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지음, 임지호 옮김 / 경당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은 읽고 곧바로 리뷰를 써 올리는 것보다 침묵속에서 읽은 내용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고민해야만 한다.  진정한 책읽기의 마무리는 독후감이 아니라 차분한 사색과 행함에 있음을 알게 해주는 책을 만났다.   내게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는 바로 그런 책이었다.  제목처럼 `예술가의 길' 쯤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제목만 보아서는 예술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양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장을 파고들면서 번역서의 한계를 넘어 처음과 끝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저자의 필력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술가로 성장하는 길을 이야기하지만 예술가를 특징지우진 않는다.  누구나 예술가의 본질을 갖고 태어나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본질을 발산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그는 반복해 강조한다.   

예술가의 핵심적인 바탕은 창조성에 있다.  신은 창조적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진정 창조적이지 않다면 세상엔 이처럼 다양한 종들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기질을 본받은 인간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기질을 아이가 물려받듯이 신의 창조적 특성은 인간에게 전이 돼 있다.  그러나, 누구는 예술가로 대성하고 누구는 평범한 일상인이 된다.  그는 존재하는 것을 만족하는 인간으로 살아간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해 생계를 유지하고,  일점일획도 다르지 않는 일상을 보낸다.  그는 전혀 창조적이지 않는 기계의 모습을 닮았다.  예술가와 일상인을 비교하자면 삶을 즐기는 자와 견디는 자로 대별할 수밖에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획득하진 못한다.   삶안에서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는 존재하나 진정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느끼고 사랑하고 발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창조성을 인간의 본바탕으로 설정하는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저자인 줄리아 카메론은 뉴욕의 멘하튼과 뉴멕시코 고산지대를 오가며 작가로 다양한 이력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다.   흥행에 성공한 `마이에미 바이스'라는 TV 시리즈물 대본 작가였고, <God's Will>이라는 영화로 런던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또 문예창작 강사로, 작곡가로도 일하고 있다.  그의 가장 이채로운 이력은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을 연출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결혼했었다는 것이다.  훗날 그들은 결별한다.   마틴 스콜세지와 이혼 후 그는 우울증과 알콜중독으로 오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의 창조성이 본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발견의 과정에서 얻은 창조성 회복 과정을 기록한 책이 바로 그의 <아티스트 웨이>였다.  이 책은 창조성 프로그램의 교재로 쓰이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 일반인들의 삶에 창조적인 기운을 불어넣었다.

인간의 본령이 아티스트라는 걸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우선 무엇이 필요한가?  저자는 창조성 회복이란 기적의 도구로 이 책에서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를 소개한다.  이 도구들은 존재하나 의식이 없는 당신의 창조성에 훌륭한 인공호흡법의 역할을 할 것이다.  왜 이 책이 특별하게 느껴질까?  영혼에 감추어진 창조성을 이 책을 통해 회복하고 복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관통하여 이 기적의 도구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12주에 걸친 회복의 여정을 프로그램화 시켰다. 

12주에 걸쳐 우리가 써야 할 모닝페이지는 대체 무엇일까?   아침 일찍 일어나 책상 앞에 앉은 당신은 하얀 백지위나 모니터 위에 이제 두 세장 정도로 생각의 흐름을 적어 넣는다.  모닝페이지는 우리 내부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과정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내가 무엇에 상처 받았는지 그곳에 기록한다. 무엇을 쓴다고 해서 물리적인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계를 잊을 것이다. 나를 설정하고 있는 주위의 사람들, 조건들, 억압의 요소들을 마음껏 수정하고 고치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모닝 페이지 위에서 우리의 억압받은 창조성은 자신의 본래적 기능을 점차 회복한다.  그 안엔 잊혀진 꿈이 있고, 발설하고 싶은 언어가 있고, 상처받은 자아가 숨어 있다.  그를 불러낸다는 것은 당신의 창조성에 용기를 북돋는 일이 아닐까? 새로운 가능성을 기획하는 일이 아닐까?

모닝페이지와 더불어 12주간 우린 아티스트 데이트를 진행해야 한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일종의 산책이다. 혼자 하는 산책이 아니라 내면의 창조성이란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서 그에게 응석을 부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다.  하루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돈은 많이 들지 않지만 시간과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무엇이든 좋다.  영화보기, 해변 산책, 자전거 타기, 아이쇼핑, 운동복 차림의 죠깅.  창조성을 불러내는 일은 일상의 업무나 의무에 짓눌려 있으면 불가능하다.  오직 목적없는 유희의 순간을 만들어 낼때만 우리의 창조성은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걸어 온다.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두 가지 도구의 배합을 라디오에 비유해보자.  그것은 송신하고 수신하는 쌍방향 과정이다.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자아와 꿈의 세계, 불만과 희망을 송신한다.  그리고 아티스트 데이트를 통해서는 통찰력과 영감, 지시를 수신하는 것이다."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p.44

이 두 과정을 통해, 우린 본능적인 창조성이 어떻게 불모의 영역으로 내몰렸는지 깨닫는다.   왜 예술가들이 일반인과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하며 살아가는지 힌트를 얻게 된다.  예술가는 창조적 자아를 보살피고 키우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예술가로 살아갈 수 없다.  일반인이 생계를 예술로 꾸릴 수도 없다. 그러나 자신이 본래 예술가의 기질을 내면에 품고 태어났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사람들은 일상에 매몰 돼 살아가지만, 가끔 음악이나 미술, 글쓰기 분야에서 재능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 재능이 전문성을 띄지 못할지라도 여기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창조성을 발휘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며 그런 욕구를 내면에 품고 있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가끔 아내에게 농담처럼 듣는 말이 있다.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 있고, 그림을 그릴테니 이젤을 사달라는 것이다.  살림에 온통 정신을 쏟는 사람에게 듣는 말은 사실 농담이 아니라, 내면의 창조적 자아가 내보내는 진실의 언어였던 것이다. 

우리는 쓸 수 있는 시가 있으면 그것을 써야 하고,  그릴 수 있으면 무언가를 그려야 한다.  내면에 창조되기를 바라고 잉태된 모든 창조성은 밖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그것이 예술작품으로서 가치를 갖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창조성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 고 카메론은 주장한다.  이 책이 뭇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내면의 자아가 상상했던 것보다 무궁한 창조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창조적 인간으로 회복되어야 하고, 될 수 있음을 확신케 되는 것이다.

작가로서 창조성의 고갈앞에 서 있는 당신이라면,  아니 평범한 일상인이 무언가를 써보고자 하는데 잘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줄리아 카메론의 다음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내 글쓰기가 막히는 지점의 문제점을 간파했다.  내면에 없던 것은 글쓰기로 나오지 않는다.  좋은 글은 미사여구가 가득 들어간 느끼한 언어속에 있지 않다.  바로 나의, 당신의, 그 누추한 삶속에 있었던 것이다.   "예술은 새로운 무언가를 억지로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적는 것이다.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p.204  

글을 쓰고자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심과 노력을 들이는가?  글이 잘 쓰여지지 않는 이유는 카메론의 말처럼 분명해졌다.  우리가 내면이 아닌, 밖을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모든 답은 내면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밖으로 표출돼 나올 때 그것은 소설이 되고, 조각품이 되고,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된다.   내면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는 것은 내면의 자아, 내면의 창조성이 자신의 본령을 마음껏 뽐내고 드러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기를 세워주는 것이다.

줄리아 카메론은 창조성이 막혀 있는 사람들에게 독서는 중독의 일환이라는 섬뜩한 말을 한다. 독서가 창조성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건 무슨 뜻일까 ?  많이 읽지 못해서 창조성이 부족한게 아니라 많이 읽어서 창조성을 훼손한다는 뜻이다.  독서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자신의 사고와 느낌을 제대로 소화하기보다는, 자신의 재료로 직접 요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에 따르면, 지나친 독서가 슬럼프를 가져올 때 그것을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은 일주일간 책읽기를 중단하는 것이며, 그것보다 더 효과적인 탈출구는 없다.   끊임없이 책읽기를 이어가는 것이 창조성을 발현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내 경험으로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과거 너무 많이 읽어서 슬럼프에 빠졌던 날이 분명히 있었다.

지식과 예술의 가치와 영역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비평가와 소설가의 차이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비평가의 비평은 창조적인 활동은 아니다.  그는 분석적 언어를 쓸지언정 창조적 언어를 쓰지 못한다.  창조된 언어에 메스를 가할지언정, 창조성이 담긴 언어 자체를 생산하진 못한다.  그래서 비평가는 잉태되지 못한 예술가이며, 예술적 사생아가 아닌가.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말로 상상력, 즉 창조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 책은 예술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나 일상에 매몰돼 무언가를 창조하고자 하나, 자신의 능력을 평가절하하며 살아왔던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다.  모두가 자신의 삶 안에서 예술가였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내 안의 창조적 자아를 키우기 위해 줄리아 카메론이 가르쳐 준 모닝페이지와 아티스트 웨이를 적극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휴일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는 날 가벼운 걸음으로 아내와 함께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날,  내가 그 산책길에서 눈길 주었던 모든 것들에서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느낀다.   그렇게 삶은 예술로 변질될 수 있는것 아닐까?   이 책은 긍정의 확신을 보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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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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