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만큼 성공한다 - 개정판, 지식 에듀테이너이자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제안하는 재미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한가로이 노는 사람에 대한 가르침이다. 여름동안 열심히 일한 개미가 추운 겨울 베짱이에게 일장 훈계를 늘어놓는데, 그건 왜 너는 추운 겨울을 대비해 여름을 땀흘려 일하지 않았냐? 는 거다. 어린 시절 지겹도록 읽고 배운 이솝의 우화는 그대로 근면과 성실에 관한 뭇 사람의 인생론으로 자리잡았다. 이솝은 고대 그리스의 우화작가로 BC 6세기 경의 인물이다. 이솝의 가르침이 3천년 가까이 인류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그래서 공부안하고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건 악덕 가운데 악덕이었다.

 

21세기가 되자 개미와 베짱이는 삶이 역전된다. 자기 몸 생각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한 개미가 말년에 성인병으로 고생하다 병원에서 우울한 인생을 보내는 사이, 아마추어 음악인 베짱이는 훗날 음반 한장이 히트를 치는 바람에 국민 가수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이다. 우스개 속에서 바라보는 개미와 베짱이의 인생역전이다. 우스개라지만 어느 정도 진실을 담보한다. 근면과 성실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인 20세기의 가치이자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남긴 대표적인 피해의식'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인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이다.

 

인생의 목적이 `일'에 있지 않고 `노는' 것에 있으며, 더욱 `잘' 노는 것에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원과 노동력이 부족한 한국의 경쟁력은 오직 장시간의 근로시간과 일에 대한 헌신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이 파격적인 주장은 무어란 말인가? 더군다나 그는 잘 놀지 못하면 제 2 의 IMF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겁박하기까지 한다. 더 열심히 일하고 허리를 졸라매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많은 여가문화와 잘 노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아서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그는 시간이 주어져도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노는 것에 문외한이라고 질책하고 있다.

 

실제 저자의 주장대로 한국은 열심히 일하는 나라다. 최근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중 최장 노동시간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2003년 근로기준법의 개정으로 주 40 시간 근무제가 5인 사업장까지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이러한 불명예를 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법안의 특례제도 때문에 이 법의 예외를 적용받는 노동자가 4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특례를 적용받는 기업은 사실상 무제한의 연장근무를 허용하고 있으니 당분간 한국은 최장노동시간을 보유한 국가의 불명예를 벗어나기 힘들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노동생산성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거다. 그러니까 같은 일을 하는 선진국 노동 생산성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지만 쓸데없이 일터에서 시간만 많이 보내고 있는 꼴 아닌가?

 

우리는 공인된 자료를 통해서도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저자의 잘 노는 인생론에 한번쯤 귀 기울여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그의 `노는 인생론'에는 수식어 `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잘' 논다는 것은 무턱대고 노는게 아니다. 한해의 시작에 `잘' 놀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1년을 빈둥빈둥 보내자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잘 노는 인생'은 어디까지나 일과 노는 일의 밸런스를 맞추자는 것이다. 기업의 목적과 인생의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은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죽을 때 더 많이 일하지 않았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내 인생이 보람있었나? 의미있었나? 를 되돌아 본다. 인생 자체가 재미와 흥미로 가득찼다면 그는 죽을 때도 행복하게 눈감을 수 있을 것이다.

 

"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 주어진 임무를 다하며 그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그러나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삶의 목적이 되는 행복과 재미를 추구하면 뭔가 죄의식을 느낀다. 잘못된 생각이다. 모두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남긴 피해의식이다." p.73 김정운,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인생에서 일은 행복에 이르는 한가지 수단인데 지금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으니 주객전도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일이 지닌 인생의 가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다면 저자가 설명하는 `잘 놀아야 인생이 성공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 지식은 21세기의 산업을 이끄는 가치다. 그런데 새로운 지식은 창의력에서 나온다. 창의력은 어떻게 개발되는가? 바로 `재미'다. 재미는 열심히 일하는 근면과 성실의 태도에서 나오지 않는다. 여가와 휴식을 통해 보다 많은 자유를 개인에게 부여하는 순간, 그 한가로운 유희의 순간에 찾아온다. 과거에는 노동과 자본이 없는 나라가 망했지만, 21세기에는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지 않는 사회가 망한다. 이러한 지식창출은 결국 `잘 노는 놈'들의 몫이다.

 

둘째,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아이의 본분은 노는 것이다. 엄마와 나누는 최초의 대화는 놀이가 매개가 된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꿔가는 능력을 배운다. 인간의 본질은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다. 인간으로 길러지는 것의 바탕에 놀이가 자리하며, 엄마와 잘 노는 아이가 건강하게 커갈 수 있다. 결국 성공적인 인생을 시작하는 길은 잘 노는 일에 있었다.

 

셋째, 잘 노는 사람이 타인과 정서공유를 잘한다. 정서공유는 의사소통의 핵심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정서공유 능력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그

에 대처하는 능력은 놀이을 통해 개발된다.

 

넷째, 성공해야 행복한게 아니라 인생이 행복해야 성공하는 것이다. 행복은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인내하고 희생한다. 행복은 일상에서 얻어지는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일과 의무로 둘러쌓인 인생이 행복할 수 있을까? 재미와 흥미를 잃어버린 오늘이 행복하지 않다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이 행복해야 그 행복이 모여 미래가 행복해지고 인생이 행복해진다.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 성공한다. 인생에서 소소한 재미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도대체 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어딜 가면 재미있는지, 뭘 하면 재미있는지 알려줄 것 아닌가? 그러나 이렇게 내가 물으면 대부분 당황한다. 한참 생각하다가 남들 다하는 `여행' `영화' `먹는 것'이라고 머쓱해 하며 대답한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왜 사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p.282, 김정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효율적으로 노동하는 인간의 삶을 코치한다. 하지만, 이 책은 효율적으로 노는 법을 가르친다. 개미와 베짱이의 21세기판 역발상이다. 성실과 근면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20세기형 CEO들이 한국사회에 많다. 성실과 근면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너무나 성실하고 근면해서 탈이 난 한국 사회를 이제는 되돌아 보자는 얘기다. 그래서 김정운 교수의 문제제기는 시의 적절하다. 40대 남성 사망률 세계 1위, OECD 세계 최장 노동시간 보유국, 최다 자살률, OECD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국 이란 오명을 듣고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통해 근본적 삶을 성찰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책 제목은 전형적인 역발상이다. 하지만, 이 시대 베짱이의 인생역전은 더이상 우스개가 아니다.

 

인생의 목적을 `일'과 `지위'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 은퇴 후 할 일이 사라지고, 지위에서 물러나면 빨리 늙고 빨리 죽는 다는 속설이 있다. 삶의 목표가 사라져버리자 생의 의미조차 잃어버린 이들의 쓸쓸한 말년이다. 그들의 남은 생을 구원해주는 것은 틈틈이 익혀온 취미다. 그들에게 사소한 재미를 선사했던 그것, 몇 개월 몇 년을 지탱하고 사라지는 공식적인 지위가 아니라, 흥미와 관심으로 재미를 불러오는 그 누군가의 소소한 취미가 살아가는 의욕을 주고, 건강을 줄 수 있다. 저자는 노후에 이러한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사람이 진짜 성공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 아이덴티티는 재미에서 기원한다.

 

신문 칼럼을 통해 만나왔던 저자의 글에서 받은 인상은 `재미있는 삶'이었다.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는 그도, 군대시절 차가운 총구를 입안에 넣고 자살 직전에 내몰린 적이 있음을 이 책에서 고백한다. 어쩌면 항상 재미를 추구하는 그의 글들은 그러한 젊은 시절 트라우마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상처의 경험이 재미있는 인생을 살자는 교훈으로 되돌아 온 것이라면 정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에서 심리학을 13년간 수련하고, 이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로 살아가는 저자가 그 권위와 진지함으로 열심히 놀자며 독자를 부추긴다. 책장을 다 덮고 나니, 이제 맘놓고 노는 방법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잘 노는 걸까? 그 숙제를 풀어야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일게다.

 

 

 

201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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