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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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연초에 세운 운동 계획은 자전거 타기였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탄게 4월 초다.  나는 더이상 순천만으로 이어지는 사이클 도로에 자전거를 가지고 나가지 못했다. 안한것이 아니고, 못한것이라는 변명을 심어둔다.  허리통증이 발목을 잡은거니까.  작년까지 주로 현장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일을 했다. 나는 항상 걸었고, 걷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작년말부터 사무실에 꼼짝않고 앉아 있는 일을 한다.  처음엔 소화가 안되고, 온몸에 부적응 현상이 돌출됐다.  비싼 러닝머신을 샀고, 안타던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한겨울 북풍을 맞으며 힘겹게 페달을 밟았건만,  갑자기 찾아온 허리통증으로 겨우 4개월만에 자전거 타기를 그만두어야했다.  인생이 항상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읽은 것은  작년 말이었다.  <1Q84>.  내게 하루키는 그렇게 끌리는 작가가 아니었다.  스무살에 읽은 하루키와 삽심중반을 넘어선 내게 다가온 그의 신작 소설은 대단한 감흥이라고까진 할 수 없었다.  잘 쓰여진 소설를 읽는 것과 그 소설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니까, 독자에겐 자신에게 맞는 작가가 있는 모양이다. 하루키가 그리는 사랑이나 방황은 내게도 공통적인 것이었으나, 그 방향이 달랐다고 해야 하나?  하루키의 소설속 문장들은 너무 추상적이고, 서구적 취향을 많이 드러낸다.  그건 내게 별 어필을 하지 못했다.  일본 작가가 유럽이나 미국식 스타일로 소설을 쓴다는게 좀 어색하게 보였다.  어쩌면 그게 흔히 독자가 갖는 오해의 일종이라도, 아무튼 하루키와 나완 좀 서먹했다.   사실, 내가 하루키에게서 발견하고 싶어했던 것은 그의 삶에서 건져올린 리얼리티같은 거였다.

그러니까, 대체 당신은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고 당신의 일상은 무엇이며,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라고 먼저 하루키의 정체부터 파악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글에서도 하루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게으른 독자는 그의 산문을 찾아읽지 못했다.

그러던중에 발견한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간의 내 궁금증을 무척 간단하게 해소해 주었다.  2,30대를 거치며 소설만을 간혹 읽어왔고 항상 그에게 불만을 갖고 있던 내가, 이 책을 서점의 진열대에서 만난 직후 느낌은 매우 달랐다. 말하자면, 그가 이제 신비의 장막을 좀 걷어버리고 내게 인간 대 인간으로 악수를 청해 온 격이다.  아, 당신은 이런 사람이었군요.  반갑습니다. 마음속의 심리적 거리감이 좁혀진 느낌, 문장들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체험, 하루키가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이러한 경험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지만 비중있는 작가 하루키에 대해 몰이해를 갖고 있던 내겐 좀 속시원한 것이었다.   하루키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은 그러므로, 이 책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나는 1982년 가을,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23년 가까이 계속 달렸다."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p.23

하루키는 마라토너였다.  그는 본업은 소설가다.  그것도 세계문학계에서 그의 위상은 남다르다.  그가 발표한 소설들은 40여개국에서 번역돼 팔리고 있다.  그것도 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라 세계의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2003년에 발표한 수작 <해변의 카프카>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TOP 10에 들었다.  하루키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옐리네크와 해럴드 핀터가 받은 카프카 상을 2006년에 받았다.  이 상을 받은 사람은 대개 그해의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  아직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건 그러니까 일종의 미스터리다.  그래서 그의 수상은 매년 유력시 된다.  아, 이웃나라에 이렇게 대단한 작가가 살고 있다니 부럽다. 우리 나라의 날고 기는 소설가들은 뭐하고 계시나?

젊은 시절 하루키는 대학 졸업후 주점을 운영한다.  20대 시절, 일찍 시작한 주점 운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일을 꾸렸지만,  종업원을 관리하고 매출에 신경쓰고 매일 다른 손님들을 맞으며 웃음을 띠는 것은 하루키에겐 몹시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을 소개하길 혼자있는걸 좋아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교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내성적 인간이라 했다.  그가 소설을 쓰겠다고 작정한 것은 우연이었다.

"소설을 쓰자고 생각을 하게 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다.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반 전후였다. 그날, 진구 구장의 외야석에서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관전하고 있었다.  (...) 배트가 강속구를 정확히 맞추어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힐튼은 재빠르게 1루 베이스를 돌아서 여유 있게 2루를 밟았다. 내가 `그렇지 소설을 써보자'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다. "  p. 53

세상일이 모두 계획하에서 이루어지진 않는다는 걸, 하루키는 몸소 보여준다.   더군다나 소설가가 되는 일은 밥먹고 사는 일로서는 적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날 이후, 그는 한 편의 소설을 썼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신춘문예에 응모했으며, 결국 문예지 신인상을 받고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면 하루키는 언제부터 달렸을까?  지금껏 이야기한 것은 그의 본업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부업이라고 할 수 있는 마라토너로서의 삶은 어떤 사연으로로 시작되었나?  내성적 인간과 소설가, 그리고 마라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전업 소설가가 된 이후로 하루키는 소설 쓰는 일이 정신 노동이 아니라 육체노동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가 달리게 된 이유는 소설을 쓰는데 있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간단한다.   달리는데 거창한 이유란게 있겠나 ?  평소 살이 잘 찌는 체질이었던 하루키가 선택한 운동으로서 마라톤은 여러가지 이점이 있었다.  첫째 동료나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 특별한 장비나 장소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하루키는 집 근처의 몇 백 미터 트렉을 돌기 시작하더니 곧 마라톤 풀 코스 도전에 나선다.  그의 달리기 인생은 업그레이드 되어 100킬로미터 울트라 마라톤과 철인 삼종 경기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는 최근까지 25회 풀 마라톤 코스를 완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완주 기록은 선수들에게도 흔치 않다고 하니 대단할 일이다.  

대부분의 소설가, 작가들의 일이란게 조용한 공간에서 펜과 노트를 들거나 컴퓨터의 워드 프로세서에 마주 앉아 글을 쓰는 것이다. 집중력을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해서, 소음은 절대적으로 차단되어야 한다.  하얀 백지나 하얀 컴퓨터 화면을 대하는 일이 프로 작가들에게도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닌가보다.  글 잘 쓰는 많은 작가들이 엄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글쓰기의 공포를 이야기하곤 한다.  하루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그는 달리기와 인생에 분명한 철학을 품고 있었다.  내가 작가가 될 것은 아니지만, 그의 태도에서 배울점이 많았다.  대개 사람들은 인생의 중용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비판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하루키가 글쓰기와 마라토너로서의 인생을 이야기 할때, 그는 중용을 견지하지 않고 자신의 편파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밝힌다.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 되어 버린다.  주위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보다는 소설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생활의 확립을 앞세우고 싶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특정한 누군가와의 사이라기보다 불특정 다수인 독자와의 사이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었다. "  p.65

마라톤으론 5KM 코스도 달려본 경험이 없다.  그러니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마라톤의 매력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게 고통스러운 일이란건 안다.  최근까지 왕복 15KM 정도를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페달을 밟으면서 이 거리를 달린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본적이 있다.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한번 출발한 자전거는 되도록이면 세우지 않았다.  자전거란게 자신이 두발로 페달을 밟지 않으면 나가지 않는다.  오르막은 두 배의 힘이 들어가고, 근육에 피로는 쌓여간다.  그러나 내리막이 오면 쉴 틈이 존재한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는 그 이상의 속도로 나를 태우고 나아간다.  그러나 마라톤은 그런게 없다.  달리지 않으면 걸을 수밖에 없고, 걷지 않으면 주저 앉아야 하는게 이치다.  하루키는 "나는 최소한 걷지는 않았다"고 자신의 마라톤 인생을 회고한다.  멋진 일이다.  그의 소설이 길 위에서 구상되고, 독자를 사로잡은 문장들이 마라톤을 통해 자신의 근육처럼 건강히 단련되었음을 우린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 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p.228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내가 경험한 분명한 사실은, 그의 소설이 처음과 끝이 동일하게 그 끌림과 가독력을 유지 한다는데 있다.  그의 소설 문장들은 슬럼프가 없다.  이야기에 에너지가 넘치고, 쉼없이 재미와 흥미를 발산한다.  하루키가 세계 독자들을 매혹시킨 건, 어쩌면 그가 러너라는 또다른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소설가와 러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혼자 달려왔고 혼자 써 왔다.   우리들의 인생이란것도 여럿이, 둘이, 보다 혼자 감당해 나가야 하는 것이 많다.  아니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기에 혼자가 되면, 먼저 외롭고 두려워 한다.  나는 어느 부류인가?  하루키처럼, 달리기엔 내 뼈 근육이 튼튼하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읽고, 쓰는 일 다음으로, 그걸 건강히 유지시켜줄 뭔가 육체적인 활동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게 마라톤은 아니더라도 맑은 공기와 나무, 바람, 숲과 강을 소유한 자연속에서 하는 일이라면 모두 괜찮지 않겠는가?  내게 새로운 가르침을 준 하루키가 고마웠다.  달리면서 구상된 그의 건강한 소설들이 이제는 기다려진다.
 



 

20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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