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없이 현재를 말할 수 없다.  과거는 현재의 설계도이자, 눈밭위의 새겨진 발자국과 같다. 설계도가 잘못되었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현재의 건축물에 균열이 있을 것이고, 눈밭위를 아무렇게나 걸어왔다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정연하게 걷지 못한 자신이 추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고, 현재란 다가올 미래의 거울이다. 

어른의 세계엔 공감되는 과거가 있다.   그것은 유년이다.  어린시절 우리의 기억속에 각인된 모든 것은 무슨 빛깔을 하고 있을까?  그 빛깔의 색은 어른의 삶을 결정한다.  살아온 시절이 올바르고 덕스러웠다면, 그는 지금 성숙한 건축물이나 깨끗한 눈위의 발자국을 되돌아보며,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 어떤 이들에겐 유년이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다.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과거의 특정 시점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대개 상처입은 유년기나 과거를 갖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의 뇌는 행복한 것을 잊지 않으려하고, 불행한 일은 되도록이면 빨리 지워버리고자 하는 본능에 지배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유년의 상처가 평생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할레드 호세이니 장편 <연을 쫓는 아이>의 주인공 아미르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어린시절 자신을 단 한번도 거역하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던 친구이자, 하인이었던 하산이란 아이와 얼킨 인연 때문에 평생을 죄책감과 부채의식으로 살아가는 상처입은 어른, 그가 바로 아미르다.   

그 부채의식은 아프카니스칸을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하고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는 성년까지 계속된다. 과거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불행한 어른. 몸은 어른이지만 영혼은 아직 아이의 상처속에 정체된 이.  아미르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깊은 부채감을 자신의 하인이었던 하산에게 갖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하산이 하인으로서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자신을 좋아해주고, 또 자신을 대신해 희생해준것 때문만은 아니다.  아미르 자신에게 없었던 근본적인 성품이 하산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산은 아미르의 하인이었기에 고분고분했던게 아니라, 그 본래의 마음 가짐이 따뜻하고 헌신적이 사람이었다.  그러한 사람이었기에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고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하고자 하는 아미르를 도와, 최고의 영예라는 끊어진 연을 쫓아가서 그 연을 아미르에게 전달하려는 목적 하나로,  성폭행이라는 본인의 치욕조차 이겨낸다.

아미르는 부자 아버지를 두었고, 지배적 종족인 파쉬툰인이며, 소설을 쓸 정도로 명석하며, 글을 읽을 줄 안다.  모든 능력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미르.  그러나 하산은 소수의 시아파 이슬람교도인 하자라인에다, 아미르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고 있고, 글을 읽고 쓸줄도 모른다.  이런 하산을 아미르는 적당한 거리감을 갖고, 친구로서가 아니라 하인으로서 대하는 일이 잦다.  그리고 고분고분한 하산을 상대로 가끔 그가 문맹이란 점을 이용해, 동화책을 읽다 스토리를 바꾸고 하산이 알지 못하는 단어를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사람들이 볼때는 하산을 친구로서 대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이 없을때만 하산을 자신의 친구인냥 대하는 이중성도 보인다.

어느날 아미르의 영광을 위해 연을 쫓아 돌아오다 아세프 일당에게 걸려, 성추행을 당하는 것을 몰래 지켜보았으나 하산을 도우려하지 않는다.  그 전 아세프에게 괴롭힘을 당할뻔할때, 하산이 아미르를 구한일이 있었고, 이 일은 곧 자신을 구한 대가로 하산이 대신 받는 벌과도 같았다. 그러나 담벼락에 숨어 겨우 고개를 내밀고, 하산을 도와줄까 말까를 고민하다 겁에 질려 침묵속에 도망가 버리고 만, 자신의 행동, 그 이후 죄책감이 하산에 대한 공격성으로 바뀌어 그를 집에서 쫓아내려는 궁리를 이어가고, 결국엔 하산과 그의 아버지 알리를 누명을 씌어 쫓아내 버린, 아미르.

아미르가 하산을 미워한것은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즉, 자신이 갖지 못한 위대한 성품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 때문에 하산을 미워했던 것이다.  이같은 책략과 비열함에 대한 그의 후회가 평생 그를 괴롭히는 유년의 사건이었다.  그는 하산의 성품에 대한 배반에 대해 죄를 씻지 않고는 평생 비열한 인간이란 딱지를 뗄 수 없었던 사람이 되고 말았다.  뒤늦게라도 유년의 비열함을 속죄하려 한다는 점에서, 아미르의 인간성의 회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할만 한다.  세상엔 현재 진행형으로 죄를 계획하고,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깨닫지 못하고 죄책감을 사치스럽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 `동물적인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연을 쫓는 아이>는 성장소설의 문법을 잘 따르고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개인의 성장이란 측면을 파고들긴 하지만,  역사라는 거시적인 관점을 잠시도 놓치지 않으려고 작가는 노력한다. 아프카니스탄이란 외국인들에겐 얼마나 생소한 나라인가?  그러나 할레드 호세이니는 이 왜소하고, 상처입고, 누추한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정을 이 소설속에 듬뿍 담아내고 있다.  왕정에서 공화제로 다시 쿠테타에 의한 좌익 친소정권으로, 강압적인 탈레반 정권으로, 9.11의  이후 미국의 침략으로 인한 친미정권이 들어서는 그 과정, 하나하나를 작가는 이념이 아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민초들의 관점으로 그리고 있다. 

"그가 까맣게 타서 부서져가는 작은 마을의 잔해를 가리켰다. 그것은 마을이라기보다 이제는 검게 변한, 지붕 없는 벽 더미에 불과했다.  개 한 마리가 벽에 기대 자고 있었다.  " 저곳에 한 친구가 살았는데 자전거 수리공이었어요. 솜씨가 아주 뛰어났었죠. 타블라도 잘 연주했고요. 그런데 탈레반이 그 친구와 가족들을 죽이고 마음을 불질러버렸어요." 우리가 불타버린 마을을 지나가도 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  p. 364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과 배신, 그리고 죽음과 재회 등은 이 아픈 역사와 함께 하나로 버무려져 있다.  개인의 비극은 곧 국가의 비극에 기원한다.  비록 그 체제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조국을 등져야 했고, 미국민으로 동화되었지만, 작가는 여전히 조국 아프카니스탄을 잊지 않는다. 자신이 결국에는 돌아가야 할 곳은 태어나고, 자라고, 그리고 하산과의 우정이 깃들어 있는 아프카니스탄의 황폐한 땅덩어리였음을, 작가는 은연중에 주지시키고 있다. 

수많은 상처를 받아온 땅 덩어리, 가난과 폭력이 난무하는 조국이지만 아미르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조국은 아프카니스탄이었다.  연날리기, 연싸움, 케밥 등 조국의 풍습을 회고하는 장면은 떠나온 조국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그리고 다시, 유년과 역사를 훑고 온 소설은 이제 하나의 관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쓰여졌음을 독자들은 암시받게 된다.  그것은 인류 보편의 휴머니즘이다.  유년과 역사라고 하는 것은 성장소설이 갖고 있는 주관성의 한계를 드러낸다.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 아미르의 배신, 그리고 뼈아픈 역사는 민족과 이념을 초월한 하나의 교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씻고, 하산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조국으로 들어가겠다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유년의 상처가 자신의 삶을 발목잡고 있기도 하지만 하산이 자신에게 보여줬던 무한한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성품, 곧 `선의'다.  

"우리 뒤에서 아이들이 뛰어가고 있었다. 줄 끊어진 연이 나무위로 높이 떠가는 것을 쫓아가며 사람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눈을 깜박이고 다시 보자 소랍에게서 미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미소를 지었고 내가 그것을 보았다. " 저 연 잡아다줄까?" 소랍이 침을 삼키자 후골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바람에 그의 머리가 들어올려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나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p. 556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아미르에게 하산이란 한갓 어린 시절에 자신을 보좌했던 하인에 지나지 않았다.  아프카니스탄에서 하자라인은 천대받았고 그것은 당연시됐다. 쿠테타 정권, 탈레반, 미군 모두 아프카니스탄의 민중의 삶이나 생명은 천시하고, 오직 자신들의 목표아래 그 뭇 생명들을 깔아 뭉갰다.   앞뒤가 바뀌어버린 이 세계의 삶,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고 죄책감을 잃어버린 부덕한 세계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생명과 삶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로 되돌아가는 길,  보편적 휴머니즘을 실천하며 살아내는 일이다.  아미르가 하산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내걸고 다시 아프카니스탄행을 결정한 그 선택, 그것이 바로 보편적 휴머니즘 정신의 분명한 실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유년의 뼈아픈 기억에서 출발해 민족의 슬픈 역사를 훑고, 곧 정의에 대한 욕망, 악에 대한 저항, 그리고 약자에 대한 예의, 곧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휴머니즘에 이 소설은 궁극적으로 안착하고 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은 독자의 유년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독자의 유년에 어떤 뼈아픈 역사가 흐르고 있었는가 되묻고 있다.  또 아미르와 하산의 삶을 통해, 수많은 만남과 관계속에서 맺어진 우정과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우리들의 삶이 지금껏 성장했음을 눈치채게 한다.   재미있고,슬프고,교훈적인 아니 인간미가 흘러넘치는 소설을 읽는 시간은 행복해서 짧게만 느껴진다. 

 




 

2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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