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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 - 앤 라모트의 유쾌하고 다정한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윙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파스칼의 <팡세>에는 이러한 글이 나온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대체, 자신의 방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잠자기, 라디오 듣기, 전화로 수다 떨기, 티비시청 ?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이 모든 것 뿐인가 ? 파스칼이 의도한 대답은 그게 아닐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의 방에서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몰라서 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이상 행동의 연속일 뿐이다. 우리의 철학자 파스칼은 그러한 대답보단, 더 고상한 대답을 원했을 테니까. 방에 혼자 있으면 외롭다고 생각되기 쉬은데, 그것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다,라고 단순히 생각해 버리는 착각을 우리가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영혼이 부유한 사람은 아무리 비좁고 외딴 방에서라도, 할일이 있다. 그는 외롭지 않다. 수많은 고전들이 감옥의 독방에서 집필되었다는 점은 이 사실을 뒷바침 해준다. 책을 읽거나 노트와 펜이 준비되어 뭐라도 끄적거릴 수 있다면, 그에겐 외딴방은 최고급 호텔에 마련된 만찬장 만큼이나 풍족하고, 여유롭고, 부유하단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덤으로 외딴방은 조용할 테니까. 그래서 아마도 모든 작가라는 사람들은 외딴방에 홀로 머무는 것을 그리 고역으로 느끼지 않을거라 확신한다. 그가 만약, 시장바닥같은 어수선한 곳에서 글쓰기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이상한 능력을 갖추지 않는한 말이다.
`유쾌하고 다정한'이라는 부제가 붙은, 현대 미국 작가 앤 라모트의 <글쓰기 수업>은 외딴 방에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배작가 앤의 글쓰기에 대한 풍성한 조언이 가득한 책이다. 앤 라모트는 작가이고 동시에 글쓰기 강좌를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강사로서 일하며, 자신의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실제 내용을 이 책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이 강의는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라든가, 주제를 어떻게 정하는가? 시점의 완성, 아우트라인의 설정 등 소설쓰기의 기술적인 면에 치중하지는 않는다.
대신, 앤 라모트 자신이 어떻게 글쓰는 작가로 살아왔는지 자신의 인생역정을 사실적인 경험담으로 풀이해 놓았다. 어린시절, 작가였던 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책읽기에 몰입했던 어느 저녁 나절의 추억이라든가, 특이한 외모로 친구들에게 놀림 받았던 학창시절의 상처, 그리고 좋은 작문을 제출해서 친구들에게 복수하고 싶어했던 마음까지를 거침없이 회고한다. 더불어, 자신의 첫 소설이나 최고의 성공작이었던 작품 모두가, 병마에 시달리며 시한부 인생을 살던, 아버지와 친구라는 단 두 명의 독자를 위해 쓰여졌으며, 그 둘 모두 그 소설을 읽고나서 결국 죽었다는 극적인 사실을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대열에 오르기까지 비평가의 악평이나 자신의 글에 대한 자학 등으로 괴로움을 당했던, 솔직한 기억들을 이 책에 세심하게 기록해 두었다.
"나는 그가 넥타이를 매야 하는 정규 직장을 갖기를 원했고, 다른 아버지들처럼 매일 아침마다 어디론가 출근을 해서 작은 사무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를 원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일을 해주느라 남의 사무실에서 하루 온 종일을 보낸다는 것은 내 아버지의 영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 그랬다간 그는 죽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비록 50대 중반이라는 꽤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적어도 자기 명대로 살았던 것이 틀림없다. " p.9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책으로 한정시킬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카레이서만 운전을 잘 하는게 아니듯, 작가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생을 진실하고 진지하게 맞서 성실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잠재적인 작가들이다. 더불어, 이들 잠재적 작가들은 가장 성실한 독자가 될 수 있다. 잘 쓰는 일은 잘 읽는 일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좋은 독자는 좋은 작가이며, 뛰어난 작가는 훌륭한 독자라는 얘기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지금 당장, 무언가라도 끄적거리고 싶어진다. 앤 라모트는 글쓰기에 맹목적인 환상을 심어주진 않지만, 글쓰기를 멀리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것이 읽는것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어린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학교 글짓기 과제에 힘겨워하는 자신의 오빠에게 해주었던 조언은 곧 글을 잘쓰고 싶어 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가 유념해둘만한데, 그건 하얀 백지나 모니터 앞에 선 사람들이 글이 막힐때 `하나씩, 하나씩, 새 한마리씩 새 한마리씩 해치우면 된다" 라고 마음을 편히 여기는 것이다. 글이 막힌다면, 억지로 글을 쓰지 말고 그때가 어쩌면 우리의 외딴방을 빠져나올 적당한 시기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라는 조언처럼 들린다.
"나는 지금껏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외면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가. 그러나 마음을 열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더 안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그 모든 인생과 사랑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p.297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왜 읽는가? 하는 질문은 왜 쓰는가? 하는 질문과 연결된다고 믿는다. 앤 라모트는 평소 이같은 나의 의문에 적절한 답을 주는 듯 했다. 대부분의 독서가들은 질주를 본능으로 알고 살아가는 듯 하다. 책읽기의 본능이란 계산없는 전력질주가 아닐까? 도서관의 서가들이나 매달 구입하는 서적들에 짓눌려 언제나 글읽기는 수지가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장사다. 글읽기에서 흑자를 내는 것은 모든 독서가들의 이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독서가의 책에 대한 욕망과 만족을 채우는 일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욕망이 없다면 그는 이 세계에서 벌써 은퇴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모든 강줄기가 결국 바다로 연결돼 있듯이 모든 책읽기는 글쓰기와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채우는 목적은 끝없이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비우려는 궁극적 지향점에 닿아 있다. 대체, 당신은 그 많은 책을 왜 읽는가 ? 하는 단순한 질문은 잘 쓰기 위해서 라는 명료한 답을 요한다. 앤 라모트의 이 책의 결론도 이와 같다. 삶에 대해 의문과 결핍과 내면의 상처란 모든 글쓰기의 시발점이다. 독자는 타인의 진실에 열광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진실을 풀어놓는 사람이다. 글쓰기와 글읽기가 맞닿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작가들이 예리한 산문과 적확한 진실로 우리의 머리를 흔들어 놓을 때, 우리는 낙천성을 되찾는다. 우리는 인생의 불합리라는 불협화음에 맞춰 춤을 추는 시도를 하거나, 적어도 박수를 따라 친다. 거듭 거듭 그것 때문에 짓눌리는 대신. 그것은 바다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배 위에서 노래를 하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화난 풍랑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노래는 배 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p.364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200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