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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평점 :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조선 왕조는 500년이란 시간을 뒤로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역사에서 사라진다. 하나의 왕조가 500년간 지속된 사례가 희귀하 듯, 우리 역사에서 이민족의 식민지가 된 것 또한 처음이었다. 1259년 고려가 몽골족에게 또 1637년 조선이 만주족에게 항복한 것은 말 그대로 `항복'에 그쳤다. 이민족의 간섭과 인명,경제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 초 대한제국의 망국처럼 국가와 국민이 해체되고 이민족에게 편입되는 수순을 밟은 것은 한민족의 사상 처음이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나라가 망한 사건은 지금의 관점에서 여전히 두가지 시사점을 준다. 일단, 망국이란 사건과 지금 시대가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망국은 물리적으로 불과 100년 전 일이다. 두번째, 일본 식민지배 트라우마가 아직 치유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반도 분단과 전쟁, 그 이후 정세들이 조선의 멸망과 긴밀히 연결 돼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 대사관앞에선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일 집회가 천회를 넘겨 계속 되고 있다. 망국은 전쟁과 분단, 남북대립과 국론분열을 불러왔다. 여전히 망국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조선의 망국은 한 왕조의 멸망이 아니라, 국민과 민족 정체성의 해체였다. 대체, 조선은 왜, 어떻게, 일본에게 잡아먹힐 수 있었을까? 역사를 공부하며 한번쯤 드는 의문이다. 기본적 역사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그런 질문에 막연한 답을 하게 된다. 망국의 의미를 깊이 파헤치기보다는 피상적인 공부에 만족했다. 역사학자 김기협은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에서 일단 19세기 조선과 일본, 세계의 정세를 풀어놓고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를 되짚는다. 시야를 몇 가지 사건에 두지 않고 망국의 근원적 원인을 탐색한다.
서양문명은 19세기 중반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으로 밀고 들어온다. 이것을 서세동점(西勢東漸) 현상이라 한다.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중국은 아편전쟁(1840)과 중영전쟁(1856)을 거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도 1854년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하지만 그들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국가로 뻗어나갈 체제를 정비한다. 메이지 유신에서 일본은 무사정권인 막부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이룬다. 경제적으론 자본주의를 정치적으로 천황제를 기반으로 한 입헌정치를 시작했고, 사회 전 분야에 대한 근대화에 성공한다. 더불어 강력한 군사력을 키워 일본은 왕조시대에 머물러 있던 중국과 조선을 선점하기 위해, 서양세력과 일대 기득권 싸움에 뛰어들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일본을 경유해 한국을 덮친 서양 근대문명은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었다. 한국보다 힘과 덩치가 훨씬 큰 중국조차 그 위세 앞에서 1840년경부터는 자세가 흔들리고 1860년경부터는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 위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조선이 아무리 굳건한 체제를 지키고 있었더라도 정체성의 큰 훼손과 그에 따른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20쪽, 김기협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조선왕조의 종말은 그러면 19세기 말 세계적 열강들과 탐욕스런 일본의 제국주의 노선이 불러온 불가피한 재물이었을까? 힘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선점해서 이권을 차지하는 양육강식의 세계가 제국주의였다. 제국주의는 힘있는 국가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게 도덕적으로 꺼리낌 없던 시대다. 그러면 근대화에 뒤진 조선이 일본에 먹힌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엔 다른 문제가 있다. 망국의 원인을 전적으로 외부적 요인에 두는게 맞느냐 하는 점이다. 19세기 조선은 통치이념인 유교질서가 피폐해진 시기다. 당시 조선은 군군신신(君君臣臣)의 나라가 아니었다. 즉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한다는 유교통치 질서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던 게다.
저자 김기협은 피치못할 외부적 요인보다는 망국의 내부적 요인에 집중한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는 것은 바이러스나 추위 때문이다. 하지만, 몸 상태가 양호하다면 쉽게 바이러스나 추위로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말 조선이 일본에게 먹히고 만 것은 일본이 강했다기 보다는 이미 나라의 기운이 망국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하는게 옳다. 세도정치로 권력은 사유화되고 권력의 공공성이 증발되고 말았다. 19세기 말 조선은 내부의 민란조차 스스로 진압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선은 어느 시점부터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걸까? 저자는 17세기의 명분없는 광해군 축출(1623년)를 그 시발점으로 본다.
저자는 유교국가의 작동 원리인 왕권이 중간 권력의 지나친 경쟁과 발호를 억제해서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데, 17세기 조선에서는 이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당쟁이 정책 결정보다 정권 쟁탈에 치우쳐 정치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정통론이 정치 담론을 지배하게 되면서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줄어든 것이다. 약화된 왕을 명분없이 축출한 사건은 결국 이후 상황 변화에 유교 국가로서 대응할 자세를 잃어버리고, 군군신신의 정신또한 조선 정치에서 사라진 계기가 되었다.
"신하가 임금을 고르는 것은 임금과 신하 모두 자기 노릇을 못하는 극단적 상황이다. 충간(忠奸)의 기준이 확고할 수 없는, "성공하면 공신,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상황이다. 왕도가 사라진 상황이며, 유교 국가의 기본 원리가 무너진 상황이다." 93쪽, 김기협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은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지만, 저자는 고종의 무능함을 비판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세도정치로 허수아비 왕이되고, 민비와 대원군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상납의 정도에 따라 신하의 충성심을 치하했던 그는 정치적 판단력이 없었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 의정부 8대신 중 확고한 반대자는 참정대신 한규설 하나뿐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을사5적 뿐만 아니라 나머지 대신들도 친일에 있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을 아낄 줄 모르고 제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의정부에 모아놓은 것은 누구였나? '
조선 왕조는 결국 말기에 이르러 `전통과 도덕성에 집착한 사람들을 대거 도태시키고 도덕성이 박약한 집단에게 사회적 주도권을 맡긴 것'이 신민통치라는 치욕의 역사를 만들어 낸 군불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왕권과 유교정치의 원리를 되살리고자 한 마지막 왕, 정조 시대만 보더라도 정약용을 비롯한 많은 실력있는 실학자들이 정치에 기용되지 못하고 산야를 배회하다 이승을 떴다. 도덕정치와 유교 원리, 민본정치의 이념이 그들의 저서속에서만 살아 생동했던 것, 현실 정치에 응용되지 못한 것이 결국 100년 후 조선의 망국을 불러왔다. 을사늑약을 통해 일본에 나라를 판 의정부 8대신의 예에서 보듯, 한말 정치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에 눈 먼 자들의 것이었다. 이같은 망국의 논의는 그대로 현재적 관점에서 새로운 교훈을 준다.
" 한국인들, 특히 엘리트 계층 한국인들의 도덕성 수준이 20세기에 들어와 형편없이 떨어진 것은 국가가 망하고 이민족의 악질적 지배를 받은 때문이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 우리는 엽기적 수준으로 부도덕한 정치-경제 시스템에 빠져 있다. 앞장서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몇몇 사람만 처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무능한 진보보다 부패한 보수가 낫다', 도덕성이야 어쨌든 경제를 살릴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국민의 사고방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299쪽, 김기협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잘못된 역사는 반복된다. 망국의 역사는 조선 사회를 지배했던 엘리트 계층의 부도덕성에서 그 첫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이익앞에 나라를 파는 조약에조차 이름 석자를 올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훗날 어떤 친일 문학가는 일본이 그렇게 빨리 망할지 몰랐다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런 부도덕한 엘리트들에게 나라를 맡긴 국민은 불행하다. 일본의 야욕과 제국주의의 동물적 논리에 앞서, 조선은 이미 일본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나라의 식민지가 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빵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굶주릴지언정 자유가 소중한 법이다. 도덕적이지 못한 지도자가 주는 빵은 역시 부정하다. 21세기 그런데 `가치'보다 빵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도덕적 빈곤보다 흠있는 부자가 되는 길을 선호하는 이들도 많다. 정치도 결국 국민의 수준과 요구를 따르는 법이다. 우린 여전히 망국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게다. 그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어찌 장담하겠는가?

20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