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책은 책의 제목이나, 그 책의 지은이만 얼핏 보아도, 무한한 신뢰를 보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집 <배움>은 내게 그러한 책 가운데 하나다.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지도자, 한국 최초의 노벨상을 수상한 자랑스런 한국인,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도 정치적 비전을 갖고, 용기있게 일평생을 살아왔던 정치인,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지도자, 김대중에 대한 빛나는 수식어는 무궁무진하다.

작년 우리는 두 명의 대통령과 영원히 작별했다.  누구의 말대로 `잃어버린 10년'을 설계하고, 리드했던 두 인물의 죽음은 아름답지 못했다.  그것은 슬펐고, 억울했다.  또 공교롭게도 그 죽음은 억지스러웠다. 마지막 그들이 남긴 족적과 행동은 유사했고, 그들의 말은 오래도록 우리들의 양심을 찔렀다.  이 두 지도자는 대통령이기전에 지식인이었다.  그들이 평가절하한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절박한 언어를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죽음을 잊어가고 있지만, 두 인물에 대한 출판시장의 활력은 더해간다.  이것은 아이러니다. 두 대통령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독자들의 욕망을 불지폈고, 출판계는 이들이 남긴 족적과 목소리를 책으로 펴내고 있다.  이 시대가 여전히 그 두분의 지혜와 언어를 필요로 함을 이 현상은 증명하는것 아닐까?

강진 여행 길,  200 여년 전 이땅의 야비한 권력으로부터 핍박받은 한 정치인이자 위대한 학자, 깨끗한 인간을 만나러 가는 길,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강진 유배지를 찾아나가서는 길에,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잠언집 <배움>을 고민없이 넣었다.  네 해 만에 찾아가는 길이다. 이번이 세번째 유배지로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목, 차를 세우고, 김대중의 잠언집을 펴들었다.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  짧은 잠언들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는 것은 오히려 어색하다.  잠언집은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 우연처럼 어느 문장과 만나야 한다.  어떤 페이지에 멈춰서도, 살아 있는 그분의 언어는 예리한 칼날처럼 내 이성을 벼린다. 

"해방 후 지금까지 독재적 군사통치가 판을 칠 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외면했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다. 나는 정치와 관계없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봐왔다.  그러면서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겠다는 자들이다. 스스로는 황희 정승의 처세훈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얼핏 보면 공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정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이것이 결국 악을 조장하고 지금껏 선을 좌절시켜왔다.  (중략) 그들은 또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악한 자들을 가장 크게 도와준 사람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   김대중 잠언집 <배움>, 185p

다산초당을 찾아가는 길목, 나는 그의 첫 유배지인 사의재에 들렀다.  이곳은 그가 강진에 유배와 첫 4년을 기거한 주막이 있던 터다.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하고, 정조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사람이었건만, 폐족이 돼 버린 상황에서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피했다.  정약용은 강진에 와 제일 먼저 관에 들렀다. 일종의 신고식이었을 것이다.  유배온 인물이 관에 들르면 고을 사또가 기거할 곳을 정해주는게 관례였다.  그러나 그러한 상식은 무시되었다.  정약용은 한 겨울 밤, 하룻밤을 유숙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겨우겨우 찾아들어간 주막의 나이든 여인이 그에게 거쳐를 내준다.  사람들이 천주쟁이요, 폐족이요, 쓰러진 권력이라 혹시 자신에게 해가 있을까, 멀리할때 이 나이든 여인은, 용기있게 다산의 위대한 성품을 알아보고 주막의 방 하나를 기꺼이 내준다.  이곳에 다산은 사의재란 이름을 붙였다.  사의재(四宜齋), 네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기거하는 집, 생각, 용모, 언어, 행동.  자신의 유배가 이 모든 것의 네 가지의 부족에서 왔음을 고백하는 겸손함일까?  유배지의 불안한 기운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 아니면 선비의 철저한 자기절제 일까?  중요한 것은 다산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다스리려 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다산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옳은 길을 걸어왔다는 역사적 진실을 이제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대중을 짧은 시간 속일 수는 있지만, 오래도록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산은 끊임없이 역사앞에 겸손하고, 역사의 거울앞에서 자신의 행동과 말씨와 언어와 용모를 비춰보려 노력했다.  그 시절 다산을 핍박하던 노론정권의 권력자들은 한시절 호사를 누렸겠으나, 오늘날 그 이름을 기억하는자 누구인가?  그 더렵혀진 이름을 또 기억한들 무엇하겠는가?   김대중의 잠언집에서 나는 다산의 삶이 가진 역사성을 발견했다.  " 내 삶의 존재양식"이란 제목의 글이다.

"나라를 사랑하고 그 겨레를 사랑한 사람은 마땅히 찬양받고 존경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들은 오히려 그로 인해서 박해를 받고 누명을 쓴다. 그러므로 의롭게 살려는 사람은 보상에서 만족을 얻으려 하지 말고 자기 삶의 존재양식 그 자체에서 만족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는 반드시 바른 보답을 준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 "  김대중 잠언집 <배움>, 63p

이 책은 김대중이란 한 인간의 인생이 녹아 있는 잠언집이다. 문장 하나하나에는 그의 삶에서 건져올린 가장 순결한 진실이 담겨 있다. 그것은 개인사와 가정, 그리고 국가의 미래와 시민의 마음가짐까지를 포괄하며 넓고 웅대하다.  이 잠언집을 곁에 두고 싶다. 생각이 날때마다, 펴들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들이 현실의 벽에 멈춰서려 할 때마다 보다 넓고 크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칠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로 궁색해 질때마다 그들에게 보다 큰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정치의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히 독서하며 소일하고 싶어하던 노무현 대통령은 황망히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노대통령의 죽음을 애통해하던 그는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지켜보며 분노하다 노환이 악화돼 그 뒤를 따랐다.  올 해 우리는 두 명의 대통령을 잃어버렸다.  역사속의 다산처럼 그들은 역사안에 잠들어 있다.   추모열기는 식은걸까?

올해 우린 경제 위기를 가장 빠르게 극복하고, 내년 4~5% 경제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고 언론들은 호들갑이다.  금융위기에서 이렇게 발빠르게 탈출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단다.   그러나 용산사태로 희생된 세입자들의 주검은 아직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고에서 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복지예산, 교육예산 등을 삭감하고 진행되는 일사천리의 4대강 사업을 통해, 우리는 홍수가 없는 나라, 최첨단 로봇 물고기가 오염원을 찾아내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최첨단 건설기법이 동원된 청계천에선 녹조류가 번성해, 물이 썩어가고 있단다.  이러고도 남은 정권 3년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4대강 공사를 마감하려면, 공기를 단축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철도 파업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은 파면과 해임 등의 중징계를 당했고,  노조위원장은 구속되었다.  노동자에게 파면은 곧 생존권의 박탈과도 같다.  그러한 중징계를 화살 날리는 쉽게 쏘아대는 행복한 나라, 그래서 다시는 공공재의 근로자들이 파업을 하지 않는, 아침 출퇴근길이 불편하지 않는 건강한 나라에서 우린 살게 될 것이다.  헌법에서 노동3권은 삭제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되는 나라.  그러나 이땅에 노동자 아닌 자가 누구인가?  아침 출퇴근길의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귀족이며, 노동권은 당신을 보호하지 않고, 누굴 보호하는가?  그래서 남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행복한 아침의 나라인가?

우린 상식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지가 이 시대를 조각한 것이리라. 욕망과 탐욕이 죽은 괴물을 불러낸 것이리라.   김대중 대통령은 서거 몇 개월 전, 6.15선언 9돌 강연에서 기력이 쇠한 모습이지만, 피를 토하듯 한 마디 말을 남겼다.

“과거 50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매우 걱정이다. 방관하면 악의 편이고 피맺힌 심정으로 말하는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김대중

다산초당에서 나는 오래도록 발길을 옮길 수 없었다.  시대 권력의 비열함이 횡횡하던 시대를 살았던 정약용.  그러나 그릇된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자신의 유배생활을 조금도 덜어내려 하지 않았던 강직한 선비가 바로 그였다.  엄혹한 시절을 인내하고, 오직 독서와 집필을 통해 후대의 민족이 나아갈 길에 대한 사색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부패한 정치지도자까지도 존경하는 위인이 되었다.  그것은 목민심서에서, 그가 남긴 유배지의 편지들에서, 절절히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공감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김대중의 잠언집 <배움>을 읽으며 나는 정약용의 위대함과 강직함을 떠올린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역사라는 올곧은 관점을 신뢰하고, 역사발전이 결국 바른길에 들어설 것임을 확신했다는 것에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더군다나 파시즘에 가까운 불소통의 독재, 반생태와 반민중의 권력은 반드시 실패한다.  실패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의 편짓글과 김대중 대통령의 문장들은 놀라운 확신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그 이윤 바로 그 때문이 아닐 것인가?



 

2009.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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