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 경제론의 충돌 -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경제민주화
이병천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11월
평점 :
옛말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란 말이 있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선 싸움보단 흥정이 낫겠다. 하지만, 학문 분야로 오면 이 말은 적절하지 않다. 어떤 학문이 발전한다는 것은 더 많은 논쟁과 다툼이 학자들간에 일어나야 가능하다. 정연한 논리와 에티켓을 갖춘다면, 학문세계의 논쟁은 오히려 장려돼야 마땅하다. 그 좋은 예가 작년 장하준 그룹과 진보경제학 진영 사이에 벌어진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논쟁이 아닐까 한다.
장하준 그룹은 작년 의미 있는 책 한 권을 내놓으며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 한복판에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장하준과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란 부제가 붙은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2012,부키 펴냄)를 두고 하는 소리다. 장하준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세계적 경제학자다. 그가 이명박 정권에서 펴낸 경제학 서적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많은 진보성향의 독자와 학자들은 그가 내놓는 저서들을 열독하며 신자유주의와 재벌옹호의 경제정책을 펴는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장하준의 저서들은 2010년 무렵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에 포함되면서, 그 주가를 최고치로 끌어 올린다.
그런 그가 작년 대선을 몇 달 앞둔 미묘한 시점에 여당 대선 주자와 보수적 경제학자들, 그리고 재벌들이 환호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대중 경제서적을 내 놓았다. 그들이 <선택>에서 내놓은 담론은 무척 포괄적이었다. 한국 경제의 성격, 신자유주의 재정의, 재벌 경영권의 옹호, 박정희 경제 정책의 긍정, 재벌과의 대타협을 통한 복지사회 구상 등 그 자체로 무수한 논쟁거리를 양산할 만한 이야기들로 책은 꽉 채워졌다. 장하준을 꾸준히 읽어온 일반 독자들부터 진보쪽의 경제학자들까지 <선택>의 논의에 어리둥절해 했다.
그들이 <선택>에서 주장한 내용들은 황당무계한 것들은 아니라서 더 뜯어보고 고민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경제학 지식이 일천한 독자들을 대신해 그의 주장을 논리 정연하게 반박할 경제학자들의 논의가 필요했다.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인 이병천의 <한국 경제론의 충돌>은 장하준의 경제론을 곱씹어 볼 중요한 반박 논리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병천은 이 책에서 <선택>의 주장 하나하나를 다른 관점에서 반박하고 수정한다. 더불어 부록으론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관한 보충적인 해석과 보다 학문적인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에 관한 이병천 교수의 논문이 담겨 있다. 일단 장하준 그룹이 <선택>에서 논란을 지핀 주장부터 살펴보자.
장하준은 먼저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을 앞세운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위기는 시장경제에서 통제되지 않는 자유가 그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여,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관치를 하는 게 맞다'고 까지 주장한다. 금리인상를 비롯한 모든 국가 중대사에 반드시 정부가 개입해야 된다. 이같은 주장은 박정희 시대의 산업 정책과 정책 금융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다. 박정희로부터 시작된 국가주도 경제를 현대 주주자본주의에 대응하는 주요한 `전통'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장하준은 한국인들의 박정희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낸다. 한국인들은 그를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하는데, 사실 그를 그 시대의 구조속에서 파악하자는게 그의 생각이다. 즉, `박정희라는 개인의 결정이 한국의 역사에 미친 효과'같은 것을 보는 눈이 필요하단 얘기다. 가령, 1960년대 미국과 세계은행은 포항제철을 세우려는 박정희의 계획에 반대하며, 후진국이 어떻게 제철산업을 하겠다는 만용을 부리느냐고 질타한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제철 산업과 건설, 중화학 공업화라는 결단을 내리며, 결국 그게 성공으로 이어진다. 관치경제에 대한 장하준의 긍정은 박정희 경제정책에 대한 긍정을 내포한다. 단, 정치적 독재 행위 모두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긴 한다.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장하준 그룹의 생각은 진보 진영과 갈린다. 진보계열 경제학자들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재벌개혁을 감초처럼 들고나온다. 그에 반해, <선택>에서 장하준은 `재벌해체가 투기 자본을 위한 잔칫상'이라며 이에 반대한다. 장하준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들은 복지국가를 최종적인 한국 경제의 목적지로 생각한다. 즉, 재벌들에게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부자 증세와 복지국가 건설에 협조를 받아내는 것이다. 진보 진영에서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주주자본주의와 통한다. 그들은 재벌의 무책임한 방만 경영이나 불투명한 밀실경영을 재벌 개혁의 목표로 삼고, 기업 투명성과 책임 경영을 주주자본주의를 통해 이뤄낼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장하준 그룹의 생각은 이와 상반된다. 주주 자본주의가 국민이 아닌 주주들을 위한 책임에 한정돼 있다고 질타하는 것이다. 즉, 주주는 국민이 아니라 일부 특권층으로 한정 돼 있으니 경제 민주화는 요원하단 논리다.
이병천은 <한국경제론의 충돌>에서 이같은 장하준 그룹의 논리를 직격한다. 그들에게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가능케 하는 힘은 그저 국가에 맡겨져 있는 국가 만능주의다. 더불어 재벌과 타협을 통해 복지국가를 이루자는 장하준의 견해는 `특권 재벌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병천은 장하준 그룹이 신자유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메스를 가져온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월스트리트를 주체로 한 세계화된 금융자본에 한정해, 결국 국내 재벌을 한국 신자유주의 지배 세력에서 떼어내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은 한국 경제의 부정 부패, 혼란, 양극화의 주범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라고 이병천은 보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을 단지 금융자본의 지배로만 좁게 바라보기보다는, 지배계급 복합체의 보수적 복원, 즉 인간과 세계를 재상품화하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새로운 타협 기획이라고 좀 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37쪽, <한국 경제론의 충돌>, 이병천
이병천은 장하준이 긍정한 박정희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국가와 재벌의 지배 동맹이란 말로 요약한다. 국가와 재벌이 권력과 경제력을 통해 `노동과 국민 대중의 참여를 정치적으로 배제'하면서 독재국가와 독점적 재벌의 지배연합을 이뤘다는 것이다. 즉, 이병천은 장하준이 박정희 경제와 재벌 체제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수많은 경제적 부작용을 외면했다고 말하고 있다.
"박정희 개발독재 정권이 엄청난 특혜를 제공하고 비용의 사회화 정책, 노동자 배제를 통해 그 골격을 세워 주었고, 이어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참혹하게 노동자와 농민, 서민, 진보 세력을 억압하고 사회 기강을 바로잡는 정치경제적 구조 조정 및 금융 자유화를 통해 공고화시켰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노태우, 김영삼 정권이 쩔쩔매다 마침내 그 포로로 붙들리고 말았던 문제의 주인공이 바로 재벌 체제 아닌가." 64쪽
장하준과 이병천의 두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와 <한국 경제론의 충돌>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장하준의 논의는 한국과 세계 경제를 포괄하며 특유의 쉽고 재미있는 비유와 예화를 유창한 언변에 담아냈다. 반면, 이병천의 책은 장하준에 대한 반박으로선 유용하지만, 꽤 읽기가 난해한 논문체의 글이다. 아마도, 독자들은 이유가 어찌됐든 장하준의 논의에 혹할 가능성이 있다.
장하준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신자유주의와 세계 금융, 선진국의 개발논리를 치밀한 논리를 통해 비판해 온 세계적인 학자다. 이 점은 이병천도 인정한다. 이병천은 장하준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 대해 `대중에 다가가는 문필력과 흥미로움'이 넘친다며 극찬한다. 반면, 이병천은 경제 민주화를 재벌 개혁으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주장하며 장하준이 한국 경제를 논하는데 있어, 중요한 주체인 노동과 노동자를 소외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장하준이 박정희 관치 경제를 극찬하는 것에서 사실 전태일과 같은 노동 주체를 소외시킨 것은 맞다. 이병천은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는 면에서 장하준의 쉽고 논리정연한 문필력 사이에 감추어진 빈틈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경제시민에게 이들의 논의는 그 자체가 한국 경제의 현실을 치우침없이 살펴보는데 유용하다. 장하준이 <선택>에서 그 전 저서들보다 우편향 하는 듯한 진술을 보여주긴 하지만, 세계적인 학자답게 시야를 글로벌 경제에 두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방향을 다르게 볼 뿐이란 변명이 가능한 것이다. 이병천은 재벌과 타협해 복지국가를 이룬다는 장하준 그룹의 생각을 순진한 이상으로 바라보는 듯 하다. 한국에서 군사독재의 비호아래 성장한 재벌을 수술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에 급선무라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병천의 <한국 경제론의 충돌>은 경제시민들을 위한 대중서를 표방하기엔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과 고답적 논리를 담고 있다. 이병천의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아마도 왜 장하준이 우리 시대 최고의 대중경제학 저자인지 깨닫게 될 것 같다. 유려한 문필력은 소설가나 경제학자에게나 교양서적을 집필하는 모든 저자들에게 필수적 재능이다. 이병천의 논의가 장하준 경제론의 균형점을 유지시키긴 하지만, 대중들에게 어필하는데 그 딱딱한 문장들이 장애가 될 것 같다. 책의 긍정적 논의에도 평점에 짠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2013년 3월 7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