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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를 든 대통령 - 부패 없는 사회를 위하여
김정수 지음 / 민들레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요즘 세계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주가폭락과 경기침체로 글로벌 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 개방과 투자를 옹호하고, 정부개입을 극도로 거부하는 신 자유주의의 수호자 노릇을 한 미국 경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연일 추락하는 분위기다. 높은 연봉과 고급승용차로 대변되던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 월가(Wall Street)에서는 연일, 파산의 위기속에서 실업자가 수만 명씩 양산되고 있다. 급기야 미국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 서브프라임 사태를 막아보려 하는 최후의 수단을 쓰려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경제의 위기는 어디서 왔을까? 가장 큰 원인은 일부 투기적 자본가와 투자은행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대출자의 신용이나 상환능력은 생각지 않고, 법망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부동산 과열을 등에 엎고 부실대출의 건수를 높였지만,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부실한 대출은 곧바로 은행의 연체율을 높여 철옹성과 같았던 미국 금융산업 전체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 그 결과 미국경제와 한배를 탄, 신 자유주의의 세계경제는 함께 위기의 격랑속에 빠져들어 허우적대고 있다.
부패의 역사와 기원을 다루면서 현재의 한국 사회의 부패 문제를 되돌아보게 해 준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김정수 한국투명성기구 정책실장이 지은 <다리미를 든 대통령>이란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지난 인류 역사속에서 부패란 독버섯이 자라난 기원을 분석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사회의 그 어떤 분야도 그 독버섯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데 있다. 중국 고대 사회의 부흥과 쇠락을 분석해보면,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본인이 먼저 검소하고 공정하게 나라를 다스리면, 국가가 부유해졌고 국민이 안락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반대로 나라가 쇠락해 가는 지점에서는 반드시 임금과 관료들이 먼저 검소와 청렴과는 거리가 먼 뇌물과 매관매직이 넘쳐나 국가 기강이 해이해지고, 따라서 사회분위기가 부패로 얼룩진 것을 볼 수 있다.
중세 가톨릭은 천국행 티켓이라 할만한 면죄부를 팔았다. 면죄부를 판매하기 위해,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고, 면죄부의 가격이 높을수록 연옥생활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미디와 같은 얘기지만, 달릴 생각하면 유럽이 정신적으로 기독교로 통일돼 있던 시절이고, 세속 권력보다 종교 권력의 힘이 막강했던 시절의 이야기이기에, 충분히 이해가 갈 만 하다. 고려 문종 10년의 기록을 담은 <고려사>를 보면, 승려들이 재산을 불리기 위해 장사를 하고, 술과 고기로 배를 채웠고 시정에서 날뛰다가 사람들과 함께 싸움질을 하는가 하면, 서민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에 종사하기도 했다고 적혀 있다.
이 책은 또한 근 현대사의 한국 사회가 어떻게 부패로 얼룩져 있는지 분석하며 고발한다. 제 1 공화국인 이승만 정권은 정권유지를 위해, 3.15 부정선거로 4.19 의거를 불러와 결국 현직 대통령의 하야라는 기록을 남겼다. 박정희 정권은 신흥 재벌들과 유착하면서, 수많은 부패 사건을 만들어냈다. 전두환은 5.18 민주화 운동으로 그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을뿐더러, 부패 문제로 법정에 갔을 시에는 전씨 집안의 제사를 지낼 사람이 없다, 할 정도로 친인척 비리가 만연했다. 노태우는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해 착복했으며 김영삼 정권은 대통령 아들의 인사개입과 한국 사회의 부패가 곪아터진 IMF 사태를 맞이했다. 김대중 정권은 벤처기업들로부터 두 아들이 뇌물을 받은 일로 대통령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바 있다.
우리 역사를 보면 거의 부패와 동고동락을 했다 할 정도로, 부패의 사슬이 굵고 질긴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는 것에 그 심각성이 있다. 국가별 청렴도를 조사해보면 언제나 하위권을 달리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건국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 부를만한 IMF가 정치권과 유착한 부도덕한 기업가의 뇌물 36억원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한보철강을 이끈 정태수는 공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나는 이 나라에서 사업하는 문법을 다 꿰차고 있다” 하며 거만을 떨었다는데, 그뜻은 무엇인가? 한보 부도로 촉발된 IMF 사태는 그가 정치권에 뿌린 검은 돈에서 출발한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수많은 사례들을 돌아보며, 부패와 청렴이란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부패는 곧 나라에 있어서 패망의 시발점이며, 개인에 있어서 몰락의 전주곡이다. 그러나 청렴이란 단어에서 우리는 국가의 밝은 미래와 개인의 행복을 궁극적으로 예견할 수 있다. 삼풍백화점이나 씨랜드화재 사건에서 희생된 생명들을 맞바꿀 가치는 이 세상에 없으며, 거기서 기원한 국가,사회적 손실은 측정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에서 개인들이 주고받은 뇌물이란 미미했다. 우리가 이 사회의 작은 부패조차 용인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직장인으로서 나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회사에 공헌하는 것을 내 소명으로 여기며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건 기본적으로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회사의 발전이나 국가의 발전을 넘어,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서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국가청렴도 1위이자, 동시에 국가경쟁력또한 1위인 나라 핀란드는, 부패하지 않는 사회는 국가와 사회와 개인 모두가 함께 번영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세계 경제의 위기는 부패, 도덕적 해이로부터 출발한다. 그 반복의 고리는 단단하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끝부분을 보면, 인상깊은 장면이 하나 나온다. 페스트균의 몰락에 환호하는 시민들 사이를 빠져나온 의사 리유가 언젠가 페스트가 우리곁으로 되돌아올 것을 예언하는 장면이다. 부패와 파멸이란 그 질긴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책은 그 지름길을 알리는 표지석과 같다.
개츠비의 독서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