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금요일이면 로또를 산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겠다.  로또에는 관심조차 없던 내가 금요일이면 꼭 퇴근하기전에 집앞 편의점에 들른다. 지난번 토요일 어느 저녁엔 단발의 차이로 로또구매에 실패했다. 기차에서 내려 차를 몰아 집앞 편의점에 골인한 순간, 나보다 먼저 편의점에 당도한 아저씨가 로또를 이십만원어치나 사는 바람에, Pm 8:00 로또 마감시간을 눈앞에서 다 보내고야 만 것이다.  아저씨가 얄미웠다. 

편의점을 나오면서 쓴 미소를 지었다. 나두 나이를 먹은건가 ? 예전엔 로또같은건 관심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인생에 요행은 없다?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고친게 그러고보니 최근의 일이로구나. 세상을 대하는 나름의 자세가 바뀌고 있다는건, 인생의 연륜이 쌓이고 있다는 얘기. 내 삶이 성장했다는 증거?   아니면 세파에 시달려 내 영혼이 닳고 있다는 물증?  다 좋다. 아무튼, 나는 나이를 먹고 있고 이제 조금씩 삶에서 조바심이 이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이런 내게도 17살이 있었다.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는 내또래 여자 아이를 짝사랑하고, 친구들이랑 토요일이면 영화관에서 성인영화를 보며 짜릿한 쾌감을 맛보던, 때로는 혼자 있는걸 좋아해서 교정 잔디밭에 누워 알 수 없는 시 나부랭이를 끄적거리던 시절, 또 그 시절 정체 모를 분노때문이었을까,  학교 언덕배기에서 어느날이면 개미를 눌러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던 17살.  그러나 술이나 담배를 해본적이 한번도 없었고 학교와 집에선 언제나 고분고분한 성격이었던 나.  반항의 시절이라는 그때, 나는 반항하는 법을 몰랐던 순진한 아이였다.

김형경의 <꽃피는 고래>에 나오는 17살 주인공 니은이. 아빠와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 남겨진 아이처럼, 나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내면과 육체가 어떤 일을 겪어 내기엔 감당치 못할만한 나이가 있기 마련이다. 17살이란 나이는 부모의 부재를 온몸으로 겪고 감내하고, 극복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닐까.  소설속 니은이가 오랜시간 입이 아니라 내면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답답하면서도, 이해되는 것은 그때문이다. 

아빠의 고향, 처용포.  부모를 사고로 잃고 니은이가 세상과 이제 소통을 시작하려 하는 공간이다. 그곳엔 오래도록 고래잡이를 했던 장포수 할아버지와 한글교실에서 한글을 깨치고, 니은이의 아픈 영혼에 밥이 되어주는 왕고래집 할머니가 산다.  17살, 푸릇푸릇한 소녀와 세월의 주름을 얼굴에 지닌 두 사람 노인과의 만남, 그리고 소통.   장포수 할아버지는 유능한 고래잡이였지만, 금지된 포경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화려한 시절을 회상하며, 포경선을 닦고 조이는 것을 낙으로 알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금지된 고래를 잡으러, 다시 포경선을 띄울 날을 동경하고 있다. 왕고래집 할머니는 가난한 시절, 첫정에게 시집와 또다른 첫정을 잊지 못하는 남편을 애틋한 마음으로 저승으로 보내고, 혼자 그 세월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분이다. 

이 두 노인의 지나온 삶은 상실, 즉 잃어버림의 연속이다.  시간속에 묻어오는 것은 연륜뿐만 아니라, 끝없는 이별이다.  17살, 너무 이른 나이에 니은이가 부모를 잃어버렸듯, 두 노인도 삶속에서 고래와 남편을 떠나보냈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적인 흔적들은 사라지고, 세상은 고래잡이를 금지하고, 피할 수 없는 이별을 강요했지만,  각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신화 하나씩을 내면에 짓는다. 훗날 어쩌면 부모의 죽음을 거치며 겪은 모든 상실감과 그 무게감이 17살에 자신의 삶속에서 서술된 하나의 신화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을때, 니은이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잡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된다는 것의 핵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이를 먹고 몸이 커지고, 고래배를 타거나 시집을 가는 것 말고, 엄살, 변명, 핑계, 원망 하지 않는 것 말고 중요한 것이 그것 같았다. 자기 삶에 대한 밑그림이나 이미지를 갖는 것. 그것이 쨍쨍한 황톳길을 땀 흘리며 걷는 일이든, 미끄러지는 바위를 한사코 굴려 올리는 일이든, 푸른 하늘에 닿기 위해 발돋움하는 영상이든.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p.256

삶은 여행이다. 여행은 눌러앉음이 없다.  모든 설렘과 애착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정든 모든 것을 떠나보낼 수 있어야, 플레폼에 남겨진 사람과 풍경을 뒤로할 수 있어야, 새로운 여정은 시작되고, 우리의 여행은 지속되며 그래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떠나온 공간에 대한 과도한 욕심도, 지난시간에 대한 과분한 집착도, 올바른 여행자의 태도는 아니다.  주어진 앞날에 대한 긴장감과 기대감이면 충분하다. 시간은 뒤로 흐르지 않고, 앞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삶의 `처음'은 계속되는 법이다.  여행의 묘미란 바로 그것이다. 

어느날, 장포수 할아버지는 박물관에 기증하겠다던 포경선을 몰래 타고 먼 바다로 떠나 버린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포경선과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삶이자 꿈, 그리고 오랜 시간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그 바다와 고래를 향하여,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자신의 신화의 마지막 페이지에 신비감을 덧붙였다.  

이제 니은이는 17살, 부모잃은 고아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큰 상처와 이별을 겪었지만, 그것이 생의 마지막 상처와 이별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니은이는 `떠나보낼 수 있는 자만이 어른이 될 수 있다'라는 평범한 깨달음을 얻었다.  니은이는 이제 어떤 신화를 쓰게 될까?  그가 방황을 멈추고 하얀 백지앞에 펜을 들려 한다. 

내가 읽은 김형경의 첫 소설이다.  에세이 <사람풍경>속에서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소설을 읽으며 좀체 주인공 니은이의 존재가 잡히지 않는 모습에 적이 답답함과 실망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딱히 인상깊게 다가오는 등장인물도 찾아볼 수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부단한 인내심을 강요받았다.  이외수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여기엔 단서가 있다.  7,80년대에 쓰여진 그의 초기 작품들을 나는 좋아한다.  공교롭게도 그러나 내가 접한 이외수의 첫 소설은 2002년에 출간된 그의 <괴물>이란 작품이다. 그때 내가 이외수에게 얼마나 큰 실망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처음접한 김형경의 소설을 읽으며 이외수에게 품었던 한때의 오해가 생각나는건 왜일까?

 



 

 

 
 

2008.8.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