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기적 - 죽음과 삶의 최전선, 그 뜨거운 감동스토리
캐릴 스턴 지음, 정윤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1달러 80센트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우리돈 2천원이 못되는 금액으로 말이다.  달리 말해 그 돈이 없어 매년 14만명의 신생아와 3만명의 산모가 사망한다.  아프리카 빈국 시에라리온의 실상이다. 이 나라에선 비위생적 환경의 출산이 일상사다.  탯줄을 자를 때 철제 조각이나 더러운 칼을 쓰는데, 이 경우 파상풍 감염 위험이 높다. 가난해서 백신을 맞을 돈도 없고, 의료지식이 없어 살균 소독에 대한 개념도 모른다.  만약, 시에라리온 가임기 여성에게 3회에 걸쳐 예방접종을 맞게 하면 매년 17만명의 죽을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하루 2만 6천명의 아이들이 사망한다.  이 나라처럼, 깨끗한 물이 없고 영양이 부족하고, 백신 접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데, 이들 나라에선 인명은 `1달러 80센트'인 셈이다.  돈 2천 원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는다. 하지만 하루 평균 소득이 1달러에도 못 미치는 나라에서 2천원은 큰 돈이다.  구호기구 유니세프는 도움이 필요한 적재적소에 구호요원과 물자를 지원해 이 생떼같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유니세프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돕는 일이다. 가난하건 부자건, 엄마의 마음은 한결 같다. 그 엄마의 마음을 가진 유니세프 미국기금 CEO 캐릴 스턴이 지은 책 <제로의 기적>(정윤희 옮김, 프린티어, 2013년)은 지금 서점가의 자선냄비이자,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이 책 한 권을 구입할 때마다 수익금 2천원이 이 아이들을 살리는데 쓰인다.

 

캐릴 스턴은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빈곤국가 아동들의 엄마다. 이 책을 읽어보니 그녀 앞에 엄마란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 미국인이 쓴 책인데 정서가 한국적이다. 몸빼 바지 입은 동네 아줌마처럼 따뜻한 입담이 느껴지는 책이라니 놀랍다.  아프리카 모잠비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고, 구호 현장엔 한번도 가본적이 없던, 나이 50줄의 아줌마 캐릴 스턴은 반인종주의연맹이란 미국내 유대인 조직에서 일하다, 더 다양한 경험을 쌓아보고자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미국기금에 지원하게 된다. 그 이후, 7년 동안 전세계 아동 구호의 현장을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눈물과 감동의 순간들을 만났고 그걸 사람들과 나누고자 책을 펴냈다.

 

책 제목인 <제로의 기적>에는 특별한 의미와 소망이 담겨 있다. 스턴은 홍보팀과 유니세프 기금 모금을 위해 구호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게 바로 `제로의 힘을 믿어요(I believe in Zero)'였다.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아이들의 수를 `제로'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깨끗한 물, 적절한 영양, 필수 백신 접종 등,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혜택조차 누리지 못해 사망하는 아이들이 세계엔 부지기수다.  평범한 우리가 그들을 돕지 못한 건 경제적 문제가 아닌 관심의 부족으로 봐야 옳다. 하루 2만 6천명의 아이들이 사망하는 이 지구촌의 현실을 목도하고, 유니세프의 캐릴 스턴은 그 숫자를 제로로 만들겠단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기적은 곧 현실이 됐다. 숱한 기부금이 모였고, 3억개의 백신을 통해 1억명의 산모와 아이를 살린 것이다.

 

" 유니세프 조사에 따르면 도덕성이 높은 국가에 1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보내면, 사망률을 최대 60퍼센트 이상 줄일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후원과 헌신이 더해진다면 유니세프는 모든 아이를 도울 수 있다. 유니세프 직원들은 사망률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제로'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119쪽, 캐릴 스턴 <제로의 기적> 

 

인도주의와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일은 그 단어가 가진 뉘앙스만큼 근사하고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전세계에서 아동구호가 필요한 지역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전쟁과 테러로 치안이 불안하고, 풍토병과 야생동물의 위협, 예기치 않은 안전사고를 걱정해야 한다. 이 모두를 각오하고 구호요원에 지원했다 해도 현장이란 숱한 배움을 전해주는 교실이다.  책임감과 권위로 뭉친 CEO란 직함은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다. 더군다나 벌레가 무서워 야영조차 꺼려왔던 스턴에게 세계의 오지를 누비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을 듯 하다. 그럼에도, 그는 무려 7년간 이 일에 헌신해 왔다.  자신의 눈 앞에서 살릴 수 있었던 아이를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현장의 한 순간이, 그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워줬다.

 

우린 가끔 TV에서 세계적인 배우나 유명인이 구호현장에 참여해 활동하는 장면을 본적이 많다. 그때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솔직히 그 현장에선 그들의 두눈에 흐르던 눈물이 설정인냥 생각되던 적이 많았다. 그렇게 유명인들이 또하나의 포장지를 자신의 이미지에 덮씌운다 생각하곤 했다.  우연하게 유니세프 미국기금 CEO에 오른, 캐릴 스턴은 횡재를 만난 듯 했다. 하지만, 구호의 현장에서 그가 느낀 것은 죽음과 고통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이 국경과 이념, 피부색을 뛰어넘어 보편적이고 자연스런 본능이란 사실이다. 누구나 생명이 오고가는 현장에 서면 휴머니스트가 되지 않곤 못 배긴다.

 

"  "나는 가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죠.  하지만 신께서 내게 손을 주셨어요. 이 눈도 주셨고요. 난 이 손과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이 멋진 두건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은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신께서 우리에게 손과 눈을 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에 우리 손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친 채 살아간다. 케냐에서 만난 추장은 가진 건 없지만 세상을 두려움 없이 마주할 수 있는 당당함이 있었다. 우리도 아이들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도록, 신이 주신 손과 눈의 능력을 발휘해 그들의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267쪽

 

구호활동을 통해 삶과 세계를 새롭게 배웠다고 스턴은 고백한다.  이 책 속 에피소드 한 편 마다에 진실과 사랑이 깊게 묻어난다. CEO가 쓴 글이 아닌 현장의 말단 요원이 쓴 것처럼 글이 담백하고 소박하다. 구호 현장의 비참한 환경을 통해 자신의 삶에 일어난 아픈 기억들을 치유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모잠비크의 열악한 출산환경에서 만난 로사의 헌신적 모성애를 통해, 자신의 축복받은 엄마로서의 삶을 되돌아 보고, 매년 17만 명의 산모와 아이가 파상풍으로 죽는 현실에서 몇 해 전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한다. 가족의 죽음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구호현장의 진한 눈물들은 증거한다.  우리는 왜 그들을 도와야 하는가?  캐릴 스턴 유니세프 미국기금 CEO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아픔과 상처에 눈물 흘리는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기적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기적을 대개 그런식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유니세프의 구호현장에선 매일 기적이 일어난다.  솔직히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위대한 기적이 어딨겠는가?  세계 최악의 출산 환경을 갖고 있는 모잠비크, 내전과 가난이 점령한 수단의 다르푸르와 시에라리온, 지진의 재앙이 덮친 아이티, 페루 극빈층의 고달픈 삶, 아동 노동이 일상화된 방글라데시. 유니세프를 지원하는 세계인들의 힘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일어난 유니세프의 눈부신 활약을 담담히 기록한 8편의 에피소드는 독자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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