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은 한동안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가?  사람들은 경제에 대해서 할말들이 많았지만, 경제학을 공부하고자 작정해 본 이는 별로 없을 듯 하다.  온갖 수식과 전문용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차트로 이루어진 경제학 교수들의 논문을 읽는 것은 감히 일반인들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지금도 경제학 교수들의 논문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일반독자는 흔치 않다.  이건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다.  경제학과 경제학 교수들은 그렇게 높고 높은 철옹성을 쌓고 대학과 연구실이란 높은 성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그네들만의 용어와 분석틀로 연구하고, 그 결과물들을 고차원적인 논문으로 쏟아냈다.  그 논문의 독자는 물론 경제학을 연구한 교수나 학생들 정도이지만 말이다.

일반 독자들을 위한 교양 수준의 경제 서적들이 출판가를 휩쓸고, 감히 경제학을 다루는 책이 베스트셀러 1위를 달려본 일은 최근의 현상이 아닐까?  경제학이 철옹성의 담을 넘어 세상에 그 민낯을 드러내 보여준 것은 대단한 현상임엔 분명하다.  논리적이면서 쉽고, 그 흔한 도표하나 없이 수필처럼 읽어낼 수 있는 경제서적을 만났을 때 독자들은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가.   지금껏, 경제학 전문가들이 왜 시답짢은 용어사전이나 펴내고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장하준은 바로 쉬우면서 논리적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수긍할만한 경제학 서적들을 펴내고 있는 학자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그가 한국 독서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것은 두가지 현상으로도 증명된다.

첫째, 2008년 국방부가 금서목록에 올린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가 바로 장하준이었다는 사실이다.  장하준은 훗날 국방부의 이 발표에 고개숙여 감사했다. 금서목록에 오르자 책이 더 잘 팔렸던 것 !   둘째, 2011년 올해의 현상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초 출입기자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장하준 교수를 "학계에서 비주류 경제학의 대표 학자로 우리나라의 국가적 자산"이라고 치켜세웠다.  국가기관인 국방부와 재정부 장관이 장하준에 대해 전혀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한쪽에선 금서라고 차단하더니, 한쪽에선 자산이라며 칭찬한다. 이 현상만 놓고 봤을때, 장하준이 그네들에게 던진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공포와 여유',  그들의 반응이 이처럼 헷갈리는 이유다.

지금껏, 누구도 신자유주의,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의 모순과 해악을 대중이 알아먹을 수 있는 쉬운 언어의 경제학으로 풀어 써내지 못했다는 반증 아닌가?  장하준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이렇게 독자들의 지지를 받자, 이곳저곳 보수와 진보측 가릴 것 없이 경제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현상은 흥미롭다.  보수측의 비판은 이해가 가지만, 진보측의 비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장하준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나 자유시장 등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활개치게 만든 경제학과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로 비판한다. 심지어 그는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을 먹여살리는 수단으로는 무척 유용하다"라는 말을 인용해 경제학이 실제 경제 운용과 큰 관계도 없으며, 경제학이 오히려 경제에 해롭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처럼 뭇 경제학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생존권까지 위협하는데 장하준이 곱게 보이겠는가?

그의 성공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독자들은 확실히 알게 됐다.  선진국들이 날때부터 선진국이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그네들도 오늘날의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을 거치고 현재의 대한민국 같은 개발도상국을 거쳐, 오늘의 미국과 영국같은 선진국이 되었다는 이 당연한 사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선진국으로 올라설 때 써먹은 보호무역, 높은 관세,  보조금,  국영 기업이란 사다리를 21세기가 되자 감쪽같이 치워버렸다는 것이다.  그 사다리는 물론 후진국이 이제 멀리서 발견해 기쁜 마음으로 오르려는 찰라에 있는 물건이고,  개발도상국은 사다리에 오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꼭대기에 올랐다고 그걸 먼쳐 치운다면 그것만큼 치사한게 어딨겠는가?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이런 것들이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특별 대우'라고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 대우를 한다는 것은 그 대우를 받는 사람에게 불공정한 우위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한 승강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레일 점자를 `특별 대우'라고 부르던가?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들이 부가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고율의 관세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보호 수단을 `특별 대우'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이는 상이한 능력과 필요를 가진 국가들에 대한 차별적인 (그리고 공정한) 대우일 뿐이다."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P.332

이제 장하준은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선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해 사람들이 가진 몇 가지 오해를 수정한다.  전작에서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는 선진국들의 모순된 행태를 비판했다면,  신작에서 그는 선진국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국내 정부의 철학없는 자유시장 정책을 하나씩 짚어나가며 조목조목 반론한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전설적인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관해 보이지 않는 손과 이기적인 개인에 관해 언급한다. 시장은 통제없이 가만히 놔두면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 추구에 앞장섬으로써 자연스럽게 시장의 균형과 발전이 이룩된다는 설명이다.  혹여 국가라는 인위적인 `보이는 손'을 타게 되면, 시장 질서는 왜곡되고 경제 발전에도 득이 될 것이 없다, 고 그는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처럼 설명했다.  "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장하준은 철저히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형성하고 있는 이기적인 개인들의 행태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더이상 빵집 주인이나 푸줏간 주인처럼 소시민이 아니라, 거대 자본력을 형성한 재벌이자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그들의 파워는 국가 경제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공황으로까지 몰고갈 수 있다.  2008년 무분별한 금융자본의 행태로 세계는 제2의 대공항을 맞았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주장하듯,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만들어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파이도 역시 늘어난다는 트리클 다운 이론은 실제론 미미할 뿐이고, 늘어난 부는 부자들의 주머니를 채우는데 그쳤다.  글로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기업을 사고 파는 행위가 자유로워졌지만, 그 목적은 구조조정을 통해 단기간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고 빠른 시간내에 되팔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 국가 내의 직원들은 해고되고 장기투자가 줄어들어 결국 생선성이 떨어진다.  탈산업시대가 왔기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재조업보다는 서비스 산업을 키워야 한다, 고 주장하지만 개발도상국이 산업화 단계를 뛰어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중국이 차분하게 고성장을 이룩하는 비결은 세계의 공장이란 별명에 걸맞게 재조업을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하준은 23가지에 걸쳐, 시장 자유주의자들의 모순된 주장에 반기를 든다.  

장하준은 자본주의가 다른 경제시스템 보다 조금 덜하지만, 나쁜 경제 시스템이라고 단정한다.  나쁜 경제 시스템이 된 이유는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대로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시장에 좀더 많은 자유를 주어야, 부자들이 투자를 하고 투자를 해야 고용과 성장으로 갈 수 있으며,  나눌 파이가 커진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파이만 커졌을 뿐 세상엔 아무런 변화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하준은 이 책에서 나쁜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절대로 자유속에 놓아두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기적인 개인은 그저 이기적일 뿐이며 결국 시장을 이기적으로 만들게 된다.  방법은 정부에 의한 통제 뿐이다.  올바른 정책에 의한 적절한 시장 통제를 통해서만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장의 결과에 대해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할 때만이 더욱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주식 회사 경영자들이 받는 천문학적인 보수를 제한하기 위해 주식 시장과 기업 지배 구조를 개혁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중략...)  시장의 결과는 `자연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꿀 수 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p.334

장하준의 결론은 분명해졌다.  모순에 가득찬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조금 덜 나쁜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 통제라면, 그 통제는 결국 정부의 몫이다.   그런데,  정부가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면..?  쉽게 말해 `가재(정부)가 게(신자유주의,재벌,통제받지 않는 글로벌 금융)편' 이라면 어떻게 될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물가 통제에 앞장서야 할 한국 은행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금리 인상을 늦추었다.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한국 은행은 정부의 눈치를 보면 안되는 독립 기관이다.  떨어지는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정부는 한동안 온갖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서민을 위한 임대 주택 보급이나 전세 대책은 뒤로하고 집이 없는 서민들이 결국엔 집을 사게 만드는 정책을 오랫동안 구사했다.  그 결과 오늘 우리는 뛰는 물가, 전세 대란이란 흉흉한 시절을 맞이하고 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조금 덜 나쁜 자본주의로 환생할 수 있다는 장하준의 결론은 맞다.  그러나, 그 말은 좋은 정부만이 국민에게 좋은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는 말로 약간 수정되어야 한다.   즉, 좋은 자본주의는 좋은 정부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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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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