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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칸 - My Name Is Kh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스포일러 알림: 이 글은 영화 전반에 관한 줄거리륻 담고 있습니다.
메세지가 없는 영화는 보기 싫다. 코메디는 일주일에 한번 개콘 시청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코메디 영화를 보지 않는 이유다. 상영관을 찾아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책 한 권 까지도 인터넷 서점을 통해 주문해 보는 시대에 충성스런 일이 아닌가. 이런 충성스런 관객들을 위해 영화는 뭔가 책이나 티비에선 보기 힘든 임펙트 있는 메세지를 줘야 한다고 믿는다. 최소한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잔상이 하루 정도는 가줘야 가뜩이나 흉흉한 소식들로 상처받은 관객들을 위무하는 일이 될 것 같다. 천재지변후에 겪는다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보편적인 질환이 돼 버린 시절이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사제기를 해야 할 판이다. 한미 관계는 그 어느 시절보다 최상을 맞고있다 하는데, 남북관계는 최악이라니 극과 극이 유행인가보다. 첨단 기술력과 세계 최대의 부국 가운데 하나인 이웃 일본은 원전 사고후 수습을 못하고 방사능 물질로 세계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 방사능 때문에 무섭긴 이심전심인데, 무섭다고 대놓고 얘기했다가 국가전복세력으로 몰리기 쉽상이니 조심해야 한다. 이 시절을 기회로 삼아 정부관료들은 번역도 엉망인 FTA를 날치기로 통과시키려다 여당 의원에 발목이 잡히는 웃음을 선사한다.
이럴 때 영화 한 편의 위무는 얼마나 소중한가? 현실이 목타게 엉망일수록 영화는 가슴을 후련하게 적시는 청량음료 같아야 한다. 카란 조하르 감독의 <내 이름은 칸>의 인상적인 포스트와 포스트에 내걸린 대사 한 마디는, 이 시절을 묵묵히 살아내야 하는 관객들의 답답함을 풀어줄 것만 같다. 그래, 영화속 천재 자폐아 `칸'처럼 관객들도 대통령을 만나고 싶기는 매한가지다. 대통령은 엉망인 세상을 되돌릴 수 있는 권력이 있으니깐.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포스트속에서 전해오는 어떤 절박함이었던가. 초점없는 흐릿한 눈빛에 배낭을 맨 자폐아 칸이 대통령을 만나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 모든 걸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자폐아에게 대통령을 만나야 할 이유란 역시 순수하고 소박한건 아닐까.
영화는 워싱턴DC행 비행기를 탑승하고자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려는 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어색한 표정과 어리숙한 자태, 백인이 아닌 칸은 공항 검색대원들에게 입과 콧속 까지 검열을 받는 수모를 당한다. 검색을 받으며 칸은 끊임없이 주문처럼 한가지 대사를 반복한다. "제 이름은 칸이고,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My name is khan and I'm not a terrorist) 그 대사가 칸의 입에서 반복될수록 이상하게 관객의 귀엔 자신은 이슬람교인이고 테러리스트라고 바뀌어 들린다. 칸의 피부색과 이름이 종교와 신분을 드러내놓고 이제 그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한다. 영화의 도입부는 2001년 9월 11일 이후 현재 미국 공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함축하여 보여주는 듯 하다.

이 영화는 미국 헐리우드를 빗대 인도의 영화 산업을 뜻하는 볼리우드(Bollywood) 영화다. 볼리우드란 용어조차 희미했던 내게 인도 영화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처음보는 볼리우드 영화가 요즘 예상 밖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한다. 남자 주인공 리즈완 칸 역의 샤룩 칸은 인도의 탐크루즈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섹시나 핸썸이란 수식어와 안 어울리게 이 영화속 그의 자폐 연기는 실제 자폐아를 연상시킬 정도로 완벽했다. 인종과 종교적 편견이 한 자폐아의 삶을 파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영화는 종교 문제로 항상 시끄러운 인도가 집착할만한 충분한 소재였을 것이다.
4대 종교의 발상지이자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인과 20% 남짓한 이슬람교도 사이에 역사적 종교 분쟁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땅이 바로 인도다. 그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후 종교문제로 인도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파키스탄과 힌두교를 숭상하는 현재의 인도로 나뉘었다. 국가의 분리 후에도 파키스탄과 인도는 카슈미르 지역에 얽킨 종교와 정치문제로 유혈 충돌을 반복해 왔다. 어린시절 영화 속 리즈완 칸의 어머니가 어린 칸에게 말하는 인생의 교훈은 곧장 이 영화의 주제로 가 닿는다.
"이사람은 칸! 이사람은 칼을 든 사람 칼을 든 사람은 나쁜사람, 이사람은 칸! 이사람은 사탕을 든 사람, 사탕을 든 사람은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은 좋은 행동을 한단다. 세상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단다. "
세상엔 종교인들의 기준처럼 이슬람교도나 기독교인, 불교인이나 힌두교인이 있는게 아니라 바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이 기준은 몹시도 유치하고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자폐아 칸에게 엄마의 이 단순한 가르침은 가장 유효한 인생 철학이자 이정표였다. 과연 이 쉬운 가르침은 자폐아 아들만을 위한 엄마표 당의정이었을까 ?
엄마의 죽음 이후, 동생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칸은 그곳에서 사랑하는 연인 만디라(까졸)를 만난다. 전 남편에게 씻을 수 없는 이혼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만디라에게 청혼하고, 만디라의 아들 사미르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지만 그들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엄마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세상과 사람들이다. 힌두교도인 만디라와 이슬람교도인 칸은 사미르가 미국내 종교적 편견으로 희생되고 나서야, 자신들의 종교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과 평화를 이상으로 삼는 종교는 똑같이 사랑과 평화로 지은 그네들의 단락한 가정을 파괴한다.

영화는 911 이후, 미국인들이 이슬람과 이슬람교인에게 갖는 `이유있는'는 증오와 편견을 낯익은 드라마로 풀어낸다. 세상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특정 종교와 피부색으로 바뀐 삭막한 어메리카에서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길은 곧 대통령에게 찾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약간의 비약이 있을 수 있겠으나 어찌보면 이만큼 절박했던 것이라고 돌려 생각할 수 있다. 선량한 자폐아 칸의 꿈은 실현되고, 영화는 대통령을 만나 전형적인 자폐아의 태도와 억양으로 "My name is khan and I'm not a terrorist"를 고백하는 그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그러나 뭔가 씁쓸하다.
좋은 영화의 조건은 임펙트한 메세지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한가질 더 추가해야 할 듯 하다. 임펙트한 메세지를 어떤 연출력으로 살려 내는가, 하는 점 말이다. 영화 속 대사는 줄곧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철학과 종교의 나라 인도가 만든 영화여서 그럴까? 허나, 감독은 줄곧 미국에 대한 컴플렉스와 자발적 오리엔탈리즘을 드러낸다. 미국 관객에게 아부하고 싶었을까? 미국 대통령을 만나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그저 칸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 속 자폐아의 편집증은 곧 미국 관객의 눈에나기 싫어 안달하는 감독의 평이한 연출력으로 표출된다.
911 이후, 집단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미국인들에게 특정 종교와 피부색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칸의 엄마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말처럼,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언제나 종교나 피부색이 아니라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이어야 한다. 911 사건이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증오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나? 감독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 점을 파헤쳐야 했다. 미국이란 대국에서 어리숙한 자폐아 칸이, 이슬람교를 갖고 있다고해서, 그의 이름이 이슬람식이고, 그의 피부색이 희지 않다고 하여, 한 사람의 소중한 인권이 침해되어서야 쓰겠냐고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삼아야 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자신의 그저 칸일 뿐이라고 아부하고 공증받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물론, 애둘러 미국의 억압적인 상황을 고발했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빈약한 감독의 연출력으론 관객의 상상력이 거기까지 미치도록 돕지 못한다.

세상엔 많은 종교가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는 지역과 국가를 하나로 묶어내고, 인류에게 평화와 안식과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역시 전쟁과 학살과 증오와 피를 불러온것도 종교다. 역설적이게도 어떤 경전도 피와 증오를 부추기지 않는다. 피와 증오를 불러오는 것은 오직 종교가 아니라 잘못된 인간의 신앙과 그들의 욕망이었다. 코란을 공개적으로 소각한 미국 목사 테리 존스가 최근 "잘못한게 없으니 뉘우칠것도 없다"고 천명했다. 그의 잘못된 신앙으로 죄없는 아프칸 주재 유엔직원들이 사망했고, 아프칸의 반미시위가 격화되어도 자신은 신앙안에서 떳떳하다고 밝힌 것이다. 진리가 하나인 것은 분명할 테지만, 어떤 지상의 종교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역시 종교가 진리로 인간을 이끈다는 것은 분명할 테지만, 증오를 부추기는 어떤 종교도 그 순간 거짓이 되고야 만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이 영화의 임펙트한 메세지는 감독의 빈약한 연출력에도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칸의 엄마는 코란을 인용해 다음처럼 말한다. "만약 무고한 사람 한명을 죽이게 된다면 그건 세상을 다 없애는 것과 같다 " 우리의 종교와 신앙을 되돌아 보기에 충분한 영화속 대사 아닌가?
2011.4.20
개츠비의 영화읽기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