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09년 5월......지나고 나면 이 잔인한 계절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까?  졸지에 전직 대통령도 `자살할 수 있을 정도로 모진 나라'의 국민이 되었고, 자해공갈단을 연상시키듯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무력 시위는 답답해진 가슴에 쉴틈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가지수는 북한의 핵위협 쯤이야 이미 면역이 돼 있다는 듯,  별 영향이 없음을 과시하고 정치인들은 6월의 국회에서 또 미디어법으로 한판 붙을 요량이다.  지난 5월은 계절의 여왕이자 가정의 달이라는 수식어가 민망하였다.

어렸을 적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약자가 존중받는 세상, 가난한 이들도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이 정의롭다라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배웠고 상상했던 그 어린 시절부터 실제 세상은 정의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한탄할 일도 아니다.  단지,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정의로웠을 뿐이었을까?  이제 나이가 드니 세상사의 굴곡에 점점 무감각해져 가는 나를 느낀다.

그럼에도, 사는 동안 5월의 기억들은 아름답지 않았던가?  푸르른 초목이 아름다웠고, 봄바람이 제법 시원해질때가 되면, 5월엔 푸른 잔디밭에 누워 하늘만 봐도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나의 짧은 삶 가운데 5월은 그래도 가장 평화로웠던 날들의 기억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제 해마다 5월이 오면 그 앞에 슬픈 기억들을 떠올리며, 황망히 떠나보낸 사람들을 눈물속에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저 봉화 마을의 부엉이 바위에라도 올라 지켜주지 못한 사람을 애타게 불러보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서강대 영문과 교수, 뛰어난 번역가, 영어 교과서 저자, 아름다운 문장가, 에세이스트, 평생 목발을 애인처럼 끼고 다닌 사람, 서양화가 故 김점선의 친구.  이 슬픈 5월에 우리가 떠나보낸 사람 가운데 한명, 故 장영희 교수에 대한 프로필이다.   내가 그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였던가?

2000년 초 대학 졸업반 시절이었다. 자취방 공동 화장실엔 샘터라는 잡지가 항상 놓여 있었다. 이름만 들어보고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질 않은 그 책에서 우연히 그녀의 글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잡지 뒤편에 단발머리, 초롱한 눈망울, 어색하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내 생애 단 한번>이라는 그녀의 단행본 광고였다.  그 잡지는 한 달 내내 거기 있었고, 나는 매일 그녀의 얼굴과 수필집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에세이따위엔 관심 없다,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독서 편력기인지라 장영희와 그 책과의 조우는 그 후로 몇년이 지나야만 했다.  아마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던 희망과 설레임 가득한 어느 봄날이었을 것이다.

그 후 장영희의 카페에 가입했을때, 나는 무료로 신간을 나눠준다는 말에 혹하여 주소와 이름을 그곳 게시판에 남겼다.  신청자가 많아 만원이 넘어가는 하드커버의 신간을 보내줄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느날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니 소포 하나가 와 있었다.  보낸 사람엔 서강대 장영희 교수 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 받은 책이 장영희 선생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자다.  책의 첫 장을 펴들자 "새 봄 새 희망 새 숲의 향기 전하며 "라는 메세지 밑에는 그녀의 사인과  앙증맞은 스티커 별 하나가 박혀 있었다.  생에 처음으로 저자의 사인이 들어간 신간서적을 선물로 받았다.  아, 그때가 2005년 4월 3일이다. 

그로부터 4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2009년 5월 9일 장영희 선생님은 이 눈부신 5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뒤로 하고 떠나셨다.  오랜 투병 생활 가운데 그러나 유고(遺稿)를 다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녀는 마치 독자에게 던지는 유언처럼 두툼한 단행본 한 권을 또다시 세상에 헌정했다.  요며칠전 출퇴근길 기차안에서 4년전 생면부지의 독자에게 책이라는 가장 귀한  선물과 희망의 메세지를 남겨주었던 고마운 사람의 마지막 글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내가 살아 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p. 120

펀드 열풍에 무턱대고 든 펀드의 손실액은 어디 하소연도 못한 채 흔적 없이 내 마음속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어느 마음 따뜻한 작가의 사인이 든 책 한 권은 4년이 지났어도 내 기억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걸 보면, 그녀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 책을 받은 후 몇년이 흐르고 이제 홀연히 작가는 이승을 떠났고, 책 한 권이 또다시 내 손에 쥐어졌다.  이제는 내가 직접 구해 읽은 책이다.  더 이상 그녀의 멋진 사인도, 귀여운 별모양의 스티커도 없는  책이다. 그러나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다듬은 원고는 내가 받은 또하나의 귀중한 선물에 다름 아니다.  이 황망한 계절, 책속에 가득한 감사와 희망의 언어들이 쉴새없이 나의 가슴을 위무(慰撫)하였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언어에도 희망이 담길 수 있고, 가식적인 사람들도 진실을 입에 담을 수 있지만, 그러나 언제나 좋은 글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삶에서 건져올리는 빛나는 보석과도 같다.  그것은 흉내낸다고 쓸 수 있는 언어들이 아니다.  진정 아름답게 살지 않으면 그러한 언어들은 독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마지막 책속에서 장영희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내가 살아보니...'라는 경험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자연스럽게 불러낸다.

"영어에 `한 개의 속임수는 천 개의 진실을 망친다'라는 격언이 있지만, 어쩌면 그 반대, `한 개의 진실은 천 개의 속임수를 구한다'가 더욱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속이지 않는 자'가 한 명만 있어도 `속이는 자` 천 명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p. 224

삶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보다 많은 돈, 무소불위의 권력, 좋은 아파트, 좋은 차, 좋은 음식, 로또같은 횡재.   누구나 이러한 것들을 바랄 수는 있다. 그것은 나쁜 바람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지면 우리의 내면이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장영희는 말한다. 일상에서, 평범함 삶안에서, 희망과 감사를 체험하자, 라고.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행복이란 손쉽지만,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오늘 내가 내뱉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타인의 삶에 희망을 싹틔우고,  내가 행한 오늘의 작은 선행이 누군가의 가슴을 울릴 수만 있다면, 진정 이 세상은 희망과 감사가 넘치지 않겠는가? 

너무나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던 5월이 갔다.  슬픔을 남기고 이승을 떠나간 사람들, 어제까지 매일 신문,방송 지면에서 못된놈, 죽일놈이 되어야 했던 전직 대통령도 죽어서야 세상의 별이 되었다.  죽고나서야 그 진가, 그 보배로움, 그 아름다움을 깨치는 우리들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주위를 둘러볼때다.  소중한 사람들이 지금 내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다.  그리고 그들에게 따뜻한 배려와 친절, 사랑을 보여줄 때란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장영희 선생님의 유고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으며 마음이 참 평온해졌다. 세상사 잘 헤쳐 나가기 위해 너무 약샥빠를 필요가 없겠구나, 깨닫는다.  5월, 그녀가 남기고 간 책 한 권에서 건져올린 감사와 희망의 언어들이 슬픔속의 나를 위로한다.

 

200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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