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 제주에 다녀온 적이 있다. 여행자에게 제주는 낯선 풍광을 선물했다.  4월 제주의 바다는 잔잔했고, 육지는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다.  한라산과 세계 최장 용암동굴 만장굴, 성산 일출봉, 기묘한 해안절벽인 주상절리와 폭포수, 그리고 소가 드러누워 있는 지형에서 유래한 우도 등. 4박 5일간의 여행 가운데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낸 적이 없이 제주를 속속들이 보고자 했다. 그럼에도, 섬을 떠나던 날 아쉬움이 밀려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제주에 대해 내가 본 것은 그저 풍광이지 역사가 아니었다.  난 제주를 마치 중국인 관광객이나 된 듯 이곳저곳 보고 즐기는 데 소비했을 뿐이다.

 

제주는 아픔이 많은 곳이다.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제주는 4.3이란 현대사의 흉터를 그 산하에 새겼다.  제주는 20세기 한국민이 당한 일제 수탈의 고통과 6.25를 정점으로 한 피비린내 나는 동족 상잔의 비극을 품고 있는 땅이었다.  제주가 아름다운 풍광으로 소비되기 전에, 그 땅에서 질긴 생명을 이어온 민초들의 굵곡진 삶과 역사를 먼저 기억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제 1 회 제주 4.3 평화문화상이 제정된 후 첫 수상작인 <검은 모래>(구소은 지음, 은행나무,2013년)가 집중해 그려낸 것은 20세기의 제주라는 시,공간과 그곳에 몸 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즉, 제주의 우도 출신 잠녀, `구월'로부터 시작된 4대의 삶과 그 시대였다.

 

구월은 태생적으로 온통 불리한 여건의 삶을 살 운명이었던가 보다. 제주 출신 여성이란 것에서, 평생 물질을 해야했다. 더군다나 태어나자마자 나라를 잃은 신세로 전락했다. 일본 어민들은 제주 앞바다에 나타나 어업 침탈에 열을 올렸고, 그들이 만든 해녀조합에 돈을 바쳐야 그마저 물질이 가능했다. 고향땅에서 물질이 어렵자 잠녀들은 제주와 오사카를 잇는 기미가요마루라는 연락선을 타고, 먼 일본땅으로 출가물질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물질 솜씨를 닳은 구월은 빼어난 잠녀로 성장한다. 어선을 두척이나 보유한 박상지를 남편으로 맞았을 때만 해도 그녀의 삶은 순탄할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해금과 동생 기영을 낳고 난 후 그들은 우도를 떠나 연락선에 몸을 싣는다.  4대에 걸쳐 조국과 고향을 떠나 경계인으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고향 땅, 우도의 해변에는 검은 모래가 있었다. 사람들은 제주말로 그걸 `검멀레'라 했다. 구월네 가족이 정착한 일본 섬 미야케지마의 한국인 정착촌 미이케우라의 해변에도 검은 모래가 있었다. `검멀레' 뿐만 아니라 식민지 제주섬과 다를 바 없이 조선의 이주민 잠녀와 가족들은 차별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다. 삶의 구차함과 더불어 역사 또한 그네들의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통에 나가사키에 일을 보러 떠난 해금의 아버지, 박상지는 미군의 원폭투하로 생사불명의 인사가 된다.  해방 후 6.25 전쟁은 해금의 짝이 될 뻔 했던 한태주를 남북의 싸움터 한 가운데로 불러들인다. 그가 단 하룻밤의 정으로 남긴 자식이었던 건일(켄)은 훗날 자신의 뿌리를 증오하며 어머니 해금과 담을 쌓는다. 

 

역사에 발담근 인물군상들의 비극적 운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방 후, 일본에 잔류한 재일 한국인들을 처리할 목적으로 일본은 북한과 교포 송환 계획을 체결한다. 결국 해금의 동생, 기영은 북한행을 선택하지만 그곳에서 숙청의 운명을 맞는다. 제주 섬 우도를 떠난 후,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게 된 잠녀들의 운명은 가혹했다. 그녀들의 짝은 죽거나 행방불명이 된다.  남편을 잃고, 동생을 잃는다. 가족과 불화하고 차별과 억압의 일생을 보낸다.  평화롭지 못했던 시대탓을 해야 할까?  기구한 개인의 운명을 탓해야 할까?  

 

"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과 동생을 데리고 기미가요마루라는 커다란 연락선을 타고 제주를 떠나오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던 거야, 우리 식구들은 일본에서 돈 많이 벌어서 고향에 돌아가자고 약속했거든. 그러니까 아직도 여행 중인 셈이잖니?  참 길고도 긴 여행이지." 해금은 미유에게가 아니라 창 너머, 켄의 정원 너머 더 먼 곳을 향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먼 고향 땅을 눈으로 밟고 있는지도 몰랐다."  321쪽, 구소은 <검은 모래>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기억이란 과거를 대상으로 한다.  현재는 살아내는 것일 뿐, 기억하진 않는다. 내가 제주에 4박 5일을 머무르며, 단 한 번도 제주의 역사를 생각하지 못한 건,  `과거와 기억'에 대한 우리들의 인색함을 드러내준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현재의 우리가 과거 사람들의 삶과 역사안으로 발딛고 소통하는 일이다.  하여, 이 소설속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해금의 손녀이자 켄의 딸인 `미유'다.  구월네 4대 가운데, 미유는 가장 현대적인 인물이다. 그는 극우 일본인의 후손인 `지로'와 사귀지만 재일 한국인의 후손이란 이유로 이별을 겪는다. 하지만, 미유는 아버지 `켄'처럼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녀는 할머니 해금이 일본에 정착한 후 살아온 삶을 궁금해 할 뿐이다.

 

미유는 해금과 제주 해녀들의 부침많은 인생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일본에서 차별 받는게 할머니와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람이 나고 자랄 곳을 미리 정할 순 없다. 그가 할머니의 삶을 더 많이 알고 싶은 것은, 오직 그네들이 겪어온 지난 과거의 모진 삶이야말로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이 드러날 때, 우린 용서해야 할 사람과 역사를 구분할 수 있다.  해금은 할머니의 삶이 빼어난 물질 솜씨 만큼이나 성실하고 건강했음을 깨닫는다.  최선을 다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시대, 제주에서 태어나, 잠녀로서 살 운명속에 놓인 여인들은, 살기 위해 먼 타국으로 떠나와야 했다. 더군다나 나라를 잃어버린 것도, 원폭에 남편이 죽어버린 것도, 전쟁의 한복판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것도, 그녀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트럭기사 미야케지마 섬 청년 일본인 `토모야'는 해금의 분향단에 고개를 숙이고 그를 추모한다. 작가는 섬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미유와 토모야의 설레이는 미래를 마지막으로 소설을 끝맺는다. 국적과 이념을 넘어 진실을 아는 자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이다. 지금도 일본의 양식있는 시민들은 위안부 문제나 식민지 수탈, 독도문제 등 과거사를 일본정부를 대신해 반성하고 사과한다.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숱한 사건들이 지금껏 해결되지 못한 것은 진실을 고백하고, 낱낱이 기억하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최근 제주 4.3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 교과서를 교과부가 승인한 문제를 비롯, 5.18 역사 왜곡이 일부 보수세력을 통해 버젓이 자행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

 

구소은의 <검은 모래>는 우리 세계에 `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역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우린 이 소설을 통해, 제주 잠녀들의 모진 삶과 그럼에도 바다를 벗삼아 생을 일구어온 민족의 생명력 넘치는 혼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의 우도와 미야케지마 섬, 미우케우라의 검은 모래 위에 지금 따뜻한 햇볕이 평화롭게 쏟아지고 있다.  그 모래밭을 지나 한국과 일본의 잠녀들이 물질을 나갈 것이다. 바다는 무심히 파도로 일렁일 뿐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 평화로운 바다를 파괴하는 인간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파괴의 시대가 오면 구월의 4대처럼, 또다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반복되고,  죽임과 죽음의 운명이 이어질 것이다.  그 불행한 미래를 막아내는 일은 `미유'같이 젊고 명민한 독자의 몫이라 믿는다.  미유는 증오가 아닌 포용, 비난이 아닌 이해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더불어 진실을 발굴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제주에 다녀온지 7년이 지났다. 다시 제주를 찾는다면 갈 곳이 많다. 한라산을 꼭 종주해 보고 싶다. 7년 전, 입산 통제 때문에 입구에서 발을 돌렸던 아쉬운 경험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광지로만 돌았던 일정은 접고, 제주의 역사를 미리 공부하고, 4.3 평화기념관을 가장 먼저 가보고자 한다.  광주에 갈 때마다 망월동 5.18 국립묘지에 들르지 않은 자신을 죄스러워 한적이 많다. 그 땅의 아름다움을 말하기 전에, 그 땅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먼저다.  죄없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잊지 않는 일은 뒷 세대의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명이다. 우리의 불온한 과거를 기억하고, 낱낱이 밝혀 역사에 기록할 때 다시는 그런 오욕과 죄악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오로지 진실만이 과거를 잠재울 수 있다"는 넬슨 만델라의 외침은 하여 여전히 새롭다.

 

 



 

 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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