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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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하나의 주제를 깊이있게 파고드는 데 재주가 남다른 작가다. 스위스 태생이면서 영국에 적을 두고 있는 이 작가의 책들은 평이하면서도 기발하다. 전작 <여행의 기술>이나 <일의 기쁨과 슬픔> 같은 책을 읽으며 많은 독자들은 그의 박식하면서도 예술적인 문체에 반했을 것 같다.  <여행의 기술>은 여행의 의미를 서구 역사와 문화, 예술로 빗대 풀어 쓴 책이다.  이 책은 우리들의 흔한 여행에 예술(ART)적 관점을 유지하며 여행에 관한 새로운 정의, 즉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닌 `무엇을 느꼈는가' 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춘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지극히 실험적인 저술이다.  일과 떨어질 수 없는 현대인에게 `일의 의미'를 묻고 있다.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보통은 기꺼이 일의 현장에 몸을 던져본다.  

 

그가 어떤 주제를 파고드는 방식은 무척 성실하고 독창적이다. 역사와 예술, 또 철학과 미술, 정치를 분석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의 글에는 서구인의 삶이 녹아들어 있지만, 곧바로 그것은 보편으로 편입된다. 서구주의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문명의 한계 때문일 게다. 하여 그의 저술은 국경을 허물어 버리고 `세계인'의 마음을 사라잡기에 알맞다. 그는 문명을 관찰하고, 그 안에 거주하는 우리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을 응시한다.  역사와 예술에 박식한 그의 문체는 유럽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불안>(이레 펴냄,2005년)은 특유의 박식하고 유려한 문체가 빛나고 있는 보통의 저작이다.  불안은 현대 문명안에 거주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친숙한 감정 상태다.  그러나, 보통이 이 책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지위'에서 발원하는 자본주의 소시민의 불안이다.

 

사회적 동물이란 근본적 한계를 가진 것이 인간이다.  집단에 소속되고 그 안에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짓는 것은 인간의 삶이다.  사람은 개인이 아닌 사회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운명 때문에 그 집단 내의 지위를 무시할 수 없다.  한 집단내에서 평가가 한 사람의 `자아상'을 결정하며, 세상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다고 여기는 순간 삶은 무의미해진다.  현대인에게 지위는 쓸모 있고, 사랑받을 만한 중요한 존재라는 보증과도 같다.  그러니 지위에 대한 갈망은 현대인의 일생을 지배하고 `불안'을 잉태한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원인을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에 두고, 그 해법을 다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에서 찾는다.  일목요연한 분석을 통해 보통이 노리는 것은 불안의 상태가 인간의 역사안에서 어떻게 변주돼 왔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일별해 보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작업은 인간을 억압하는 악몽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암중모색이라고 할까?

 

불안의 감정 상태가 역사를 통해 변주돼 왔고, 그 극복의 방법이 시대별로 다채롭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불안'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적 조건과 숙명일테다.  중세시절 인간의 신분은 성직자, 귀족, 기사, 농민 등으로 정해져 있었다.  한번 정해진 계급은 변경이 불가했기에 지위에서 오는 불안은 크지 않았다. 사회적 지위가 한 인간을 평가하는 잣대로 기능한 것은 근대로 넘어오면서부터다.  평등의 개념이 전파되고, 지능과 능력이 우선시되는 능력주의 사회에 들어서자 부와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책해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현대 자본주의가 이윤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게 되면서, `노동의 진정한 목적이 이제 인간이 아닌 돈'으로 바뀐다.  자본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임금노동자는 상시적 구조조정의 상태에 놓이며, 지위에 대한 불안에 휩싸였다. 

 

소비적 관점에서 인간은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현대의 평범한 소시민의 삶의 편의성은 중세 귀족의 그것을 넘어선다. 발전된 사회와 높아진 소득에서 오는 착시효과는 지속되지 못했다. 곧바로 풍요로움과 함께 자라난 욕망은 우리를 새로운 궁핍함으로 인도한다.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돈이 들기 때문이다.  해서,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현대 소비사회가 유지되는 비결은 정반대다.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해 상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욕망 충족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불안'이 탄생한다.  자신의 풍요를 느낄 사이 없이, 오직 궁핍으로 직행하는 일이 생긴다. 

 

"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  268 쪽

 

알랭 드 보통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을 서술한다.  기원 전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가진 것 없고, 사회적 직분도 없었지만 오직 이성의 힘에 따라 외부적 평가를 거부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소크라테스가 장터에서 모욕을 당한 것을 본 행인이 물었다. "그렇게 욕을 듣고도 괜찮습니까?"  소크라테스가 답한다. " 안 괜찮으면?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고 내가 화를 내야 옳겠소? " 예술은 속세의 가치평가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부자이고 품행이 단정한 것은 곧바로 좋은 사람이 아니다.  소설의 세계에서 덕은 물질적 부나 사회적 지위와 아무 관련이 없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밝힌 하나의 우울한 에피소드는 `정치적 불안'을 제거하는 과정에 힌트를 준다. 1920년대, 울프는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입장하려다 신사 차림의 문지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 칼리지의 펠로와 동행하거나 소개장을 가져오지 않으면 여자는 도서관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이를 통해, 울프는 여자들의 평등한 권리과 고등교육을 박탈당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성공한 작가이자 귀족으로서 사회적 지위를 벗고, 기독교에 귀의한 과정은 `죽음'에 대한 응시 덕분이다.  그가 <참회록>에서 밝힌 이야기에 따르면 죽음 앞에 자신이 이룬 모든 게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다.  기독교는 죽음의 경고(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통해 삶의 불안을 일소한다.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고 말했던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당대의 사회를 회피하고 자신들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하고자 시도한 집단이 있었다.  `보헤미안'이다.  그들이 회피하고자 한 것 또한 지배계급이 파생하는 `불안'이었다.

 

"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 지위에 대한 불안은 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삶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 수밖에 없는 대가다.  그러나 지위에 대한 요구는 불변이라 해도, 어디에서 그 요구를 채울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  384쪽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은 내 서가에서 오랜시간 잠들었다.  출판연도가 2005년인 것으로 보면, 분명 내 서가에서 5년은 잠들었던 게 분명하다.  요 며칠, 읽을 책을 골라보기 위해 서가를 훑어보다 <불안>이란 제목이 선명한 이 붉은 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어느 순간 그때 그때의 기분 상태로 변했다. 요즘 내 감정상태를 설명하는 듯한 책 제목에 끌렸다.  보통에 따르면, 삶은 불안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나의 불안이 해소되면, 새로운 불안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불안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상태지만, 그 원인을 개인에게만 찾을 순 없다.  불안의 본체와 연결된 탯줄의 끝자락엔 사회가 있다.  정치와 경제가 곧바로 한 사회에 속한 개인의 삶의 질과 행복을 좌우한다.

 

정치가 형편없이 조악하면 당연히 그 사회가 형편없어지고 그 개인의 상태가 조악해 진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은 법이다.  정치가 조작과 부실과 무능으로 점철되면 한 사회에 소속된 인간들의 도덕적 잣대와 가치도 흔들리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이 받게 돼 있다.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무책임한 선장은 누가 만들었는가?  한 개인을 탓하기 전에, 그 사회를 돌아봐야 하고 그 사회의 정치와 경제를 눈여겨 봐야 한다.  정의보다 능력이, 인간보다 효율성을 앞세운 정치와 경제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진 않았을까?  정직하지 않지만 일은 잘하는 리더나 노동의 질 보다는 기업의 경쟁력이 최고라는 인식은 지배계급이 심어준 착시적 관념이다.  정직하지 않은 리더는 리더로서 자격이 없고, 인간보다 돈을 모시는 경제는 생명을 경시할 뿐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진실'이지 않은가?

 

불안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알랭 드 보통은 선언했다.  또, 그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 근대성, 자본주의, 현대의 정치와 경제로 돌리고 있는 것 또한 이 책의 주장이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그것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은 모든 인간의 의무다.  여기에 개인의 역할이 있다.  기독교나 철학, 예술에 집착하고 의지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훌륭한 처방전이다. 반면, 보헤미안으로 살아가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지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고 무책임하다.  정치를 바꾸는 일은 어렵고 긴 노력이 요구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불안에서 그치면 무익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면 인간은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 관한 사유를 통해,  우리들이 집착하고 추종했던 서구문명의 `민낯'을 보여줬다.  인간은 지금 행복하지 않고 `불안'하다.  지금,  누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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