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이다 - 중국의 大문호 왕멍, 이 시대 젊은이들과 인생을 말한다
왕멍 지음, 임국웅 옮김 / 들녘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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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대는 내게 형이상학의 시대였다.  내가 형이상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물론 독서를 통해서였다.  부족한 지식으로 삶이 무엇이냐, 존재가 무엇이냐,를 사색하려 했다.  서양 철학, 문학 등을 줄기차게 읽었다.  그 시절 내 정신에 가장 깊은 자국을 남긴 작가들은 알베르 카뮈나 사르트르, 쇼펜하워, 프로이트, 토마스 만 등이었다.  고상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음악도 클래식만 선곡해 들었다.  그러한 노력이 한동안 정신의 고양(高揚)에는 도움이 되었다.  특히 좋아했던 알베르 카뮈가 내게 준 긍정과 부정의 영향력은 1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그의 <시지프의 신화>는 내게 인생 지침서나 마찬가지였다.  지나고 보니, 이것은 하나의 지적 해프닝였던게 아닌가 생각한다.   

부족한 경험과 식견으로 삶의 본질에 다가간 책들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인 자가 겪게 되는 혼란은 당연한 것이었다.  서양 저작들을 읽던 내게 한줄기 빛을 던져준 책이 있었다. 그것은 유일한 홍일점이었다.   린위탕(林語堂)의 <생활의 발견>을 읽게 된 것이다.  중국의 작가이자 문명 비평가이기도 했던 린위탕은 미국에 거주하며 유네스코 예술문학 부장과 프린스턴 대 교수를 역임한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인의 입장에서 서양 문명을 비평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는 중국인이었지만,  서양과 동양의 철학에 두루 능통했다.  린위탕은 <생활의 발견>에서 중국철학을 `진리를 안다는 것보다는 인생을 알려고 하는 일에 더욱 열중하고 있는 철학'이라 정의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데에는 서양 철학이 현실과 생활에 밀착되지 못하고, 연구실에서 지적이고 논리적인 탐구로만 인생을 분석하려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서구 철학자는 항상 논리에 열중해 있고, 지식에 도달하는 방법이나 지식의 가능성의 문제를 설정하는 인식론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 인생 그 자체를 안다는 문제를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린위탕은 유머스럽게 비꼰다.  전쟁에는 나가지 않고서 보무당당 행진하는 영국 군대처럼 싱겁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20대 초입의 시간들은 이제 까마득하다.  독서와 사색이 시작됐지만 어떤 편협으로 빠져든 시절은 가 버렸다.  내가 그 시절을 어떻게 회상하든 오늘 내 지적 바탕에 긍정적 영향을 준 시간도 그 때이므로, 온전히 그 시간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  아무튼, 우린 서양의 지적 전통 위에 살고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번역서들이, 신간들이,  대부분 미국의 저작들이다.  곁에 13억의 대국인 중국이 있지만 여전히 공자나 맹자를 읽는 데 그친다.    

현대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주미중국인협회로부터 네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작가, 열 네 살의 나이로 중국 혁명에 참여한 공산주의자였지만, 문화대혁명 시기 자신이 쓴 단편 소설 한편 때문에 우파로 낙인찍혀 16년간이나 중국의 한 귀퉁이인 신장지구에 유배되었던 사람.  그 오랜 고통의 유배시절을 이겨내고, 1979년 복권 돼 중국 공산당 전회에서 중앙위원으로 당선되고, 다시 1989년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며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  오늘날엔 20세기 초의 대작가 루쉰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겨룰만하다고 평가받는 작가,  바로 왕멍이다.  그가 최근 한 편집자로부터 인생을 논하는 책 한 권을 청탁받아 쓴 책이 있었다.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서 내가 읽어야 할 책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겸손하고 간결한가?  세상을 겪을대로 겪어 인생을 안다고 할만한 고희(古稀)의 나이에 이르러,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13억 인구의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사람이 자신을 학생이다, 라고 낮춰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독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맞다.  그는 인생이 배움의 연속이고, 그 배움을 통해 인생의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는 것을 서술할 것이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인생론의 범주에 드는 책이다.  어떻게 살아라, 라고 말하는 자기 계발서는 읽지 않는다. 읽어봤자 뻔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읽듯 재미가 없다.  그런 소리는 나도 하겠다,는 반발심만 인다.  왕멍도 이 책에서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살아라, 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전혀 다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거쳐온 인생의 교훈들을 열거한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독창적인 것이다. 이 책이 인생론이지만, 뻔하지 않은 이유다.  고로 재미있고, 교훈적이고, 닮아 행하고 싶다.  인생에 특별한 비법이나 왕도는 없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긴 인생에서 고난이 없다, 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왕멍은 그 닥쳐오는 고난에 대해 예방법을 이야기 하지만,  그 이후의 대처법도 이야기 한다.  권력으로부터 밀려나 위구르인들의 자치구인 중국 신장지구에서 16년간 노동과 빈곤의 삶을 인내했을 당시, 그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훗날 문화부장관이 되었을 때, 지인들은 대놓고 그에게 물었다. " 왜 자살하지 않았습니까?"  

"영문도 모를 재난이 다가왔을 때 당신은 명곡을 감상하고, 꽃과 나무를 가꾸고 애완견을 기르고, 시 한두 수를 쓰는 것이 좋다. 자기의 특기가 쓸모 없을 때, 당신은 다른 특기를 개발하는 것이 좋다. 내가 신장에서 살 때 나는 창작을 금지당했다. 그러나 나는 위구르어와 한어를 번역하는 일을 했다.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아가는 지역에서 번역은 아주 중요하다."   p.211, 왕멍 <나는 학생이다>

인생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명구다. 그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인생의 모든 고난이 닥쳐왔을 때에도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움이란, 책을 통한 지식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위구르어는 소수어이고, 배우기에 어렵다고 한다. 16년간, 그는 위구르어를 배웠고 그 배움을 통해, 훗날 50를 바라보는 나이에 영어 공부를 시작해서 영어를 익힐 수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배움과 그 가치를 무수히 강조한다.  배움은 절대적인 개념이다. 배움에는 조건이 없고 그 어떤 조건에서도 배울 수 있다. 책이 있어도 배우고 없어도 배운다. 신체가 튼튼할 때나 병상에 누워서도 배울 수 있다.   

인생 자체를 학습으로 생각하고 거기에서 만족을 얻고 즐거움을 얻었기 때문에, 그에게 닥쳐오는 모든 고난을 그는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며, 그의 생각들이 편협하지 않고, 개방적이고 발랄하며 시대에 뒤쳐지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게 다 배움에 대한 열정과 실천력 때문임은 자명하다. 그에게 배움과 인생은 동의어였다.   그는 인생을 비극과 희극, 어느 쪽으로도 규정하지 않으면서 오직 배움안에서 삶의 방향을 설정하려 한다. 중국 철학이 형이상학을 논한다기보다는 `인생을 논하는'데 치우친다는 린위탕의 언급처럼,  크게 봐서 왕멍의 인생철학도 실용과 현실에 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학생이었다!  내가 일생 동안 학생의 신분이었다는 이 깨달음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렇다!  나는 학생일 뿐이었다. 비록 나의 학력은 고등학교 일 학년에서 그쳤지만, 그 이후 나는 조금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읽었으며, 각 분야의 지식들을 쌓아나갔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모셨고, 곳곳에 나의 교실이 있었고, 시시각각 언제나 학기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나의 공무원 이력서 출신 칸을 살펴보니, 거기에도 이미 학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p.55 왕멍, <나는 학생이다>  

이러한 인생론은 참 독특하다. 그러나, 그간 내가 생각해 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 생활은 얼마나 시시껄렁한 일들의 연속인가?  의의를 다지기 위해, 술잔을 높이 치켜세운다.  술을 잘 먹는것이 능력이 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리타분하다.  천편일륜적인 회식문화를 살펴보라. 토론이 없고, 술잔을 기울일수록 실수만 연발된다.  술자리에서 토론이 가능하다면 왜 커피한잔을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용기는 없는걸까?  술이 거나하게 되면, 간혹 싸움이 일고 미친듯이 위하여를 외치지만, 잔혹한 담배연기속에서 상하는 것은 자신의 위와 폐 뿐이다.  승진하기 위해서는 술을 잘 마셔야 한다.  맞는 말이다.  높은 분들가운데 술 못마시는 분들 많이 못봤다. 그분들이 거기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이 술을 퍼 마셨겠는가?  그러니, 4,50대에 돌연사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세계적인 나라가 된지 오래고 간혹 간이 못쓰게 돼 자식들의 생간을 이식해야 하는 간이식 성공률 1위의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이런 불합리한 회식 문화에 반대하며 일체 회식에는 참여하지 않는 저명인사들이 있다. 시간낭비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아니면, 회식 문화를 술이 없는 건전한 식사와 대화의 시간, 차와 음료로 담소를 나누는 시간으로 바꿔야 하는것 아닌가?  죽기 살기로 마셔대는 통에, 인생이 40대에 종을 친다면 이건 인생희극이다.  무절제한 회식보다는 자기계발과 독서에 투자할 시간을 가지는게 회사와 자신을 위해서 더 낫지 않나, 생각해 볼때가 가끔 있었다.  이 모든게 다 왕멍이 말한 배움에 대한 열망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연명하는데 치우치는 삶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승진을 위해 공부를 하지만, 진정 인생을 위해 독서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왕멍처럼, 배움의 가치를 깨닫고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러니, 퇴직하곤 할일이 없다.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면 퇴직후 그의 인생은 공허로 가득할 것이다.  인생의 가치를 배움에 두고, 배움을 통해 역경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왕멍은 우리에게 시시하는 바가 많다.  인간으로서 취미를 갖고, 배움에서 도락을 삼는다면, 두려울 게 무엇이겠는가?   

고희에 이른 노작가이자, 13억 중국인의 스승인 왕멍의 책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 왔다.  주위를 둘러봐도 책에서 도락을 삼는 이가 별로 없고, 배움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돈과 술과 담배와 향락에 포위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가득한게 사회이다.  어디서 젊은이들은 지혜를 구할 것인가?  인생의 가치는 결국 책에 있고,  배움에 있다.  이 명확한 진실을 말해주는 저자를 만난건 반갑고 기쁜 일이다.  생명과 생활이 위협받는 16년간의 유배 생활에서도 그 어렵다는 위구르어를 헌신적으로 학습하는 자세로 그는 그 언어를 마스터했다.  마흔 중반에 방문한 미국의 어느 공항에서 자신을 비롯한 방문객 한 사람도 영어를 할 줄 몰라, 곤욕을 치른 후 영어공부에 매진해 영어에 능통할 수 있었다.   

한 나라의 언어를 마스터하면,  보다 넓은 아량, 개방적인 두뇌, 새로운 사물에 대한 흥취, 더 넓은 가능성, 사색의 습관 등을 얻게 된다고 왕멍은 주장한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배움속에 인생의 답이 있다는 것, 둘째, 외국어를 두려움 없이 습득하자는 것 !  이제  13억의 스승은 온전히 나의 스승이 되었다.  그의 가르침에 수긍하며 책 전체가 밑줄로 가득하다. 이런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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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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