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의 21세기 비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청림출판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만사가 귀찮아지는 순간이 있다. 때는 3월, 연초의 다부진 각오는 온데간데 없다.  프랭클린 플래너 속지 잉크가 말라가기도 전에, 나의 1년 계획은 1,2월을 통해 무참히 실패하고 좌초 되었다.  좌초된 배는 서서히 가라앉는 것외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요즘 내 심정이 딱 그와 같았다.  의욕을 잃었던건 계획한 모든 것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조  때문이었다.  이 지점에 내가 꺼내들 최후의 수단은 피터 드러커를 펴드는 것 뿐이다. 

경영학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이름을 올렸던 그는 2005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경영외적인 분야에서도 남다른 열정으로 노익장을 과시했던 학자였고 세기의 지성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상찬이 아니다.  그의 책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 열정적인 할아버지의 풍부한 지식과 미래지향적 안목에 놀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학자적인 기본능력일 뿐이다. 내가 그의 책 한 권 한 권을 접하면서 크게 배운 교훈은 자신의 학문 세계에 대한 놀랄만한 열정과 성실성이다.  90세의 나이에도 은퇴를 고려해본적이 없고, 할 생각도 없다고 자신감을 피력하는 모습에선 이미 애늙이처럼 살아가는 청년들의 몹쓸 패배주의와 의기소침을 한방에 날리고도 남을만한 의기가 전해온다.  피터 드러커 할아버지를 보면 나이란 진정 숫자에 불과하단 얘기가 허언이 아님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피터 드러커는 이 책에서 지식노동자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있다. 그가 많은 책에서 지식 노동자를 정의하고, 그들의 특징과 진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즉,  피터 드러커는 1960년대 이미 지식노동자의 출현을 최초로 예언했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육체노동자와 달리 지식노동자는 독창적인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우량기업의 평균 생존년수가 30년을 넘지 못하는데 반해 지식노동자는 자신의 지식을 통한 이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기업이 망해도 살아남는다. 더이상 그는 특정 회사에 국한되어 일하지 않는다.   즉, 그는 노마드족이다. 일종의 지식 유목민인 것이다. 

기업의 전통적인 생산요소로 우리는 자본과 노동, 토지 등을 들어왔다.  그러나 드러커는 이들 요소에 하나를 더 보태고 있다. 그것은 지식과 근로가 결합된 지식노동자라는 개념이다. 더불어 기업의 생산요소 가운데 최우선을 지식노동자의 생산성,  즉 독창적 지식에 두는 점은 매우 특이하다. 어떻게 이러한 순위를 도출했을까?  드러커는 지식과 지식을 결합시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보유한 지식노동자는 여타의 생산요소들인 자본과 노동, 토지까지도 손쉽게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회사의 진정한 주인은 경영자가 아니다.  회사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일반 노동자가 아니다.  그는 풍부한  아이디어와 정보로 지식 생산성을 소유한 지식 노동자다. 그는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능력을 보유하며, 어느 회사로도 전직할 능력이 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회사의 경영자이며 실제 주인이다.

이렇게 지식 노동자의 지위를 최고로  끌어올린 드러커는 어떻게 지식 노동자가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기업의 운명과 상관없이 오래도록 자신의 이동성을 장점으로 생존할 것인지 그 존재조건들 하나하나를 열거한다.  그에 더해, 생산성 높은 지식노동자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방법들을 이 책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정말이지, 지식은 오늘날 의미 있는 유일한 자원이다. 이제 전통적인 `생산요소들' - 토지,노동,자본 -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것들은 얼마든지 획득할 수 있는 것들이며, 더구나 지식이 있다면 아주 쉽게 얻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새로운 의미의 지식은 실용성으로서의 지식이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지식이다. " p. 57 <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 

지식노동자로 성장하기 위해 피터 드러커는 프로페셔널로서 자기를 관리하고, 자신의 강점 파악과 시간을 분석해서 재설계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전략을 쓸 것을 권고한다.  프로페셔널을 위한 몇가지 기초지식으로서 그는 효과적인 의사결정 방법, 조직 내의 커뮤니케이션, 리더쉽이 어떻게 발휘되며, 각 개인이 자신의 강점을 업무에 적용하는 방법 등을 설명한다.  지식 노동자는 여타의 직원들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는 회사에 자신의 지식을 통해 공헌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것이 지식노동자의 존재이유다. 지식노동자는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리더쉽을 발휘하며, 수많은 단점 가운데서 오직 강점만을 활용하여, 회사에 공헌할 수 있다.  완벽한 인간은 한 사람도 없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단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식노동자는 자신의 강점을 활용함으로써 오직 회사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실현을 위해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할 것을 강조한다. 많은 사회,경제적인 변화 환경속에서는 이제 평생직장이나 직업이란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일류기업보다 긴 노동수명을 갖고 있는 지식노동자가 대체하고 있으며, 그들은 각 개인이 각자의 생산도구라 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회사의 운명에 종속되지 않은 직업이동성 아래서 오랜 시간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 책은 변화하는 환경과 미래를 대비해, 조직속의 개인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하는 점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90세가 넘어서까지 경영학의 일선에서 은퇴하지 않고, 지속적인 학문적 열정아래 숱한 저작과 강의를 진행했던 피터 드러커 자신이 바로 지식 노동자의 대표격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단순히 학문적 열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성실함은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제 3 장을 이루는 한 페이지에서 그 힌트를 얻게 된다. 

그는 "인생을 바꾼 7가지 지적 경험"이란 페이지에서 젊은 시절의 일화 한가지를 기록해 놓았다. 대학생이던 드러커가 어느날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폴스타프를 처음으로 관람했다. 이 오페라의 열정과 활기에 놀란 그는 베르디라는 작곡가에 대해 찾아 보다가 그가 여든 살의 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열 여덟 살의 풋내기 대학생인 피터 드러커에게 여든이란 나이는 까마득했다. 더군다나 그 당시 평균 나이가 50을 넘지 못했다.  작곡가 베르디는 어느 인터뷰에서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유명인이 된 사람이, 왜 그런 벅찬 주제로 더구나 고령의 나이에, 굳이 힘든 오페라 작곡을 계속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다.  때문에 나에게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해 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열여덟 살의 나는 그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성숙하지 못한 풋내기였고, 그리고 나약했다.  그로부터 15년이 더 지나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나는 내게 어떤 소질이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를 진실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에 나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베르디의 그 교훈을 인생의 길잡이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나이를 더 먹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리라고 굳게 마음 먹었다. 살아가는 동안 완벽은 언제나 나를 피해 갈 테지만, 그렇지만 나는 또한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리라고 다짐했다."  p.157, <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 

피터 드러커의 책은 이번이 세번째다. 경영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을뿐더러, 나는 경영학도나 경영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으면 그의 경영이론은 난해하고 지루한 반면, 얻을 것이 참 많단 느낌이 든다.  그것은 경영이란 개념이 단순히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중심으로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은 경영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것도 경영이다. 막무가내로 읽는것보다는 계획을 세우고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경영이다. 회사일에만 파묻혀 살고, 가정과 멀어지면 업무에 성공했다해도, 인생에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서적들은 넓게 보자면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더불어, 그의 저서속에서 미래에 대한 그의 예언들은 몹시도 의미심장하며, 어느 미래학자의 조언보다도 더 현실적이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있고, 사라질 것이기에, 미래를 위해 두번째 직업을 준비하라는 그의 조언과 함께 좀더 포괄적으로 이 책의 마지막 장에 기록된 것처럼,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라는 인생에 방향성에 대한 드러커의 심오한 질문은 독자들에게 지금 당장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힘을 발휘한다.  96세의 나이로 영면할때까지 피터 드러커는 젊은 시절의 열정과 성실성을 그대로 유지했던 보기드문 학자였다. 어떻게 자기 실현을 할 것인가를 지식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리한 이 책은 그 내용의 풍성함과 미래지향성에 앞서, 독자가 드러커의 인생을 교훈으로 삼을만한 근거를 제시해준다.

"나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종교 과목을 배웠는데, 그 선생님은 진실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어느 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희들은 죽은 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느냐?"라는 질문을 했다.  물론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있다가,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50세가 될 때까지도 여전히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봐야 할 거야"  p. 354  <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

책의 대부분은 경영과 업무환경 속에서의 지식 노동자의 역할과 조직의 효율성에 관해 다소 지루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고, 이 책에서 설명한 지식 노동자라는 개념도 명확하지 않은 면이 다소 있다.   그리고 산업혁명 시대 생산성 혁명으로 얻은 열매의 대부분을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자가 가져갔다고 하는 파격적이 주장을 하며 마르크스의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경영 효율과 생선상 향상을 위해, 노동자 해고를 당연한 듯이 긍정하는 언급도 한다. 평생을 경영자들의 컨설턴트로 일했던 드러커의 친자본,친경영자적 경향을 책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성향은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가 한 개인의 공헌에 대해 언급할 때 든 예처럼 이 책에서 나는 그의 단점보다는 강점을 더 많이 보았으며, 그것으로 만족했다.

"자본주의 산업 헉명의 지정한 수혜는 `자본가'가 아니라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블루칼라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였던 것이다." p.52  <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  

이제 피터 드러커 할아버지의 말씀을 받들어, 작심삼일이 되어 버린 올해의 나의 계획들을 하나둘씩 추스려 다시 목표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너무 욕심을 많이 부렸다.  소중한 것을 항상 먼저해야 함에도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해 버리고, 시간을 집중해서 사용하지 못했으며, 작은 유혹들에 넘어가 버린 것을 깨닫는다. 3월, 연초의 계획을 추스리기엔 그리 늦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길을 잘못들어섰으니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라는 말이 나온다.  풀이하자면 "허물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것, 그것이 허물이다" 라는 뜻이다.  

 


 

200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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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내음가득히 2009-03-20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8살님께서 쓰신 글이라기엔 참으로 문체가 시원하고 멋지세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개츠비 2009-03-21 22:32   좋아요 0 | URL
^^ 반가워요. 근데 18살 아니랍니당...18살이었음 좋겠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