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들 - 세계 최고의 독서가, 책 읽기의 즐거움을 말하다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무엇을 위해 독서하는가? 또 무엇을 위해 책을 모으는가? 독자들은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한다. 어떤 행위의 목적을 생각해본다는 건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불꽃같은 의욕이 솟구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문장 한 줄 읽는 것도 지치는 날이 오고, 모든게 회의로 치닫는 시절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 독자는 항상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준비해둬야 열정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고 인생 전체를 책과 함께 할 수 있다.

 

나에게 책읽기와 장서(藏書)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젊은 시절 책은 구원 그 자체였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어떤 이들은 한 권의 책으로 구원받는다. 성서나 그외 경전들이 그렇다. 내게 구원은 이 세상에 태어난, 혹은 태어날 모든 책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열을 두자면 성서는 세상 그 어떤 책보다 가치 있다. 지금도 성서 외에는 신앙에 방해물이 된다는 이유로 전혀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반대였다. 성서를 포함해, 세상 모든 책을 나는 구원의 도구라 생각했다. 좀 과장해서 그 많은 책을 읽기 위해, 나는 살아야했고 결국 책은 살아갈 이유와 동기를 부여했다.

 

둘째, 한번 읽은 책은 반드시 보관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 장서는 취미라기보다는 독서의 부산물과 같다. 지금껏 내가 읽어온 책 모두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자 생의 이력이다. 서재가 손때가 묻은 책들로 가득 들어찬다는 것은 물리적인 의미와 동시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적인 포만감을 선물한다. 평생 읽은 책으로 원대한 개인 도서관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은 꿈이자 이상으로 자리잡았다. 세상의 모든 독서가들이 나와 같은 기억과 이상을 공유한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 <책 읽는 사람들>을 읽은 후, 유명한 독서가나 무명에 가까운 나같은 이나 그 시작과 과정이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

 

망구엘은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의 직함은 다양하다. 소설가, 작가, 편집자, 번역가 등. 더군다나 그는 세계시민이었다. 남미의 불운한 정치적 환경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조국을 탈출해, 유럽의 여러나라와 미국, 캐나다 등으로 삶의 영토를 바꿔왔다. 여러 매체에 기고한 책과 독서, 인물과 자신의 삶을 다룬 글을 묶어낸 <책 읽는 사람들>은 일평생 그가 전념해 온 독서와 책에 대한 열망의 후기다. 난 그가 다양한 직함 가운데 `독자'로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젊은 시절 해외를 방랑하며 궁핍한 삶을 살아가던 그는 상금 욕심에 문학상에 소설 한 편을 응모해 당선되지만, 자신에게 작가보다는 독자로서의 삶이 맞다고 생각해 소설가의 길과 멀어진다.

 

한 편의 소설을 분석하며 그에 연관된 소설의 목록을 쉴새없이 토해내는 글쓰기에서 우린 독자로서 탁월한 망구엘의 재능을 확인하게 된다. 일평생 무수한 책들을 읽고, 그 후기를 적고, 개인 도서관을 만들어 소장한 책과 독서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든 십수 편의 글들을 읽으며 발견한 가장 인상적인 주제는 `이상적인 독자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창작과 고뇌의 상징인 작가는 독서의 세계에서 언제나 `갑'의 위치에 있는게 정당한 걸까? 독서는 주어진 텍스트를 읽어내려가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가? 육십 평생 세계를 떠돌며 세계시민으로서 책을 읽어온 망구엘의 답은 의외였다.

 

"이상적인 독자란?"이란 타이틀을 단 글에서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짧고 다양하게 변주해 나간다. 망구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독자에 대한 답을 몇 가지 옮겨보자.

 

" 이상적인 독자는 창작의 순간보다 앞서 존재한다 "

" 이상적인 독자는 텍스트를 절개해서 껍질을 들어내고 골수까지 파들어가, 동맥과 정맥을 일일이 추적해서 완전히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번역가다. 이상적인 독자는 박제사가 아니다."

" 이상적인 독자는 책을 덮을 때마다, 자신이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세상이 더 불행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 이상적인 독자는 돈키호테의 윤리관, 보바리 부인의 열망, 바스 여장부의 욕정, 오디세우스의 모험정신, 홀든 콜필드의 기개를, 적어도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는 공유한다."

" 이상적인 독자는 밟아 다져진 길을 걷는다. `훌륭한 독자, 뛰어난 독자,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독자는 다시 읽는 사람이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로빈슨 크루소는 이상적인 독자가 아니었다. 그가 성경을 읽은 이유는 답을 찾기 위함이었다. 이상적인 독자는 의문을 찾아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 알베르토 망구엘 125~127 쪽, <책 읽는 사람들>

 

그는 책읽는 사람들의 능동성을 강조한다. 주어진 텍스트에 오직 만족하는 것은 망구엘이 생각하는 독서가 아니다.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 개인소개란에서 취미를 독서로 기재하는 것은 이제 넌센스가 돼야 옳다. 책과 독서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가닿는 그의 결말은 놀랍도록 요즘의 내 생각과 비슷했다. 책이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재료이고, 독서가 그 행위라는 것 말이다. 취미는 개인의 향락에 머물지만, 독서는 향락을 넘어선다. 독서는 이 세상을 지배했던 정치적 잔혹 행위를 `기억'하는 도구가 되며, 온갖 위협과 광기의 `피난처'가 된다. 독서는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도운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할 때, 누구에게도 인도받지 못한다는 당혹감이 밀려올 때, 우리는 글이 쓰인 곳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는다' 독서가 갖는 위로의 힘이다.

 

18세기엔 노예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 돼 있었다. 심지어 노예는 성경도 읽어선 안 되었다. 왜 그랬을까? 성경을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소책자'도 읽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노예 지배자들, 즉 권력자들이 독자를 두려워했다는 증거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은 시민의 무지를 은근히 희망한다. 시민의 무지는 쉽게 벗어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래 국가는 대놓고 국민 독서 운동을 거창하게 진행하지만, 매년 독서율이 급격히 변동했다는 뉴스는 들어본적이 없다. 시민이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획득하고자 한다면 먼저 독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무지한 유권자를 사랑하며, `책읽는 유권자'를 두려워 한다. 책이 작게는 개인을 구원하는 것을 넘어 사회를 구할 수 있다는 가정을 가능케 한다.

 

"이상적인 도서관에서 독자의 역할은 기존의 질서를 뒤짚는 것이다" 143쪽

 

그간 독자로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시간 `쓰는 일'에 대한 선망과 희망을 가져왔다. 위대한 작가는 있어도 위대한 독자는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 그랬을까? 읽는 일보다는 쓰는 일이 더 품위 있고, 인정받는 일이란 편견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힘들고, 고달픈 과정이다. 몇 페이지의 글을 쓰기 위해 우린 수십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한다. 망구엘은 글을 짓기 위해 꼬박 이틀 밤을 새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그 날 이후 편안한 독자의 길로 되돌아왔다고 회고한다. 그가 훗날 소설 한 편으로 문학상을 거머쥐고도,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지 않은 이유다. 그는 독자로서 책과 맞서는 짜릿하고 풍부한 경험을 더 사랑했기에 자족하는 독서가가 될 수 있었던 게다.

 

이 책은 놀랍도록 깊고 확장적인 독서의 힘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망구엘은 우리 시대의 정치인과 혁명가(체게바라)를 검토하고, 문학과 독서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기억을 되살린다. 단테와 피노키오 그리고 돈키호테의 작품과 인물들을 샅샅이 살피며, 어린 시절 읽어냈던 동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 편의 세계관에서 독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성실히 책을 읽어온 그는 조국 아르헨티나의 정치사를 가장 정확히 꿰뚫어보고, 서양 고전을 통해 인간이 나아가야 할 삶을 인문적으로 고찰할 능력을 뽐낸다. 그는 문필가로서보다 평범한 독서가로서 자신의 이력을 더 사랑하며, 이 책을 읽는 누구에게나 인문주의자 망구엘의 삶을 선망하게 한다.

 

책읽는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며, 세상의 지식을 흡수해서 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린 책장을 펼치는 순간, 자기발견의 여정에 들어서는 법이다. 그 어떤 취미와 사물도 책처럼 영혼에 직접 가닿지 못한다. 책읽는 사람은 `우리의 역사가 불의(不義)가 지배했던 긴 밤의 역사'임을 알고 있다. 독자는 책을 통해 세상을 읽으며,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을 읽어내는 조타수가 된다. 그래 책이 개인을 넘어, 사회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게다. 정치적 망명객으로 살며 일평생 세계를 떠돌았던 알베르토 망구엘은 곁에 책이 있었기에, 품위와 행복을 지키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왔다. 책이 가진 힘, 독서가 가진 위력을 그의 삶이 증거한다.


무엇을 위하여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한 권의 책이 풍요로운 서평이자, 역사비평, 인물평이자, 자서전으로, 또 시나 소설의 다양한 장점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망구엘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길을 선택했으나 결국 흥미롭고 유익한 책의 저자가 되었다. 독자로서의 길은 힘있는 시민이 되는 길이자, 인문주의자로서의 미래며, 결국 저자로서의 삶이기도 하다. 책읽는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가능성이자 희망이지 않은가?

 

 

 

 

 

 

 

2013.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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