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셜록 홈스처럼 살고 싶다 - 돌직구 표창원의 나의 인생, 나의 공부 이야기 대한민국 실천 지성의 살아 있는 공부이야기 1
표창원 지음 / 다산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대선 이후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에 대한 인지도가 확 늘었다. 대선 기간 중 일어난 사건과 논쟁 덕분이다. 대선 투표 다음날 그가 벌인 프리허그 이벤트엔 셀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이 행렬을 이뤘다. 이 열풍 한 가운데 `정의'에 대한 갈망이 있다. 말로 정의를 이야기하긴 식은죽 먹기다. 행동으로 그것을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이 세상의 인심이고 법칙이다. 그런데 이 법칙에 역행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나타났던 거다. 바로 한국의 몇 안 되는 프로파일러 범죄 전문 수사관이자 경찰대 교수로 알려진 표창원 박사다. 대선을 즈음해 그에 대한 호칭이 바뀌었다. 인터넷에선 그를 `표창'이라 부른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정의에 대한 신념을 표출하는 돌직구 언행앞에 사람들은 `표창스타일'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과히 스타의 탄생이다.

 

지난 대선 때 그는 소위 국정원녀 댓글 조작사건에 휘말려 들었다. 범죄 의혹을 사고 있는 국정원녀 오피스텔 앞에서, 경찰은 `문 좀 열어주세요'란 뉘앙스를 뽐내며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후 표창원은 왜 경찰은 `경찰상 즉시강제'로 시건 장치를 부수고, 오피스텔에 진입해 범죄 증거물을 수집하지 못했는지 경찰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발표했고 이것은 경찰공무원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이 될 게 뻔했다. 얼마 후, 그는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판단과 자유인으로서 발언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며, 경찰대 교수직을 사임했다.

 

표창원의 회고록 <나는 셜록 홈스처럼 살고 싶다>엔 대선 당시의 심경이 프롤로그에 상세히 담겨 있다. 프롤로그의 제목도 "인생 2막, 내 삶에 터진 핵폭탄"이다. 경찰대 사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 날, 그는 밤을 꼬박 지새웠단다. 그 긴 밤 동안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 내렸단다. 독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념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 그는 ` 40 여 년 동안 살아온 삶의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하는 과정을 겪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한다. 표창원은 어떤 사람일까? 그간 많이 궁금했다. 그가 대선 전 후로 보여준 인상적인 행동들은 감동 그 이상을 불러왔기에 말이다. 간단히 말해, 우린 정의가 종적을 감춘 시대에 불의를 향해 자신의 밥그릇을 던진 `기인'의 탄생을 목격했던 것이다.

 

표창원의 인생이야기인 이 책에는 40여 년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직업 군인이었던 엄한 아버지, 생활력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강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반항기와 싸움꾼으로 그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이의 교육, 가난,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연락을 끊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린 시절 자주 다퉜지만,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교육열 만큼은 남보다 뒤진적이 없었다. 표창원은 학창시절을 보내며 특유의 반골 기질을 드러낸다.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와 부잣집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하며, 자존심과 반항심으로 학업에 매진해 좋은 성적을 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무도 수련은 인생에서 정의와 약한 자에 대한 연민, 그리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회상한다.

 

" 무엇보다도, 정의에 대한 무한한 열망, 나보다 약하고 힘든 이들을 돕고 지키고 싶다는 삶의 방향을 몸에 깊숙이 각인하게 된 것도 무도 수련 덕분이었다.특히, 이론과 방법을 배운 뒤 실제로 행해보고, 잘되는 것은 반복하며 익히고, 잘 안 되거나 실패한 동작, 기술은 궁리하고 탐구해서 개선책을 찾아내는 `공부하는 태도'가 습관화된 것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성공비결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42쪽, <나는 셜록 홈스처럼 살고 싶다>, 표창원

 

회고록은 주관적인 기록이다. 하여, 과거의 삶을 미화하고 싶은 유혹에 저자가 굴복하기 쉽다. 하지만, 표창원의 글에선 정의를 가르치는 교사다운 결벽성이 엿보인다. 잘못된 것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의 단도직입적 태도는 오히려 담백하고 진실하다. 학창시절부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선생님의 몽둥이도, 학교의 규제도, 처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장했던' 반골 기질이 자라기 시작했다. 훗날 그것은 경찰 조직에 들어가서도 변치 않았다. 그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이의를 제기했고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요구하며 거기에 저항했다. 그런 반골 기질은 물론 조직 사회에서 그를 이단아로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온 몸으로 항거하고 관철하는 태도는 표창원의 천성였음을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경찰 조직 내에서 준비된 승진과 안락한 삶을 버리고, 선진국의 범죄 수사 기법을 공부하기 위해 먼 이국 땅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장면이다. 그는 수 년간 경찰 조직을 떠나있으면 인맥과 승진길이 막힐 수 있다는 선배 경찰들의 조언 같은 건 깡그리 무시해 버린다. 승승장구한 인생보다는 배움에 대한 끝없는 열망 때문이었다. 유학시절 초반 언어와 문화적 편견이란 문제에 맞서 그 모두를 잘 극복해 낸다. 2년간의 국비유학과 다시 2년간의 자비를 들인 박사학위 기간을 합쳐 총 4년, 그는 선진 경찰의 첨단 수사기법을 습득한다. 박사학위 과정에서 마이클 러쉬 지도교수는 논문데이터 구축에 필요한 인터뷰를 위해 수십개의 영국 지역 경찰서 면담 스케줄을 잡아주며 도움을 준다. 그가 훗날 한국 최고의 1세대 프로파일러가 된 것은 스승과 자신의 이러한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이제 내 나이 47세, 인생의 반 정도를 산 것 같다. 이제 나머지 반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할 때다.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가능한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로운 도전에 몸을 내던지고, 문제와 장애와 난관을 피하지 않고 정면 대응해나갈 것이다. 여진히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고 실패도 겪고 있다. 하지만 `삶'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살 가치가 있다. " 351쪽

 

표창원은 일평생 무도를 수련한 것처럼 정의로운 삶을 꿈꿨다. 하지만, 표창원은 또 흠결없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온 반평생을 회고하며, 그는 숱하게 부끄러웠던 기억들을 되짚는다. 그는 잘못을 고백하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잘못에 대해선 그 누가 되었든 지위고하를 막논하고 따져 묻고 이의를 제기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삶, 그게 바로 표창 스타일이다. 하여, 나는 최근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한 그의 정직한 사과와 해명을 신뢰한다. 지난 대선 즈음 그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던 경찰 조직을 떠났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국비유학생에 뽑혔다. 언어와 문화 차이를 극복하며 4년간 선진 경찰 제도를 연구해 박사가 됐다. 그 후, 그는 경찰대에서 경찰 후배들을 가르쳤다. 경찰 일선과 교육 현장을 두루 거친 그는 한국 최고의 엘리트 경찰 요원이다. 그런 그가 왜 대선 직전 명예로운 직위를 초개와 같이 버렸을까?

 

미국의 대표적 보수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한국에서는 첩보기관이 정보 유출자"라고 비꼬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대선 댓글 조작 사건의 중심에 있는 한국의 국정원이 조직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뜬금없이 연관도 없는 노무현 정부시절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을 놓고 한 말이다. 그러면서 신문은 "정보기관은 통상 비밀을 폭로하기 보다는 지키는 편이지만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비밀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직을 살려보겠다고 국제 망신을 자초한 셈이다. 그러니까, 표창원은 바로 몇 달 후 한갓 국제망신이 될 사건에 먼저 이의를 제기한 죄로 자신의 밥그릇을 잃고 만 것이다.

 

하버드 대학 교수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국과 인연이 없는 센델은 정의를 가르치고자 처음으로 내한 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기현상은 한국 사람들이 정의에 굶주려 있다는 걸 반증한다. 표창원은 옳은 일을 하고도 자신이 사랑했던 경찰 조직을 떠났고, 최고의 범죄 수사 전문가로서 후학들을 가르칠 기회를 잃었다. 한국 경찰 조직에 큰 손실이라 생각한다. 그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들고, 국내외 여러곳을 방문해 강연회를 열었다. 한국에선 마이클 센델이 아니라 표창원이야말로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에서 죽어가는 정의를 구하려다 모든 걸 잃었으니 그만한 적격자가 어디 있겠는가?

 

정의로 가는 길은 안전하고 편안하지 않다. 자신의 직업과 생명까지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쉽게 정의를 부르짖을 수 없다. 미국 정보기관의 통화감찰기록과 감시프로그램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처럼 공공의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노든은 미국정부에겐 간첩이겠지만 사찰 받은 피해자와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사실을 몰랐던 타국 정부에겐 은인이자 영웅이다. 그 어디에 관점을 두느냐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하지만, 정의는 상대적이지 않다. 그것이 바로 정의가 가진 힘이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패악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책은 `표창스타일'이 완성되는 과정을 담은 진솔한 인생회고록이자, 우리 시대 정의의 환생을 목격하고 추적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네비게이터다. 불의를 향해 자신의 밥그릇을 던진 표창원 교수에게 이제 우리가 새롭고 튼튼한 밥그릇을 만들어줘야 하진 않을까?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