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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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을 펴보는 일은 즐겁다. 지금도 여전히 새책을 사고, 펴보는 일이 즐거운 것은 아직 내게 지식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니 다행이다. 가끔은 책만 읽고 싶은 때가 있다. 예전에는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은 서평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스스로 한 약속 때문에 읽은 책에 대해선 반드시 서평을 쓴다. 가끔 아주 형편없는 책만 빼고, 1년 동안 손에 잡은 책 대부분 후기를 남긴다. 사실 읽는 일은 즐겁고 쉬운데 쓰는 일은 여전히 고달프고 어렵다.

 

서평이기 때문에 책에 대해서 쓰면 된다. 소재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책 한 권을 읽고 뭔가를 쓰려고 앉으면 머릿속은 백지 상태가 된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직장생활에 치여 한달에 고작 읽는 책이 3~4권 남짓, 쓰는 서평도 그 정도지만 언제나 글쓰기는 어렵다. 1년 책읽기 중 글쓰기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보는 이유다. 글쓰기 책 저자들은 글쓰기 강사부터, 기자, 시인, 소설가 등 다양하다. 그 다양한 직종만큼이나 그들은 글쓰기에 대해 할말이 많다.

 

놀라운 건 그들도 여전히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자백하는 점이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글 잘쓰는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작가들은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쓴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잘 쓸 수 있다. 평범한 우리는 그래서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바쁜 직장 생활 가운데서도 책 한 권을 읽고, 반드시 서평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고자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결국 글쓰기도 연습이다. 꾸준히 하면 잘 쓰게 된다. 책과는 인연이 없던 내가 지금은 서평가 시늉을 하며 사는 건, 그래도 십 수년 책과 가까이 지내며 책 후기라도 끄적였기 때문이다.

 

<속 시원한 글쓰기>의 저자 오도엽은 노동자 시인이다. 그도 어릴 적부터 문학이나 학문, 글쓰기 소리를 들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용접, 도장 노동자로 변신한다. 어느날 화장실에서 힘을 쓰다가 벽에 낙서를 시작으로, 시를 쓰기 시작해 훗날 전태일 문학상을 받는다. 이 책은 노동자가 시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글쓰기 노하우를 담았다. 그 노하우란게 별게 아니다. 삶과 노동을 글로 쉽게 풀어내는 것이다. 어려운 말 하려하지 말고, 쉬운 말로 자신의 노동과 삶을 그려내면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줄기에 해당하는 글쓰기 노하우다.

 

저자는 글 잘 쓰는 비결로 자신이 행한대로, 생각한 그대로, 생긴 그대로, 곧 사실대로 쓰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노동을 글쓰기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노동은 정직하고 건강하다. 건강한 삶에서 건강한 글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하면 모두 소설가나 시인처럼 멋지게 쓰려고만 한다. 글쓰기가 삶을 옮겨 놓는 일임에도 말이다. 글에 삶이 담기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우린 모두 노동자임에도 노동과 노동자라는 말에는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지 않는 잘못된 교육탓이다. 노동은 삶의 터전이다. 노동을 소외하니 글의 소재가 빈약해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노동을 소재로, 노동자를 인터뷰하며, 노동을 시로 옮긴 시인다운 말씀이다.

 

"글을 쓰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글을 쓰지 않아도 건강하게 산다. 노동을 하며 사람과 어울리는 게 세상살이다. 그러면 일하다 억울한 일이 생겨 세상에 알리고 싶을 때가 있을 거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하소연할 곳이 없으면 답답해 일기를 쓴다. 사랑에 빠지면 글 한 번 쓰지 않던 이도 연애편지를 쓸 생각을 한다. 이처럼 글은 책상 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바로 삶과 노동에서 나온다." 49쪽, <속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많은 글쓰기 책이 문장법과 기교를 가르치려 한다. 이 책은 그것을 몰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이며, 그 소재를 풀어낼 수 있는 정직과 용기이다. 책을 꾸준히 읽으면 문장법과 기교는 터득이 된다. 문법적으로 잘못된 문장을 쓰는 일이 없다. 기교는 배워서 익힐 수 있다. 하지만, 문장법과 기교만으로 화장한 글은 읽을 맛이 없고, 재미도 없다. 좀 투박한 글이라도 소재가 신선하고 진실하면 읽을 맛이 난다. 가볍긴 하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글쓰기론이다.

 

요즘 많은 곳에서 글쓰기 공모전을 개최한다. 작년까지 연속 3년 모 국가기관에서 개최한 청렴글짓기 대회 일반부에 응모했다. 요즘 많은 회사가 청렴을 강조하다보니 국가 기관에서 개최하는 청렴글짓기 대회 수상은 곧 회사 청렴도 점수와 직결됐던 거다. 그러니 회사에선 많은 직원이 응모하길 바라는 눈치고 말이다. 3년 동안의 노력끝에 작년에 일반부 장려상을 받았다. 그 상을 수상하면서 상금과 특전 등 두둑한 보너스까지 챙겼다.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은 작은 결실이다.

 

이 책에는 소설가 김별아가 쓴 에세이 한 편이 인용 돼 있다. 제목이 `에세이 공모전 입선 비결'이다. 이 글에서 김별아는 공모전의 입상 비결을 몇 문장으로 요약한다. `용례는 자신의 눈길이 닿는 곳, 반경 50미터 안에서 찾으라' `잘 쓴 글보다는 좋은 글이 오랜 감동을 불러오니 경험에서 건져올린 진정성을 담으라' 내가 삼수끝에 장려상이라도 받을 수 있었던 걸 되짚어 보니, 공모전의 심사위원 출신인 김별아의 비결에 수긍이 간다. 예화를 가져올 때,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불러오고 일상에서 감동을 가져오려 노력했던 것 말이다.

 

모든 글쓰기 책에는 글쓰기에 관한 특별한 처방이 없다. 허나, 그러한 처방을 받는다 해도 자신의 글은 곧바로 나아질 순 없다. 글쓰기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해도 글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지는 작가들이 넘쳐날 게다. 이 책의 저자는 노동처럼 정직하고, 땀이 깃든 글을 쓰라고 가르친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글은 곧 개성이며 각기 다른 개인의 인생이다. 누구나 훌륭한 소설을 읽으면 그처럼 쓰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 높고 높은 목표를 정해두고, 글쓰기를 갈고 닦아야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글쓰기에서 이상도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것 아닐까? 그래서 난 기본적인 문장법을 익힌 후엔 스스로 자신이 지향하는 글쓰기를 갈고 닦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갈고 닦는 길은 많다. 가장 쉬운 것이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는 일이다. 지속적인 서평쓰기는 책을 요약하는 능력을 키우게 한다. 어떤 책을 읽고도 요약하지 못하면 내 지식으로 온전히 소화된게 아니다. 서평쓰기를 통해, 내 생각을 보태어 책을 평가할 수 있는 실력이 는다. 좋은 점을 칭찬하고 부족한 점을 비평한다. 영화를 본 후, 영화평을 남기는 것도 좋다. 서평쓰기가 문장을 읽고 글로 풀이하는 것이라면, 영화평은 영상을 보고 느낀점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 두가지만 꾸준히 해도, 글쓰기 연습이 가능하다. 생각해보니, 지난 5년 동안 내가 쓴 글이 주로 서평과 영화평이었다. 그것도 한달에 겨우 3~4 편을 썼다. 단, 한달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했을 뿐이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제 서평과 영화평을 시작으로 칼럼 쓰기로 글쓰기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 물론 목표는 내년부터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서평과 영화평도 마찬가지로 처음 쓸 때 두렵고 어려웠다. 처음엔 모두가 형편없이 부족한 법이다. 그렇게 차분히 쓰다보면, 새로운 글쓰기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게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마음 가짐으로 읽고 쓰자. 글쓰기는 오랜 수양임이 분명하다.

 

 

 

 

 

201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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