롯에 대한 기억,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의 권위에 반발한 매혹적인 설교자에 대한 기억, 로마에 압제에 도전하다 실패한 과격한 민족주의자에 대한 기억은 역사의 뒤편으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 308쪽 지배자인 로마의 입맛에 맞는 종교를 만들기 위해, 바울은 예수에게서 정치적 색채를 지워버렸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 메세지다.
예수는 진정 어떤 존재였을까. 객관적 역사문헌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설명은 가설에 기반한다. 아슬란은 종교학자다. 그가 복원한 예수는 그럴 듯 하지만, 한낱 소설일 수도 있다. 신앙의 영역에 지성과 합리주의의 잣대를 가져오는 허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압제에 저항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유대민족의 지도자와 만날 수 있다. 바울이 지우려고 애쓴 `과격분자 예수'도 충분히 존경 받을만한 인물이었다. 역사와 신앙은 진실을 공유한다. 나사렛 예수와 그리스도는 한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