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이후 사이언스 클래식 14
스티븐 J. 굴드 지음, 홍욱희.홍동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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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신중한 사람이자 엉뚱한 인물이다. 그는 진화론의 증거들을 젊은 시절부터 수집하기 시작했지만, 완벽한 물증을 확보하기 전까지 <종의 기원>이란 저서를 발표하지 않고 미뤘다. <종의 기원>을 발표한 것도 거의 떠밀려서 였다고 한다. 다른 생물학자의 논문 발표로 자신의 업적이 뒤쳐질 것을 염려해 결국 미뤄왔던 <종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런데, 그 당시 발표된 <종의 기원>의 상당 부분은 원작에서 축약된 것이었다. 논문 발표 이후, 종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그는 두려워했다. 또, 그는 캐임브리지 대학 신학부 출신이다. 평생 박물학을 연구하면서 창조론의 대척점으로 다가가며 느꼈을 다윈의 혼란을 짐작케 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생물 진화가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주장했다. 그는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였지만, 살아 생전에 그같이 과감한 자신의 생각을 대중앞에 나서 변론하지 않았다. 훗날 종교인들은 창조진화론을 통해 다윈의 사상을 `창조적'으로 흡수하려 했다. 진화조차도 신의 섭리 가운데 일부분이라는 논리다. 다윈의 사상을 `오해'한 것은 종교인만이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진화론의 성격을 `진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물에는 하등 생물과 고등 생물이 있으며 인종도 마찬가지로 가장 열등한 인종과 진보한 인종이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성별에 따라 능력이 결정된다는 논리도 편다. 진화론은 그들에겐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근거였다.

 

이같은 혼란 가운데, 다윈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진화생물학자들의 노력이 20세기에 큰 진전을 이루게 된다.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20세기 진화 과학의 수호천사'라는 별칭을 얻은 스티븐 제이 굴드다. 그는 1941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고 유대인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공룡의 화석을 본 이후, 굴드는 고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67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고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그 해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해 폐암으로 사망한 2002년까지 그곳 지질학과 정교수로 활약한다. 그는 1974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27년간 미국 자연사 박물관이 발간하는 잡지 <자연사>에 300편이 넘는 에세이를 연재한다. 그의 저서 <다윈 이후>는 이 에세이들을 묶은 첫 번째 모음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수십편의 에세이들은 그의 연구를 다양한 소주제로 엮어 소개하고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동료 닐스 엘드리지라는 학자와 함께 1972년 ‘단속평형-계통점진설의 대안'이란 논문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그들은 생물 종의 진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다는 기존의 학설인 `계통점진설'을 부정하고, 종(種)이란 오랜 기간 평행상태를 유지하다가 특정한 짧은 시기에 급격하게 진화적 변화가 진행된다는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説)을 내놓는다. 이들이 주장한 단속평형설이 왜 중요한가? 그간 창조론을 주장한 이들은 진화를 증거하는 중간단계의 화석들이 미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들어, 진화론을 부정해 왔다. 반면, 굴드가 주장한 단속평형설은 생물종의 변화가 거의 없는 안정평형 상태가 유지되다, `지리적 격리'나 `개체군이 소규모화'되면서 종분화가 나타날 때 비약적인 진화적 변화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중간단계의 화석은 없어야 맞다. 그들의 주장은 창조론의 공격을 방어하는 논리로 자리잡았고, 고생물학과 진화생물학을 접목시키며, 일약 현대 진화 생물학의 중요한 이론으로 발돋음한다.

 

<다윈 이후>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생각들은 철저히 사이비 진화론을 고발하고, 다윈에 대한 오독을 경계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1장 `다윈에 대한 오해와 이해'라는 곳에서 굴드는 다윈이 지향한 연구의 방향을 분명히 설정하고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할 당시, 생물학계는 진화에 대한 여러 논의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또, 발표 후에도 변론에 신경쓰지 않는 다윈의 태도로 인해, 진화론을 오독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과 일체의 진화론에 관한 주장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철학적 유물론'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진화론자들은 생명력, 진화의 방향성, 유기체의 노력, 정신의 불가분성 등을 말하며, 하느님이 창조가 아닌 진화를 통해 역사하셨다고 주장하며, 전통적인 기독교와 타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간다. 그러나 다윈은 오로지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만을 주장하며, 무신론적 유물론을 펼쳤다.

 

"다윈은 자신의 노트에서, 그가 명명했던 이른바 `요새 그 자체(the citadel itself) - 인간 정신 - 를 비롯한 모든 생명 현상에 자신의 유물론적 진화론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만약 정신이 인간 두뇌의 산물 그 이상이 아니라면, 하느님이란 두뇌의 환상이 빚어 낸 또 하나의 환상 이외에 도대체 무엇일 수 있겠는가? 종간 변이를 적은 한 노트에다 그(다윈)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 너 유물론자여, 신에 대한 사랑은 생물 조직에서 비롯하나니!... 두뇌의 분비물인 사상이 물질의 성질인 중력보다 더 경이로워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우리의 오만, 우리의 자기 찬양에 지나지 않는다.' " 27쪽,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다윈을 잇는 20세기 생물학자 굴드는 다윈보다 용기 있다. 그는 수많은 사례들과 연구 결과물을 갖고, 과학와 종교가 인간 사회를 오도한 일들을 고발하며 비판한다. 종교 뿐만 아니라 과학이 사회를 진리의 반대편으로 이끈 경우가 허다하며, 그 이유는 인간을 자연과 분리해서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굴드는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는 유형적으로 엄격한 연속성이 있음을 시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가 잃을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했을 때 단지 고루한 영혼의 개념이 퇴색 될 뿐, 우리와 자연은 하나라는 한층 겸허하면서도 고양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든 생물 진화의 역사에 인간을 포함시킨다는 의미다. 인간은 특별하고 색다르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여러 종들처럼 평범한 다양성 안에서 진화한 것이다. 다윈은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관해서는 머지않아 서광이 비칠 것'이란 말로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 때 화려하게 뿔을 진화시킨 아일랜드 앨크의 사례에선 진화의 역설을 고발한다. 아일랜드 앨크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뿔을 화려하게진화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화려한 뿔로 인해, 아일랜드 앨크는 변화된 주변 환경에서 도태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즉, 어느 한 시점에서는 유용했던 구조가 이후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는 항상 유용할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다윈의 진화론은 주고 있는 게다. 또, 생존의 주요한 세가지 방식을 이야기하며,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존재가 필수적인지 묻고 있다. 지구상에는 생존의 세가지 방식이 있다. 식물(생산)과 균류(환원)과 동물(소비)의 패턴이다. 굴드는 주요한 생명 순환은 `생산과 환원'으로 충분히 운영될 수 있고, 이 세상은 소비자들(동물과 인간을 포함) 없이도 충분히 잘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자만심의 관(棺)에 또 하나의 대못'을 박아 넣는다.

 

그는 인간 지능 연구를 둘러싸고 일어난 생물학적 결정론이 실제론 아무런 증거도 없다며, 그 허구를 주장한다. 근대 이후 많은 서양 과학자들이 식민지의 원주민에 대해 그 피부색이나 인종을 진화론적 개념을 들먹이며 열등과 하위로 구분짓곤 했다. 굴드는 인종과 성별에 따른 생물학적 결정론을 나름의 과학적 근거로 반박한다. 왜 그가 20세기 `다윈 이후'에 가장 명석하고 정직하며 공정한 생물학자로 기억되는지 이 책이 그 좋은 사례가 된다. 그가 27년간 <자연사>에 발표한 그 수많은 에세이들 가운데서도 수작을 뽑은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해박한 지식을 유려한 문체로 풀어쓰는 재능에 놀라게 될 게다. 그는 에세이의 시작을 가벼운 농담이나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로 시작해, 독자를 진화생물학의 정수로 안내한다. 과히 20세기 천문학의 교사 칼 세이건의 명석함과 유려한 글쓰기를 연상케 한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뉴턴 이전에 우리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축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윈 이전에 우리는 자비로운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프로이트 이전에 우리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상상했다. 혈연 선택이 이런 후퇴 과정의 또 다른 한 단계를 증명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지배적인 위치에서 밀어내어 다른 동물들에 대한 존경과 통일적 유대 관계를 자각하도록 유도하는 긍정적 효과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379쪽

 

오늘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은 진리다. 하지만, 갈릴레오가 살았던 16세기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같은 주장을 미치광이 과학자의 헛소리로 치부하며 형벌 위협을 가한다. 1992년이 되어서야 교회는 갈릴레오에 대한 사면 복권을 단행했다. 오늘날 진화론은 생물학계의 일반상식이 되었지만, 교과서에 진화론과 창조론 중 어떤 이론을 실어야 하는지 가끔 논쟁거리로 등장한다. 진화론은 지동설처럼 명백한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다윈 이후'에 종교나 과학 할 것 없이 다윈을 오독하고 진화론을 정치,사회,과학적으로 남용하는 사례를 이 책에서 적극 고발한다. 과학도 때론 종교만큼이나 기득권과 편견을 위해 봉사한 흔적을 우린 굴드라는 공정한 생물학자를 통해 알게 된다.

 

굴드는 과학적 진보(progress)를 `미신이라고 하는 무지에서 출발하여 계속해서 사실을 축적해 감으로써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라 정의한다. 진리에 관해 과학과 종교 모두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굴드가 이해한 다윈의 진화론은 변화무쌍한 자연의 다양성이란 말로 요약된다. 그 말은 진화가 `진보'와는 전혀 다른 개념임을 암시한다. 진화는 `무방향적'이며 `일방향적'이고, `점진적'이다가 `돌발적'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 나은 존재로 변화된다는 진보라는 개념을 애초 굴드는 상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확실성이란 괴물은 정치가와 목사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자신은 자연의 다양성을 즐기겠다는 말로 이 책을 끝맺는다. 20세기 진화생물학의 정수에다, 공정함과 솔직함, 유머와 위트를 겸한 `굴드표' 진화생물학을 만나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20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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