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구소련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대를 나왔다.  그의 출신지와 대학이 자리하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민스크 등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직접 피해지역이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경 우크라이나 공화국 수도 키예프시 남방 130km 지점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총 4기의 원자로 가운데 마지막 4호 원자로가 폭발했다. 구소련이 몰락 후 공개된 KGB 보고서에 따르면 체르노빌은 1982년에도 방사능 오염 사고를 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방사능이 유출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체제는 이것을 비밀에 부쳤고 원전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무시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제작된 체르노빌 원전의 부품은 불량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는 총체적 인재였으나 이후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km 주변 인근 100개 마을이 거주 불능 및 사용 불가능 지역으로 선포된다.  또, 인근 12개 주 2000개 마을이 방사능 피해를 입었고 방사능 구름대는 전 유럽으로 번져나갔다.  직,간접 인명 피해는 300만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 어린이는 100만명에 육박했다.  몇 해 뒤 기형아 출산과 사망이 두 배 증가했고, 어린이 암 환자가 10배에 육박한다.  피해 주민의 60%가 갑상선 질환에 걸렸다. 폭발이 발생한 후 소방대원들은 즉각 출동해 화재를 진압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제대로 된 방호복을 입은 이는 없었고, 대부분 며칠 후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한다.  구 소련 당국은 사건 자체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무려 36시간이 지난 후에 주민 소개를 명령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소련은 체르노빌의 사후 수습을 위해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을 투입한다.  그것은 또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체르노빌 사고는 실화이며, 이것은 20세기의 대재앙으로 기록된 역사다.  저자 스베틀라나는 스스로를 체르노빌의 증인이라고 밝힌다. "무서운 전쟁과 혁명이 20세기를 지나갔지만 체르노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건" 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 권의 책에 담고자 했다.  "미래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붙은 (<체르노빌의 목소리>, 새잎 펴냄)는 소방대원으로부터 마을 주민, 아이, 해체 작업자, 군인 등 체르노빌을 겪은 모든 사람들의 경험담이자 증언록이다. 2005년 전미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한 문제작이다.  과거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미래를 예언한 책으로 부상했다.  책 읽는 시간이 힘겨울 때가 있다. 바로 이 책과 같이 고통을 경험한 이들의 가감없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경우다.

 

"무언가 듣지도 못한 것이 나의 세상을 파괴했다.  그것이 기어오르며, 내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과학자와의 대화가 기억난다. `수천 년은 갈겁니다' 그가 설명했다. `우라늄이 붕괴하려면 238번 반감해야 하는데, 그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10억 년입니다.  토륨의 경우 140만년입니다.' 50, 100, 200년, 그 이상이라고? 그 이상은 충격이야!  그때부터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건가? "   190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소방대원 바실리 이그나텐코는 갓 결혼했다. 아내 류드밀라와 항상 손을 잡고 다닐 정도로 사랑이 넘쳤다. 남편은 그날 새벽 " 창문 닫고 자, 발전소에 불이 났어, 빨리 들어갈게" 라는 말을 남기고 체르노빌 원전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 방호복은 없었다.   방사능의 분진, 열기 속에서 불타는 흑연을 발로 차며 불을 껐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화재인줄 알았지만, 그곳은 시간은 수천 뢴트켄이 흘러나오는 방사능 지옥이었다.  아침 7시 남편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서둘러 달려갔지만 경찰은 구급차가 피폭됐으니 다가오지 말라는 소리뿐이다.  남편은 온 몸이 부어 있었다. 남편은 곧바로 모스크바로 이송됐고 그 후 14일간 급성 방사능 장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14일간 사람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시간이었다.  괴물처럼 변해 죽어가는 남편옆을 지키고자 하는 아내 류드밀라에게 누군가 소리친다. " 잊지 마세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남편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전염도가 높은 방사능 물질이이에요.  죽고 싶어요?  정신차리세요"(42쪽)

 

바실리 보리소비치 네스테렌코는 전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방사능 피폭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물리학자였다.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 4호기가 폭발할 때, 그는 모스크바에 출장중이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중앙위원회 일등 서기관 슬륜코프에게 전화했으나, 그와 연결되지 않는다. 정부 전화는 KGB의 도청을 받고 있었고, `사고'라는 말만 꺼내도 통화가 끊어졌다. 4월 27일 발전소에서 불과 수십킬로 떨어진 우크라이나 경계의 고멜 주에 갔다. 시간당 3만 퀴리가 넘는 방사능 오염지역이었지만 사람들은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있었다. 다가오는 부활절 준비로 케이크를 굽고 시장은 흥정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방사능 구름 아래서... 1등 서기관 슬륜코프에게 위기 상황을 보고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슬륜코프는 곧 모스크바로 승진돼 전보될 예정이었다. 그는 상부의 지시에 충실해야만 앞날이 보장된 관료였다. 

 

" 핵 전시 훈령에 따르면 핵사고, 핵 공격의 위협이 발생하면 바로 국민을 대상으로 요오드 치료법을 시행해야 한다. 위협이라고 했다.  여기는 이미 방사선 수치가 시간당 3천 퀴리였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권력을 걱정했다. 사람의 나라가 아닌 권력의 나라였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데엔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 생명의 귀중함은 온데간데 없다."   361쪽

 

두가지 예화는 일부다. 수천,수만 명의 비극적 사연이 존재할 것이다.  이 책은 그 가운데 극히 일부를 담아냈다.  공산주의 소련 체제는 정보에 대한 통제 아래, 생명보다 권력을 지켜내는데 열중한다. 수킬로 떨어진 마을 주민들은 폭발 당시 화재를 보기 위해 집 옥상에 올라가거나, 발전소 주위에 몰려들기도 했다. 정보가 통제된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공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은 어느날 갑자기 체르노빌 소집 명령을 받는다. 수많은 군인들이 명령에 따라 체르노빌 수습작업에 동원 된다.  헬기 조종사들은 수천 뤤트켄의 방사능이 흘러나오는 지붕 위에서, 정확한 조준을 위해 헬기 창문을 열고 모래와 납, 흑연 등을 떨어뜨린다.  그들은 훗날 공산당의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거의 대부분 피폭으로 사망한다.  만약 그들이 희생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조사에 따르면, 유럽 전체가 영원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저자가 왜 체르노빌을 20세기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생각하는지 명확해 진다.

 

체르노빌은 과거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도 과거의 일이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책에서 배웠다. 체르노빌은 기억 저 편에도 없다.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다는 반증이다.  사람들은 발생한 일은 옛일도 치부하고, 발생하지 않은 일은 가정으로 위안을 삼는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리석다는 표증이다. 20세기는 물리와 과학의 세기였다. 인간이 나약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고 지배하는 존재로 격상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과학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체르노빌이 후진적이고 전체주의적 기술과 권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선진적이고 자유주의적이다. 그럼에도, 그들 정부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 최고의 안정성과 기술력을 자랑했다. 원전 사고는 인간의 힘으로 수습될 수 없다는 것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보여준다.

 

지금부터라도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겠다는 오만을 버리고 자연의 일부로서 겸손해질 순 없을까?   방사능 사고 후 검출되는 세슘이나 스트론튬 등 수백개의 방사능 물질은 자연상태에선 검출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인공 물질이다.  인간의 자만과 오만이 잠든 지옥의 물질을 현실로 가져온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인간의 DNA를 변형시킴으로써, 암과 기형을 유발한다.  한번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토양에선 사람이 살 수 없다.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초과한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고 한국어판 서문을 끝맺는다.   체르노빌은 정말 과거일까?  그것은 그저 한갓 교훈이며  역사일까?  혹시 인류의 낯익은 현재이자 미래는 아닐까?   이 책을 읽는 이들은 분명 이러한 고통스런 질문과 마주하게 될 테다.

 

 

 

 

 

2013년 10월 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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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2013-10-27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원자력으로 얻는 전기는 편해서 좋기는 하지만 사고가 나면
수습이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같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책을 사서 읽고 싶군요. 글을 스크랩 해 갑니다. 그리고 제 네이버 블로그에도 올리고 싶네요.
원치 않으시면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평안한 저녁 되세요.

개츠비 2013-10-30 14: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문제의식을 공유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