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일본 작가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을 읽다가 얼굴이 뜨거워진적이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문장에 이르렀을 때다. 

"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도둑질을 한다거나 거짓말을 하는 그런 것이 죄가 아니었다.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었다. "

우리는 작은 것에  감동하지만, 또한 사소한 것에 상처입는 존재다.   매일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면서 우리는 실수나 고의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때론 맨정신에 때론 술기운에 모르는 척.  그러나 이런 경우도 있다.  작정하고 상처를 주려하는 상대에게 그에 맞서 대응하지 않을 때, 우리가 내뱉은 잔인한 말이나 무례한 행동의 잔상은 그대로, 자신의 귀나 자신의 눈빛 속으로 반사되어 사라진다.  그럴때 고통받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내면의 악마, 곧 자신이다.

아무리 담대한 사람도, 내면의 어느 부분에 감추어진 여린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때론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 여린 감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그 결정체는 바로 눈물이 될 것이다. 

이 가을날에 한 때 사랑이란 말을 공유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이것은 몹시도 난처한 호기심이다.   컴퓨터의 비상한 검색기능은 난처한 호기심을 푸는데 그만이었다.  그런데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의 상태 아이콘은 오늘 모두 `행복' 아니면 `사랑'을 부르짖고 있었다.   나는 왜 쓸데 없이 그 공간에 침범했을까, 내심 민망하고 부끄럽다.   이 불청객은 얼굴을 붉히며 애써 다른 곳으로 급히 마우스를 움직인다.   아, 기억이란 질기고 모진 것이다.  그러나 추억이 어찌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가끔, 그들도 나처럼 이런 쓸데없는 환영에 사로잡힐 때가 있을까?   

아사다 지로의 소설집 <철도원>은 가을날 읽기에 참 좋은 소설이다.  진정한 문학의 힘은 공감에서 나온다.  나를 공감으로 이끄는 이 작가의 놀라운 문체와 상상력은 내 안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   이 소설집에는 <철도원>外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철도원>과 <러브 레터>는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영화화 된 작품이다.  철도원은 그 이름 그대로, 러브 레터는 <파이란>이란 제목을 달았다.  흐릿한 내 기억속에 <철도원>의 장면들이 있다.  눈덮인 간이역에 기차가 들어오고,  철도원 오토마츠가 깃발을 높이 들며 기차를 맞이한다.  그러나 원작을 읽지 않고, 어느 비디오방에서 보았을 법한 이 작품에 대한 감동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래도 건성건성 영화를 본 듯 하다.

그러나 작품으로 읽는 <철도원>의 감동은 남달랐다.  일본 철도의 민영화 과정에 채산성이 없는 호로마이선은 곧 폐지될 예정이다.  오래도록 호로마이 역의 역무원이자 역장으로 일해왔던 오토마츠도 이 역의 폐지와 더불어 정년퇴직을 맞이한다.  이 역과 선로는 오토마츠의 삶 자체였다.  딸아이와 아내를 이 역에서 떠나보냈다.  그러나 홀로 근무하던 그가 딸과 아내의 영면을 함께 하지 못한다.  딸아이의 죽음은 더 극적이다.  그는 딸의 주검을 담은 열차를 맞이하면서도 플렛폼에서 깃대를 흔들며, 기차를 인도한다.  그리고 그 비극적인 날에도, 그는 근무일지에 `이상무'라 적어 넣어야 했다.

" 십칠 년 전 눈 내리던 날 아침. 아내의 팔에 안긴 유키코를 저 홈에서 보냈다. 평소 하던 그대로 수신호를 하여 기차를 보냈다.  그리고 그 날 밤 기차로 유키코는 싸여 갔던 모포에 말려 차디찬 몸이 되어 돌아왔다.  `당신, 죽은 아이까지 깃발 흔들며 맞이해야 되겠어요?" 아내는 눈 쌓인 홈에 쪼그리고 앉아 죽은 유키코를 꼭 끌어안고 그렇게 말했다."  p. 27, 아사다 지로, <철도원>

그러나 어느날 근무중이던 초로의 철도원인 오토마츠에게 한 소녀가 연달아 나타난다.  아이는 인형 하나를 들고 있다.  한번은 다섯살 남짓, 한번은 열살 남짓, 그리고 이제 열 일곱살의 소녀가 되어, 오토마츠와 오랜 대화를 나눈다.  그 아이는 17년전에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그의 딸 유키코의 혼령이다.  남에겐 섬뜩한 이야기겠지만, 아버지에게 혼령은 여전히 사랑스런 딸아이일 것이 분명하다.

경제논리 앞에 폐선을 기다리는 한 간이역을 배경으로,  오랜 시간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철도원의 평범한 삶,  그리고 눈 내리는 철도역 아래 사랑했던 가족과 그 사별을 그려내는 소설은, 환상적인 기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 자체로 한 편의 빛바랜 사진첩을 보듯 정감있고 따뜻하다.  이제 철도 민영화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오래된 역사건물과 선로들은 일본의 전례을 밟아가고 있다.   철도원의 이야기는 충분히 한국적이어서, 소설은 더 간절한 공감을 불러온다.

<러브 레터>는 일본에 몸을 팔러 온 중국의 한 여인과 야쿠자에 이름만 빌려주고 그녀와 거짓 혼인 관계를 설정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가상적인 남편이긴 하지만,  병들어 죽은  이방 여인 파이란의 사후 처리 과정에서 남편인 고로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이 여인이 자신에게 편지를 써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야쿠자의 하수인으로서 생애 그런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받아본적이 없는 고로는 세상이 파이란의 삶과 죽음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분노한다.  파이란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저 이방인으로서,  몸을 팔던 하찮은 여인으로 취급받았다.  어찌 그녀 뿐이겠는가?   

그녀가 가상의 남편인 고로에게 썼던 편지는 심심풀이였을 수도 있다.  그것은 실제의 고로에게 쓴 것이 아닐 것이다.  고로는 돈을 받고 일처리를 한 무심한 야쿠자의 조직원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파이란의 편지에는 눈물의 힘이 담겨 있다.  따뜻한 인간의 온기가 남아 있다. 이 무정한 남자 고로의 가슴을 분노와 슬픔에 휩쓸리게 한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갈망하지만 쉽게 타인앞에 내보이지 않는 눈물과도 같은 진실됨이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이 소설은 간절히 고발한다.

" `아휴, 미치겠네, 진정하세요. 아저씨. 진짜 왜 이러는 거예요?'  자신이 왜 그러는지 고로는 알 수 없었다. 코흘리게 시절 이후로 울어본 기억이라고는 없는 그였다.  `불쌍한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마음이 쓰리다구요. 그치만, 이렇게 대성통곡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진짜 미치겠네. 아저씨, 혹시 죽은 사람한테 홀딱 반한 거 아니에요?' "   p. 75, 아사다 지로, <러브 레터>

소설집 <철도원>의 다른 단편들도 마찬가지다. <츠노하츠에서>는 어린 시절 버스 터미널에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한 소년의 트라우마(정신적 상처)의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담았다. <백중맞이>에서는 이혼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녀가 이제는 남편과 시댁에서조차 버림받으려하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혼령이 되어 그녀를 곤경으로부터 구하고, 위로하는 스토리를 담는다.  이처럼 아사다 지오의 소설집 <철도원>은 한 편 한 편 모두가 독자의 가슴을 덥히기에 충분한 작품들로 채워졌다. 

모든것이 경제논리로 좌우되는 세상이다.   1%의 부자들이 부의 70%를 소유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것도 모자라 양극화는 더 진화하고 있다.   공권력에 저항하던 시민 6명이 죽은 용산참사는 아직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공권력은 언제나 정당한 것인가?  살인까지도?  고개가 갸웃거린다.  G20회의 개최로 대한민국이 선진국 클럽에 가입이라도 된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국격(國格)이 한단계 상승되었다고 자화자찬이다.   정말 그런것인가?   아리송하다.   주위를 돌아보면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인권지수가 우리를 조롱한다.  대의를 위해, 소의 희생은 필수결이라고?   이 세상에 사소한 죽음은 없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집 <철도원>은 돈과 인간의 이기심, 탐욕 사이에서 인간됨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는 작품들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언어를 사용한다거나, 사고 지수가 높다거나, 이런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동물을 가를 수 있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존재'라는데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눈물은 눈물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으로 흘릴 수 있는, 순수함으로 흘러내리게 할 수 있는 결정체를 말한다.  

첫 문장에 인용한 엔도 슈사쿠의 문장처럼, 우리는 타인의 인생과 교차하면서 거기에 남긴 흔적을 잊기  쉬운 존재다.  그러나 그것이 죄인것을 알지 못한다면 불행하다.    이 계절, 한 편의 소설이 옛 사랑과 추억, 그리고 눈물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오래된 소설집이지만,  읽기 참 잘했다.  이 쌀쌀한 계절에 움츠린 영혼이 충분히 덥혀져 온다. 


 

2009.10.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