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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스터디 - 미국대학 교양교육 핵심과정과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안내
마크 C. 헨리 지음, 강유원 외 편역 / 라티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어나갈수록 책 선택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을 습득하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다. 몇번의 실패를 해보아야만 모든 사람에겐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자리잡게 된다. 그때까지 부단히 읽어야 하고, 무수한 책들과 만나봐야 한다. 독서가 중요하단 얘기를 많이 한다. 요즘 학생들은 예전보단 책을 많이 읽는다.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어린 학생들에게 책읽기의 효용을 적극 홍보하고 권장하는 분위기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점수를 올리기 위해, 요즘 고등학생들은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또 글도 많이 써볼 것이다. 예전보단 그런점에서 학생들의 교양 수준도 높다. 그러나 근시안적인 목적을 위해 책읽기를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는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올바른 방향도 아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대개 이러한 독서열은 식어버리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후엔, 논술이란 말은 쏙 들어가 버린다. 대신 그 자리를 토익이나 토플같은 것들이 차지해 버린다.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독서열은 미국,일본,프랑스는 말할것도 없고 후진적이라 생각하는 중국보다 더 떨어진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마디로 학교를 졸업한 어른들은 책에서도 영원히 졸업한다는 얘기다. 한달에 책 한 권 읽질 않는 어른들이 성인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 주부들도 책을 읽지 않는다. 만약 가정주부들이 일일드라마에 쏟아붓는 시간과 열정을 책에 쏟는다면, 아마 그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본인의 의식이 깨어 있게 마련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이 최소한 잘되고, 잘못된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주부들의 독서열이 높아진다는 것은 나라 전체의 교양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아이들과 남편들에까지 옮아갈 것이다.
모름지기 주위에서 교양교육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한다. 교양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대학 교육을 받고, 대학원을 이수해서 학벌이 좋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으로만 교양 있는 인간을 논할 순 없다. 교양인을 양성하기 위해선 제도화된 교육만으론 부족하다. 교양 있다는 것은 지적 균형 감각을 가졌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지적 균형 감각은 어떻게 생기는가 ? 보다 많은 이론과 지식, 그리고 실천적인 성품까지를 갖고 있어서 자신의 지식과 이념 자체를 맹목적으로 신봉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을 알고 있고, 그 둘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시야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견해만을 신앙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다 관대하고, 관용적이고, 생각이 열려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독서인구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편협한 인간들이 넘쳐난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 사회 전체가 건강하지 않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요 며칠전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 메인 화면에서 눈에 확 띄는 신간 하나를 발견했다. <인문학 스터디>란 책이다. 부제는 "미국대학 교양교육 핵심과정,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안내"다. 책을 읽는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선택하고 고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옛말에 악서를 읽는것은 시간낭비라고 하질 않았던가. 책을 읽어나갈수록, 그 앞서 내가 읽어야 할 책을 선택하는 독서의 예비적인 행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어느정도, 이젠 책의 제목이나 분위기만 보아도 그 책을 내가 읽어도 후회가 없을거란 느낌이 들고, 요즘엔 어느정도 그 예감이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항상,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를 위해 어떤 책을 우선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라고 하는 의문은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그같은 갈증을 해소해줄 좋은 책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이 책은 마크 C. 헨리라는 현대 미국의 학자가 쓴 것으로, 미국 대학에서 "서구 문명 커리큘럼"을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대학 신입생을 위한 가이드를 목표로 집필되었다.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 안내'라는 부제가 붙은건, 이 미국적인 인문학 공부 방향에 수명의 한국 편역자들이 개입함으로써, 한국 실정에 맞는 인문학 학습 방법을 독서목록으로 따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문학의 학습 영역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해 놓았다.
첫째, 문학 예술이다. 이 분야는 고전문학과 고전학, 근대문학과 예술학으로 이어진다. 둘째, 철학과 정치 분야다. 다시 이 분야는 고대 철학 입문과 근대 철학, 법과 경제 편으로 나뉜다. 세번째 역사학에선 고대 로마사, 19세기 유럽 지성사, 과학의 역사를,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 영역인 기독교 사상 편에선 성서를 기반으로 한 1500년 이전의 기독교 사상을 다뤘다.
특기할만한 것은 이 책이 서구문명에 기준을 둔 인문학 공부 방향을 설정한 책이란 점이다. 동양고전 문학과 철학은 여기서 제외되었다. 이것은 이 책의 한계이지만, 보편적인 세계 시민을 기준으로 한 교양인의 양성이란 측면과 인문학이 서양적인 학문으로 인식해 왔음을 주지한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어차피 인문학 공부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며 공부가 아닌가?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은 동양과 서양의 질문법만 다를뿐, 같은 의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을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며, 그 공부의 기본적인 원전도 고전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여기에 추가로 동양 철학과 문학 작품에 대한 독서목록을 추가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안내"라는 이 책의 부제에 더 적합했을 것이다.
"키케로는 풍자적 재능이 매우 뛰어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아테네로 스며들게 한' 장본인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생물학, 자연학, 천체의 운행 같은 자연(physis)의 움직임을 알고자 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알고자 했다. " p.63 <인문학 스터디>, 마크 C. 헨리
이 책은 체계적인 인문학 공부에 전념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장의 끝부분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인문학 필수 원전과 그에 따른 참고도서 목록이 잘 정리돼 있어서, 그 분야에 깊이 있는 독서를 위한 책의 선택에 길잡이 역할을 한다. 따지고보면, 책읽기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은 어떤면에서 인문학 공부를 이미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용서나 특정 전공의 이론서의 독서를 제외하곤 대개 잡식성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인문학적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또한 그런 면에서 언제나 독서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과 책의 선택에 항상 고민하고 어려움을 느껴왔다. 대개 많은 책을 읽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왔지만, 이 책읽기에 체계가 없다는 생각을 늘 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원전과 참고도서들은 그 양이 매우 방대하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들이 비록 한국어로 번역돼 있다 하지만, 실제 읽어낼 수 있는 독자의 역량이란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대표적으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쇼펜하우어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혹은 스피노자의 <에티카> 같은 서적에 도전할 수 있는 독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단계를 밟아갈 필요가 있고, 인문학 공부의 체계가 필요한 법이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텍스트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어 방법이 있다. 바로 여러번 읽고 비판적으로 읽는 일이다. " p.123 , <인문학 스터디>, 마크 C. 헨리
노숙인과 제3세계 시민들에게 인문학 정규과정을 습득할 수 있도록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어, 수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한 얼 쇼리스라는 세계적인 학자가 있다. 그의 저서 <희망의 인문학>은 인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겐 너무나 잘 알려진 책이다. 이 책에서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하게 된 사연을 얘기한적이 있다. 소설가로부터 사회비평가, 언론인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던 그가 이 독특한 과정을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의 한 중범죄자 여자교도소에서 한 여성수감자와 만나면서부터다.
그 여성수감자는 감옥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철학을 전공으로 대학과정까지를 끝낸 사람이다. 어느날 그녀와 면담하면서 얼 쇼리스는 한가지 질문을 그에게 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습니까 ?"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 아이들(거리의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부유한자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을 겁니다" 이 답변속에서 얼 쇼리스는 클레멘트코스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이 여성이 말하고자 한 것은 사실, 가난한 자들, 못배운 자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도 인문학을 가르쳐서 그들이 정신적으로 깨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수감여성의 답변이 독특한 것은, 가난을 경제적인 이유들에서 찾지 않고 그들의 인문학적 교양의 부족에서 찾은 것 때문이다. 원인을 그들의 가정환경이나 악한 기질 등에서 찾질 않고, 인문학적 교양과 학습의 부족에서 찾은 것은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코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데 기여했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했던 연설 한 대목은 인문학 공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이 될 것 같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칩니다. 인문학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험한'사람들로 변화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합법적이고 정당한 `힘'을 갖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합법적인 힘이라든지, 민주주의와 같은 것들은 언제나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만, 그런 종류의 위험은 기꺼이 감수할 가치가 있습니다."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 2006년 1월 한국 방문 강연에서
소크라테스나 공자 말씀이 우리 삶에 어떤 보탬이 될까? 예수의 말씀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칸트나 니체의 철학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들이 논한 것은 밥벌이나 돈벌이, 즉 실용적인 학문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존중받고,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법칙과 세상의 근본이 되는 진리를 깨닫는 방법론에 관한 성찰이다.
요즘 대학에서 더이상 인문학은 인기가 없다. 실용적인 학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에 도움이 되는 학문, 평생 잘 먹고 잘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는 학과에 학생들이 모인다. 그래서 인문학의 사망선고가 대학내에서 선포되고 있다. 인류는 과학기술과 경제적인 진보를 이루어냈고 사람들의 삶은 보다 편리해지고 윤택해 졌다. 그것은 실용학문이 현실에 기여한 덕분이다. 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그 결과 실용적이지 않는 모든 것은 소외되었다. 대학에서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은 훗날밥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들의 문명은 행복해 졌을까? 우리 세상은 보다 살기좋아 졌을까? 과도한 개발은 환경재앙을 불러왔다. 얼마전 수많은 희생자를 낸 중국 쓰촨성 대지진은 인근의 댐 건설에 따른 지반의 약화에서 기인했단 보도가 나왔다. 지금도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녹고 있고, 지구 기온은 수십년간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문명의 진보란 넓게 보면 생태의 파괴란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삶을 단순히 편리와 윤택에 두는 실용적인 태도 때문이다. 실용적인 학문으로만 무장한 지식인들을 양성해 내는 대학은 영혼이 없는 개발업자나 장사꾼만 세상으로 흘려 보내고 있다.
영혼없이 살아가던 노숙자를 주체적인 인간으로 변화시켰던 얼 쇼리스의 클레멘트 코스를 교훈으로 삼는다면 아직 인문학엔 희망이 있다. 마크 C. 헨리의 <인문학 스터디>란 책은 왜 읽어야만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읽어야만 하는가? 라는, 독자의 고민에 체계적인 독서 목록을 제시하는 것으로 인문학 공부의 시작을 돕는다.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려는 이는 각자의 책장에서 어떤 책을 꺼내들까? 즉, 무엇을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 책읽기가 행복한 모든 이들의 영혼은 지금 이 시간 신선하다. 그들의 영혼은 타락한 세계에 물들지 않으며, 결국엔 부패하고 부덕한 세계에 희망을 공급할 것이다. 건강한 개인, 행복한 가정,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인문학 공부에 있다.
2009.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