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힘 -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레이먼드 조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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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이 불행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사람은 셀 수 없이 불행의 조건들을 댈 수 있는 존재다. 사람마다 부족한 것이 다르다.  욕망과 욕구도 다르다.  불행의 목록이 넘쳐나는 건 그 때문이다.  반면,  행복의 조건들은 그 종류가 간소하지만 쉽게 얻을 수 없다.   하여,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행복은 어디서 오는 걸까?  재력과 건강은 행복의 기본 요소다.  삶의 여유를 보장하는 적당한 돈과 육체가 온전하지 않다면 사람이 어찌 말로만 행복할 수 있겠는가?  그래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그리 신용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에 곧장 이르는 고속도로는 있는 법이다.  사람사이의 관계,  소위 만인의 직장인들이 오늘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과감히 사표까지도 던지고 싶어하는 인간관계의 실패다.  일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들다, 는 말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감 백배로 통용되는 문장이다. 모든 관계가 어렵고 힘들지만, 타인과 타인이 하나의 목적의식으로 모인 직장은 인간관계의 최전선이자 긴장감 높은 화약고에 다름 아니다.  인간관계의 비밀을 밝힌 책들이 있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이 분야의 고전적 이론서다.  반면, 신간 레이먼드 조의 <관계의 힘>(한국경제신문,2013) 은 소설 형식을 빌려 인간관계의 황금률을 풀어내는 흥미로운 책이다.

 

물론 딱딱한 이론서보다야 독자들의 공감력과 감성적 흡수율이 월등히 높다.  직장이란 공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내 정치를 그 바탕에 깔면서, 저자는 인간관계의 내밀한 본질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풀어낸다.  문장은 가볍고 이야기는 단순하다.  하지만, 인간관계의 본질을 알려주는 잠언체의 문장들이 깊이 있다.  이 간소한 이야기 속에선 현실과 밀착한 직장인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관계를 다루는 이론서들이 가진 치명적 약점이 있다.  가르침대로 행하면 관계가 이상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인간 관계의 실패 가능성을 열어두는 점이 마음에 든다. 더불어 지극히 한국적인 직장과 비지니스 상황을 책으로 옮겨온 것도 눈여겨볼 만 하다.

 

국내 최대 완구업체인 `원더랜드'의 창업주 백회장의 장례식장에서 기획 2팀의 `신팀장'은 조문객의 접객과 안내를 맡는다.  원더랜드는 백회장이 죽은 후,  두 아들인 큰 백이사와 작은 백이사 사이의 경영권 쟁탈전을 예고하고 있다. 어떤 라인에 줄을 서느냐에 따라, 앞날이 바뀔 운명에 처한 직원들은 두 파로 나뉘어 대립한다.  `신'은 장례식장에서 백회장과 고향 친구라는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신에게 성공하기 위해선, 행복해지기 위해선, 인간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신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회의적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산을 강탈한 숙부들과 사회에 적응하며 경험한 경쟁관계의 삭막함을 통해, 그는 동료 인간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신에게 말을 걸어온 노인네는 원더랜드의 공동 창업주인 조이사로 밝혀진다. 작은 백이사 라인에 줄을 댄 신은 조이사로부터 위임장을 받아내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조이사는 위임장을 내걸고 신에게 일주일에 한 명씩 친구를 만들어 그 과정을 레포트로 제출하라는 조건을 내건다. 이야기는 이제 인간에 대한 짙은 회의와 비난에 익숙한 신이 조이사의 숙제를 풀어내는 가운데 인간관계의 숨겨진 진실을 찾는 과정을 담는다.  신이 연륜과 지혜가 넘치는 `조이사'라는 멘토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풀어가며 조이사는 인간관계의 해법에 관한 통찰력 있는 잠언들을 쏟아낸다. 

 

" 자네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끈들이 이어져 있네, 그 끈들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인생의 전부라네....정말 그게 전부라네"

" 무슨 거창한 끈이기에 인생의 전부라 단언하시는 겁니까?"
"관계"     51쪽, <관계의 힘> 레이먼드 조

 

조이사라는 인물은 현자일까?  젊고 패기 가득하지만, 관계에 상처받아 독기를 품은 신이란 인물에게 관계를 회복시키는 치유자 역할에 충실한다. 하지만, 그는 공동창업주로 알려진 백회장에게 사업적이자 인간적인 배신을 당하고, 회사에서 쫓겨난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 인물이다. 그도 한때는 백회장을 넘어뜨릴 기회가 있었지만 그걸 실행하진 않는다.  자신의 사사로운 복수심 하나로 수많은 직원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관련 업체들이 부도를 맞았다면, 그것은 겉보기엔 이겼지만 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수보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잃어버리면 모두걸 잃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를 배신과 책략, 속임수가 난무하는 정글로 생각한다.  그렇게 때묻히고 살아야 남보다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조이사의 삶과 생각은 그 반대편에 가 닿고 있다. 

 

반칙을 통해 앞지른 삶은 겉보기의 성공과 다르게 또다른 반칙과 증오를 남긴다. 백회장의 반칙과 증오가 그 형제들에게 되물림 되어, 우애를 넘어선 경영권 쟁탈전으로 변질된 것이 그 증거다.  조이사는 사업의 성공 조건으로 먼저 사람을 상상하라고 가르친다. 구체적 실행방법은  "관심, 먼저 다가가기, 공감, 진실한 칭찬, 웃음" 이다. 서툴지만 신은 레포트를 쓰며 팀원들에게 이 다섯가지를 하나씩 실천해 본다. 결과는 의외였다.  먼저 상대에게 관심을 주었더니 고스란히 되돌아 왔다.  대화를 시작하려면 먼저 대화를 청하라.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남이 나에게 대우받길 원하는 바대로 먼저 행하라.  바로 인간관계의 황금률(golden rule)이다.  3세기의 로마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문장 한 구절을 금으로 써서 거실 벽에 붙였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  황금률의 기원이 된 일화다.

 

"관계가 끊어지면 모든 걸 잃는 거야......물론 힘들고 고통스럽겠지.  하지만 관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네.

상처를 주는 것도 인간이지만,  상처를 치유해줄 유일한 약도 인간이라네.

그게 인생이야"     229쪽

 

사람은 동물이나 식물에게 상처받지 않는다. 사람은 오직 사람에게 상처받기 마련이다. 인간을 배신하는 것은 오직 인간이다. 하지만, 상처받는 것이 무서워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삶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삼라만상이 관계 짓기로 엮인게 세상이다.  코스모스를 보라. 행성 조차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한다.  관계를 포기하는 것은 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을 관계의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것이 이 책의 가르침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그 누구도 일방적인 피해자나 가해자는 없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하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비난'이 아닌 `연민'이다.  행복에 관한 오랜 연구들은 노년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사랑'이며, `관계'라고 단정한다. 업무능력이 출중한 사람보다 대인 관계가 원활한 사람이 훨씬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행복의 90%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고 잘라 말한다.  달라이 라마는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도 했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관계를 회복하라.  작가 레이먼드 조의 따뜻한 우화 한 편이 얼어 있는 당신의 심장을 녹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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