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쓰는가 - 글로 먹고사는 13인의 글쓰기 노하우
김영진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회사 포탈 시스템을 검색하던 중 공고문 하나를 발견했다. 사내 사보기자 모집 공문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지원서를 써 보냈다. 일주일 뒤 연락이 왔다. 합격! 자기소개와 경력에다 지금껏 글을 쓰며 얻은 나름의 감투를 잘 포장한게 도움이 됐나? 그렇게 해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내 사보기자로 선정됐다. 며칠 전 본사로 신입기자 워크숍도 다녀왔다.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도전하는 내 습벽 때문이다. 과연 나는 사보에 기사를 잘 써낼 수 있을까? 서평이나 영화평 정도를 끄적였던 내가 기사를 발굴,기획하고 사진과 글을 조합해서 매달 한 편 정도는 써 내야 하는데 부담감이 만만찮다. 그럼에도, 할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자신감과 해보자는 무대포 기자정신이 벌써 꿈틀거린다.

 

글쓰기를 배우는 모든 사람들은 공통된 소망을 품게 마련이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먼 훗날 달리기를 꿈꾸듯, 세상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알아주고 내 글에 고료를 챙겨주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원고지나 모니터 위에 습관처럼 쓰던 글이 어느날 갑자기 금전으로 환산된다는 걸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글쓰기의 신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글쓰기로 돈을 버는 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계적 생산수단이 아닌 지적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됐다는 명백한 반증이다. 글쓰기는 자기실현의 장치인데, 그것으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게 또 얼마나 큰 희열인가? 작가들의 직업만족도가 최고점을 찍는덴 이유가 있다.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우리들의 환상과 선망은 여기에 기원한다.

 

우리 시대 직업적 글쓰기로 밥을 먹고 사는 13명 필자들의 글쓰기 노하우를 묶어 펴낸 <나는 어떻게 쓰는가>는 바로 이 환상과 선망에 대한 작가들의 답변이자 고백으로 읽힌다. 필자라고 통칭하긴 했지만, 그들의 명함은 다채롭다. 영화평론가, 기자, 시인, 동화작가, 카피라이터, 철학자, 시나리오 작가, 칼럼니스트, 소설가 등이다. 때로 이들은 직업과 병행해 글을 쓰기도 한다. 변호사나 철학자, 미술평론가, 목사 등의 직업군은 전업작가라 말할 수 없고, 글쓰기가 부업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등장한 필자들은 눈에 익다. 듀나는 전설적인 익명의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이고, 반이정은 개성 뚜렷한 미술 평론가요, 임범의 칼럼은 내가 평소 즐겨 읽고 좋아한다. 그들은 모두 신문이나 인터넷 등의 매체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색깔있는 글을 발표하고 있다.

 

이 책이 독특한 것은 평소 다양한 소재로 글을 쓰는 필자들이 자신의 글쓰기 자체를 되돌아보고 있어서다. 그들은 편집자의 요구에 맞춰 이 책에서 `어떻게 쓰는가' 라는 부문에 초점을 맞춘다. 글쓰기의 노하우라고 했지만, 정확히 `직업별 글쓰기 론' 정도가 맞다. 삶의 체험 현장처럼 이 책은 `글쓰기 체험현장' 을 표방한다. 그들의 글쓰기는 아마추어가 범접할 수 없는 전문성을 드러낸다. 그 난이도 높은 세계에서 그들은 나름 글쓰기의 고충과 기쁨을 고백체의 문장으로 선 보인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다양한 영화 잡지를 옮겨다니며 글쓰기를 다듬어 왔다. 동료기자들에게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자주 듣던 어느날, 자신의 글이 데스크에서 자주 손질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대학원생 티를 못벗고 평론투의 글이 허영기로 가득해 난해했던 거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의 글이 지나치게 과시적이고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그는 영화평을 쓸 때 논리적 분석이 아닌, `표면에서 얻은 인상의 실마리를 끈질기게 파고들어 뭔가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글쓰기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영화을 본후 기계적 논리에 대입하기 보단, 감성의 덩어리를 부풀려 내는 일과 더불어 `멋 부리지 말고 간명하게 쓰자' 하는게 최종적인 그의 글쓰기론이다.

 

기자 안수찬은 글쓰기의 비법 한가지를 소개한다. 바로 `끊어치는 것이다' 끊어치기를 글쓰기의 배터리라고 표현한다. 문장을 주어 - 목적어 - 서술어라는 기본단위로 하나의 문장을 끝내야 한다. 끊어치기는 만병통치약이다. 그는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끊어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끊어치기 예찬은 쉴새 없다. 문장을 끊어치면 손가락 대신 생각과 마음이 글을 끌고 간다. 끊어 치면, 자아의 느낌과 생각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처음 느끼고 뜻했던 바대로 문장을 배치하고 글을 이어갈 수 있다. 끊어치면, 독자는 필자의 세계에 보다 쉽게 몰입한다. 긴 문장은 독자의 시선과 호흡을 방해한다. 안수찬 기자의 끊어치기론은 글쓰기 교과서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내용이다. 현장 전문가에게 다시 들으니 확신이 선다.

 

"이쯤에서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세상에는 유장하고 화려한 문장으로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들의 길을 따르면 안되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훌륭한 자아'를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은 뭘 어떻게 써도 좋은 향기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고매한 자아를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무조건 끊어 쳐라. 간단하고 빠르게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다." 37-38쪽, 안수찬, <나는 어떻게 쓰는가>

 

시인 유희경은 시를 읽고 쓰는 게 어려운 이유를 해설한다. 시 혹은 시인은 발화telling해서는 안되고, 그저 보여주어야showing한다. 시가 뜬구름 잡는 식으로 세계를 형상화 하는 것은 바로 설명이 아닌 보여주고 있어서다. 이 짧은 논평은 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미술 평론가 반이정은 글쓰기의 과정이란 `분석 대상과 텅 빈 모니터를 번갈아 응시하면서 "이 정돈 쓸 수 있어"와 "갈피가 안 잡혀서 못할 것 같아"라는 상반된 고백을 내면에서 끊임없이 외치고 듣는 일이다'고 표현한다. 하여, 글쓰기란 자신을 향한 협박이자 격려가 된다고 풀이한다. 글쓰기를 숙명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백배 공감할 고백이다.

 

특히 인상적인 두 명의 필자가 있었다. 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최근 은퇴해 칼럼니스트로 살아가는 임범과 <국가대표>와 <미녀는 괴로워> 등의 시나리오 집필에 참여한 작가 김선정이다. 먼저 임범은 18년 기자 생활을 하며 안 써본 글이 없고, 수많은 기사를 써 보았지만 제일 쓰기 힘든 글로 칼럼을 지목한다. 그는 마감이 다가오면 3,4일 전부터 원인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고, 소재를 못 찾아 마감 전남 밤을 꼬박 지새거나 잠을 청해놓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토로한다. 글쓰는 자의 비애가 따로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글을 쓰고도 그런 고통스런 과정을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그에게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을 게다. 시나리오 작가 김선정은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선배 감독으로부터 들은 한 마디 말을 되새긴다.

 

"선정아, 지금 네가 쓸 수 있는 것, 딱 거기까지가 오늘의 너야, 그걸 인정해야 해 " 208쪽

 

마음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글이 왜 이 모양이야, 하고 불평하기 전에 한번 되새겨야 할 조언 아닌가 ? 중국 작가 위화는 글쓰기를 `경험'에 비유한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듯이, 직접 써보지 않고서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고 말한다. 무언가를 쓰기 전까지 우린 어제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다양한 형식의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의 필자들은 마치 글쓰기의 매력과 그 고통을 동시에 즐기고 있는 사람들 같다. 그들은 매번 글을 쓸때 마다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고 절망한다. 이 절절한 고백을 듣게 된 것은 차라리 위안이 됐다. 글을 십 수년 씩 쓰는 전문 작가들도 우리처럼 글 때문에 울고 웃는구나. 이걸 작가들의 육성으로 확인하는 일은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내가 지원한 사보기자는 자신의 업무 외에 각 부서에서 콘텐츠 기사를 발굴하는 보조 기자다. 직장내의 부업인 셈이다. 원고료는 들어오겠지만 큰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귀찮은 일을 지원했나? 그냥 좋아서다. 그날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과 보낸 한 나절이 참 기억에 남는다. 모두 글쓰기의 열망이란 공통 분모 때문일까? 차 한 잔을 놓고서도 쉴새 없이 쏟아지던 이야기들과 짧은 만남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몇 해 내가 블로그에 차곡차곡 써 올린 글 들 덕분에 해가 갈수록 감투 하나씩을 얻었다. 그간 글쓰기는 사적인 영역에서 내가 키워온 필살기였다. 이제 그런 사적인 즐거움이 모여, 어느덧 공적 글쓰기에 도전하게 됐다. 나름 성장이라면 성장이다. 그리고 성장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은 기쁘다. 서평과 영화평, 여행글을 가끔 쓰던 내가 기사문을 써 낼 수 있을지 아직 자신이 없다. 하지만, 어떤 장르의 글을 쓰건 좋은 글의 조건은 같다. 이 책에서 기자 안수찬은 그걸 `사람을 즐겁게 기쁘게, 슬프고 애달프게 하는 글, 즉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라 표현한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필자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그 방법론에 집중한다. 직업적 글쓰기는 전문성과 열정을 동시에 갖추고, 고료에 맞는 원고를 산출해내야 하는 고통스런 작업이다. 글을 밥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특별한 내공을 갖추어야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모든 직업적 필자들의 내공은 길러지는 것이다. 오늘보다 나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철저히 통용되는 공간이 글쓰기의 영역이다. 글의 힘이 막강할 수록 전문 필자에 대한 선망은 커가기 마련이다. 황홀한 글쓰기의 세계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작가들은 훌륭한 본보기이자 동병상련의 파트너가 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글쓰기를 단련하는 과정에 지름길은 없다. 세상에 쉽게 쓰인 글도 없다. 세상 모든 필자들은 오늘도 하얀 모니터 혹은 원고지 위에서 소리없는 전쟁을 치른다. 하여, 이 책은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전문필자들의 처절하고 화려한 무용담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