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 부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올해도 예외없이 장하준을 읽었다. 이로써 그의 저작으로선 세번째 독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이어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대선과 총선이 있는 올해 그가 발표한 또 하나의 문제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나꼼수의 주진우 기자가 소속된 `시사in'의 경제,국제면 팀장을 맡고 있는 이종태 기자와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현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 및 운영위원으로 있는 정승일과의 대담으로 구성된 책이다. 하지만, 이 대담집은 대담 참여자 사이의 논쟁은 찾아볼 수 없다. `일심과 동체'가 되어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함께 성토하고 있으니, 이 책의 대담자들은 장하준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군다나 이 세명의 대담자들은 2005년에 합심하여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공저한 경력이 있기까지 하다.

 

그간 장하준의 저작들에서 그의 목소리를 지지하고, 긍정했던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상당한 혼란을 겪을 것 같다.  그가 신자유주의를 앞장세운 선진국들의 횡포와 과거를 비난한 전작들에서 독자들은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폭로하고 비판해온 그의 글들을 통해, 우리는 세계 경제의 이면에 드리워진 가진자들의 폭거와 선진국들의 약삭빠른 `사다리 걷어차기'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장하준의 글을 읽으며 세계 경제가 오늘날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또, 경제학 책이 도표와 수식, 전문용어만으로 설명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는 것에 환호했다. 장하준은 뭇 독자들이 경제학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도왔다. 그의 책이 지금껏 경제학 서적으로는 최초로 100만권이 넘는 판매고를 거둔 이유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읽는 독자들은 무턱대고 장하준의 논리에 환호하는 일을 멈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장하준의 논리,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공부해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서 장하준과 대담자들은 비판의 초점을 놀랍게도 `우파 신자유주의'가 아닌 `좌파 신자유주의'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우파와 좌파 신자유주의는 물론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이 논쟁적인 책에서 대담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정치적 용어와 일맥상통한다. 우파는 보수, 좌파는 진보계열을 통칭한다.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혐의가 짙은 보수보다는 진보계열을 성토하는데 지면을 크게 할애했다는 점이다. 장하준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을 긍정하고, 진보계열이 주장하는 재벌해체를 반대하며, 소액주주 운동을 이끌고 있는 시민단체의 경제민주화 운동 자체를 비판한다. 경제민주화 세력의 활동이 재벌을 해체하고, 지배구조를 1인 소유에서 다수 주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국부의 해체와 이적행위에 빗대어 설명한다. 과연, 장하준은 무엇을 주장하기 위해 반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일까? 지난 3월 말 출간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지금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진보적 경제학자들로부터 융단폭격에 가까운 비난을 받고 있다. 지금껏 우리는 장하준을 잘못 알아온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장하준은 변하지 않았고, 이 논쟁적인 책은 그간 장하준이 집필한 책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항상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개입을 최소화 하고, 시장에 자유를 확대하는 것인데, 그건 경제학의 원로 애덤 스미스가 시장은 가만히 놔두면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걸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의 현대적 버전이다. 장하준은 지금껏 이같은 고전경제학의 원리를 철저히 부정하고, 부패와 불공정으로 기울기 쉬운 자유방임 시장에 국가개입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지금의 선진국이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그들도 과거에는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가가 산업정책을 이끌어왔다. 개발도상국에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는 선진국의 행태는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의 일종이라고 일갈했다.

 

이 책에서 장하준과 대담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한발 더 나아가, 경제 민주화와 재벌 해체 세력이 결국엔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돕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목적은 시장의 공정한 경쟁, 부정의한 재벌의 추방이지만 주주 자본주의로 무장한 국제화된 금융 자본이 마음대로 국경을 넘어, 투자와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하는 시대, 결국 경쟁력을 갖춘 재벌의 유망 기업들이 국제 펀드와 외국 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1인 지배의 재벌 체제와 박정희식 관치경제을 긍정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재벌을 해체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이룬다는 것은 화려한 말 잔치일 뿐, 결국엔 한국 대기업들을 외국 자본에 넘겨 국민 경제가 해체될 수 있다는 걸 걱정한다. 박정희식 관치경제는 부정적 용어이긴 해도, 오늘날로 치자면 불공정한 시장과 외국 자본의 위협으로부터 국가 권력의 개입을 통해, 국민경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관치 금융이라는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정부가 끌어안고 소중하게 잘 키워 우리나라 은행 산업의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박정희 시대에 시작된 산업 정책과 정책 금융의 전통을 앞으로도 잘 살려 진정으로 첨단 금융을 세워야 하는 거예요.그 좋은 전통을 민간의 시중은행에 접목하기 위해서라도 은행권의 주주 자본주의는 강력하게 규제해야 하고요." 장하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p.115

 

한국 경제의 고질병을 장하준과 대담자들은 진보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박정희와 재벌에 떠넘기지 않고 시각을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력들, 즉 국제금융자유주의 세력과 월스트리트의 주주이익 극대화 세력에 있다고 본다. 결국엔, 진보계열이 국내적 시각에서 관치경제의 박정희와 독점 재벌의 횡포에 초점을 맞춘거라면, 이들의 시각은 국제적이라 평할 수 있다. `시사in'의 이종태 기자를 제외하곤, 장하준과 정승일이 유럽의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는 것에서도 이들이 미국 주도의 월스트리트 주주,금융자본주의에 포섭되지 않는 이유는 설명 가능하다. 이 책을 통해 장하준과 진보,개혁 세력의 논쟁이 붙은 이유는 연구실에서 집필된 단일 저자의 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정제된 표현을 벗어나는, 보다 공격적인 어투의 문장들이 대담 가운데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담 가운데 이들이 쏟아낸 문장들은 그간 신자유주의의 반대편에서, 한미FTA를 반대하고, 재벌 해체를 경제 정의 차원에서 일관되게 주장한 사람들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일방적 매도한 부분이 있다. 매도를 당한 측에서는 도대체 장하준이 자신들의 저서를 읽기나 한건지, 그 학자적 불성실에 의혹을 제기한다. 한국적 상황에서 박정희의 관치경제와 재벌이 주도하는 산업이 현재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장하준과 대담자들의 쏟아낸 좌파 신자유주의자들에 관한 비판은, 박정희와 재벌을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로 비춰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 부분에 대해 장하준은 한겨레21 인터뷰를 통해,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있음을 시인하고 `자신과 개혁진보 진영 간에 방법론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큰 방향에서는 같다'는 점을 인정했다.

 

"우리가 원하는 복지국가는 국가 형태는 민주 공화국이면서 경제 형태는 통제된 자본주의 내지는 복지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경제 민주화는 국가 형태는 민주주의이면서 경제 행태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라고 요약할 수 있다." 장하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P.421

 

일부 논쟁이 있긴 하지만, 장하준과 대담자들이 이 책의 결론으로 삼고 있는 주제는 우리 경제와 국가가 나아가야 할 경제 체제다. 그것은 유럽식 복지국가 건설로 규정지을 수 있다. 유럽식 복지는 전국민 복지다. 미국식 복지가 경제발전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관한 잔여복지라면, 유럽식 복지는 세금을 올리더라도 전국민이 골고루 혜택을 받는 상향 평준화된 복지다. 국가 개입을 통해 현재 재벌의 주요한 산업을 국유화 하더라도, 외국 자본에 넘기는 일을 막고, 주주 자본주의의 통제와 국제 금융 자본의 규제를 통해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하면서, 재벌로부터 노동권과 임금, 증세를 맞바꾸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재벌도 선호하는 주주자본주의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이 책의 대부분이 주주자본주의와 국제 금융에 대한 비판이지만, 이것을 규제할 대안이 무엇이냐 하는 점은 명확히 밝혀놓지 못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장하준은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의 밖에 존재하는 경제학자다. 스스로 그렇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진보성향의 독자들이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악이라고 규정하던 반민주 세력과 보수진영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고 있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관치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벌은 노동자의 희생과 독재 권력의 비호 아래 지금의 국제경쟁력 있는 기업을 키웠지만, 오늘날 재벌이 하는 일들은 여전히 동물적인 포식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정치적, 경제적 부정의를 모두 눈감아야 하는가, 라는 자조섞인 자문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장하준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결론적으로 진보계열 경제학자들과 장하준의 논쟁은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궁극적인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방법론의 차이인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반대 의견없는 인적 구성원의 대담 과정에서의 과열된 동조와 호응이 피아(彼我)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 점이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장하준 공격의 십자포화를 빗겨난 신자유주의의 원조 세력인 보수와 재벌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반복지, 친재벌,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장하준의 격려가 아니라, 은유적 공격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장하준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 평균 노동 시간이 연 2500시간인데, 이것은 유럽인들의 1500~1700 시간에 비교하면 엄청난 노동 시간을 보유한 것임을 밝히며, 이러니 우리 인생이 피곤하지 않겠는가? 라고 묻고 있다. 이 논쟁적인 저작에서 장하준과 대담자들이 가닿는 결론이 왜 유럽식 복지국가인지 명확해진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쥐를 잡을 수만 있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따질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장하준은 이 말을 그의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인용한적이 있다. 큰 틀에서 이 말 많은 대담집에서 장하준의 주장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연상케 한다. 장하준이 역사,경제적 명분보다 실용주의를 선택한 것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것이 옳으냐, 하는 점에서 뭇 경제학자와 독자들로선 생각의 간격이 존재할 것이며, 논쟁의 시초가 될 만 하다.

 

 

 

 

 

 

201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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