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독자에게 작가란 책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그것은 특수한 인간관계다. 직접 대면하지 못했지만 한 인간의 영혼을 깊이 경험하는 일이 곧 책읽기다. 사람은 만나서 술잔을 기울여 이야기를 해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는게 아니다. 책을 통해 만난 모든 저자는 곧 독자의 스승이 된다. 지난 4월 저자 구본형의 부고를 듣던 날 내 마음에 일었던 놀라움은 그 특수한 관계로부터 온 것이다. 한번도 그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나는 이미 구본형의 독자였다. 한 권의 저서를 몇 해 전 읽었다. 그가 꽤 유능한 저자이자, 직장인들의 멘토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의 후속작들을 지금껏 일독하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그는 향년 59세로 이제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하지만, 내 후회는 일시적인 것이 됐다. 그가 그 짧은 생을 살아오면서 이 세상에 남겨둔 책들은 꽤 풍성했고, 또 앞으로 오랜시간 독자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그는 품질좋은 책들을 이승에 남겨둔거다. 구본형은 1980년에서 2000년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한국IBM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가 직장을 떠난 것은 46살 쯤이었다. IMF의 영향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이후, 그는 변화경영연구소라는 1인 기업을 설립하고, 기업과 직장인을 타켓으로 한 경영혁신과 자기경영에 관한 다양한 책을 써 냈다. 연구소를 통해선 변화경영을 접목해 직장인들의 업무 혁신과 미래비전을 실현하는 프로그램들도 운영했다. 놀라운 건 그가 연구원 제도를 통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을 `저자'로 길러냈다는 데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쉰살이 되던 어느날 아침의 각오를 고백한 적이 있다. 공자가 지천명(知天命 - 하늘의 뜻을 안다)이라 호명한 나이다. 50대에 이루고픈 10가지 희망사항은 이런 거다. 첫째, 향후 10년간 1년에 책 한 권씩을 써내자. 둘째, 일년에 두 번은 10일간 꼭 장기 여행을 떠나자. 셋째, 나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이바지 하는 방법을 찾아내자. 그 나머지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이 소원들을 실현시켜 나가는데 시간을 쏟았더니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고 있더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구본형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20년을 살고, 어느날 갑자기 삶을 바꾼게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그는 새벽 4시에 기상하고 아침 7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오랜 시간 실천했다. <구본형의 필살기>라는 책에선 인생 후반부를 저자와 경영전문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투자했던 새벽 3시간의 기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써 낸 책들은 직장인들이 공감하고, 차용할 부분이 넘친다. 내가 그의 저서를 한 편 밖에 읽지 않았음에도 이전과 다른 삶을 상상하는 그의 메세지에 매료당한 건 순전히 그 내공 덕이다. IMF 당시 출간되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제목 자체가 책의 일관된 메세지에 다름 아니다.

 

"가치를 만드는 사람만이 언제나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나 가치의 개념은 언제나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싫든 좋든 세상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변화를 생활의 기본원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중요한 깨달음이다. 아울러 그 변화의 방향을 알고, 자신의 욕망과 그것을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59쪽,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IMF 당시 수많은 직장인들은 직장을 잃었다.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던 자신의 자리를 국가 부도라는 사태 앞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직장인들 앞에서 벌어졌다. 그것은 거대한 전환이자 변화다. 그 시대에 어떤 메세지가 필요했을까? 안정된 직장이 주는 아늑함에 오래도록 잠긴 사람일수록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은 부정한다고 부정할 수 있는게 아니다. 언제나 영웅호걸은 위기에 등장하기 마련인가? 구본형의 이 책이 변화라는 패러다임을 내걸고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력을 부여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그는 이 책을 두 부문으로 양분한다. 책의 상당 부분을 기업의 변화 경영과 혁신 기법에 대한 교훈으로 채우고 있다. 자기계발서라기 보다는 기업혁신 이론서같은 느낌이 든다. 왜 저자는 자기계발서를 표방한 책속에서 기업 이야기를 하는 걸까? 전반부를 읽어나가며 의아했다. IMF는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고, 다음 기업을 침몰시켰으며, 다시 개인을 퇴출시켰다. 국가,기업,개인 모든 시스템이 변화의 순간을 맞은 것이다. 구본형은 기업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변화를 다루고, 개인의 변화를 다루면서 기업 경영의 혁신을 이야기하는 서술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큰 줄기는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개인에 포커스를 맞춘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무너진 삶을 복원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세우고 어떤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변화를 바라면서도 두려워한다. 변화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으며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결국 변화의 시기에 성공하는 사람은 그 변화를 하나의 기회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구본형은 변화에 당당해지기 위해선, 지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먹고 살기 바빠서 중요한 일은 뒤로 미루기만 한다면 보다 나은 삶은 오지 않을 것이라며 경고한다. 여전히 그는 미래에도 하찮은 일로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구본형은 `자신을 위해 사용한 시간만이 다른 사람과 다른 삶을 살도록 한다'고 조언한다.

 

"당신에게는 시간이 없다. 만일 이미 마흔이 넘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해 술을 마실 시간은 있지만 술을 마시고 비정한 상사를 욕할 시간은 없다. 세상을 탓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욕을 할 시간도 없다. 정부의 무능을 비난하고 경영자의 탐욕을 탓할 시간도 없다. 무능한 정부는 정권을 잃고, 탐욕이 경영의 목적이었던 경영자는 도산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화되지 못한 개인은 직업을 잃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메세지다." 343쪽

 

구본형의 이 책은 평생직장이라는 `상식'이 무너져 내린 시기에 등장했다. 쉽게 수긍할 수 없었던 시련 앞에 직장인들은 망연히 세상의 비정함을 탓했다. 하지만, 구본형이 던진 변화라는 메세지를 통해 많은 직장인들은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IMF 그 이후, 2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책은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까? IMF 처럼 사회가 급박한 도전에 직면한 시절은 아니다. 오랜 수련을 통한 내공, 인문과 철학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본 바탕에 둔 자기계발서는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많은 화두를 던진다. 이 책이 그렇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 앞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문을 열고 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살면서 어느 순간 변화의 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 안정된 직장이 환상이 된 후기 신자유주의 시대라서가 아니다. 변화야 말로 삶의 본질이라서다. 우리는 언제든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살아가야 한다. 세상에는 익숙한 것과 작별함으로써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새로운 삶 앞에 당당해지기 위해선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구본형은 이 책에서 `비전은 아직 살아 있는 당신이 남은 미래를 위해 짜놓은 황홀한 각본"이라는 말을 한다.

 

이 책을 읽어가며 가장 마음에 들어 새겨둔 말이다. 지금껏 읽은 훌륭한 책과 그 저자들은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곧바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길을 알려주고, 나는 작게라도 변화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섰다. 저자 구본형과 그의 저서들이 그 좋은 사례다. 오늘도 많은 직장인들이 주어진 일, 시킨 일만 하며 소극적 삶을 살아간다. 구본형은 그걸 낙타의 삶이라 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싣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건너야 하는 존재다. 이 낙타의 삶에서 우린 하기싫은 일을 감당하며 하루를 버티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일부가 시간이 흘러 위풍당당한 사자로 `변화'한다. 사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사자의 삶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2013년 5월 21일 화요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