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독 흰 고독
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김영도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고독한 새에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가장 높은 곳까지 나는 일이요
둘째는 같은 종이라해도 친구를 삼지 않는 일이요
셋째는 부리를 하늘로 쳐드는 일이요
넷째는 한 가지 빛깔을 하고 있지 않는 일이요
다섯째는 낮고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일이다

-  후아나 델 라 쿠르스 수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는 8,000급 봉우리 14좌가 있다.  그 가운데 9번째인 8,125미터 높이의 산, 낭가파르바트는 30명의 알파니스트를 죽음으로 몰아간 역사가 있는 악명높은 산이다. 수많은 이들이 이 산에 오르기 위해 막대한 물자와 인원을 쏟아부었지만, 이 산은 도전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에게만 산의 정상을 허락하고 품안으로 받아들였다.

1953년 수차례의 역사적인 도전끝에 오스트리아인 헤르만 볼이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한다. 낭가파르바트란 이름은 카슈미루어로 `벌거벗은 산'이란 뜻을 갖고 있다. 사실 이 산은 깍아지른듯한 바위와 5,000미터가 넘는 수직 빙벽을 갖고 있는게 특징이다.  이 지역 일부에서는 이 산을 `디아미르(산중의 왕)'라 부르기도 한단다.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극지를 모험하는 이들의 생리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그러한 일에 관심갖고 체험하기전까지 나는 아마도 그들의 심리와 열정을 알지못할 것이다. 목숨을 내걸고 하는 것은 소위 말해서 스포츠나 레저가 아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취미로 피아노 치기를 즐기는 것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가 아무리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쳐도, 연주도중 죽을 염려는 없다.  환상적인 연주가 끝나면 관객의 환호와 갈채가 이어진다.  연주를 하는 도중이나 연주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다 고꾸라져 사망하는 경우도 없다.  열정은 예술로 승화되고 오직 연주가 끝나면 연주의 평가와 관객의 감동이 뒤따른다.  그러나 히말라야를 오르는 알파니스트에게 정상의 등정만으론 성공이라 부를 수 없다. 올라온 만큼, 죽음을 무릅쓴 하산의 여정이 남아 있다. 실제로 수많은 등반가들이 하산길에 눈사태나 크레바스를 만나 죽음에 이른다.

희박한 공기, 차가운 기온, 몇분후를 알 수 없는 날씨,  그리고 바위산과 수직빙벽으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치밀한 준비와 강인한 체력, 정상정복에 대한 의지가 모두 필요하다. 러시안 룰렛 게임처럼, 산을 오르는 동료 가운데 누가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같은 죽음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그 과정을 이겨내고 정상을 밟을거라는, 희망을 안고 등반을 시작한다. 그러나 암묵리에 그것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인식만은 회피할 순 없다.  세계의 꼭대기라 할 수 있는 8000미터 급의 봉우리에 올라보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소수가 되어보는 일은 알파니즘이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매력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러나 알파니스트의 세계를 그처럼 단정지을 순 없다. 독일 출신으로 세계 등반 기록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라인홀트 메스너는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르고, 그 이후 곧바로 낭가파르바트를 단독으로 등반하여,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8,000미터 급을 완등해낸  신화적인 인물이다. 1978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을 성공하고, 주위의 관심과 찬사를 즐길법도 한 그였지만, 불과 몇개월만에 또다시 사람들의 의혹과 냉소속에 다시 낭가파르바트로 향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든가 잘해 보라는 등의 말들이 여권 창구 너머로 들려온 마지막 인사였다. 그들의 말투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비난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내 생애의 마지막을 준비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 길을 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p.57

그리고 그는 낭가파르바트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미 30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산에 도전한다. 지금껏 당연시되어왔던 방대한 자원을 배경으로 한 등정이 아니라, 산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정상까지 최소의 비용과 단촐한 몸 하나만을 의지한 채, 모든 지원을 되도록이면 거부한 단독 등반이었다.  산을 오르기 위해 법적으로 필요한 의료 요원 1명, 그리고 수행 장교 1명이, 그의 등반에 참여했을 뿐이고 4000미터의 베이스캠프에서 8125미터의 낭가파르바트 정상까진, 거대한 산과 유약한 한 인간 라인홀트 메스너와의 맞섬이 있을 뿐이었다. 이 등반기를 기록한 이 책에는 정산등반까지 메스너가 낭가파르바트의 빙벽과 설산에서 보낸 시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무엇때문에 곳곳에 죽음이 크레바스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이 산에 오른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알파니스트의 열정과 도전뒤에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도 극지를 탐험하는 등반대의 개념을 넘어서, 오직 혼자의 몸으로 그 모든 것을 체험하고자 했던 이 사나이는 본래 고독을 사랑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었을까?  그러한 자문이 책을 읽는동안 솟는다. 낭가파르바트는 그 산세가 험준하기로 히말라야에서도 악명이 높은 곳이다.  인간을 압도하는 위세로 서 있는 그 산앞에 등정을 위해 최소로 짐을 줄인 단촐한 행장에, 몸무게 겨우 60kg이 나아가는 한 인간이 맞서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 위압적으로 솟아 있는 산 안에서는.  훗날, 사람들의 갈채가 있을지도 모르나, 당장에 눈사태에 휩쓸려 순식간에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정상에 오른다고 해도,  오히려 돌아오는 길이 원래 더 힘든 법 아닌가?  그러나 이 도전을 매스너는 멈출 수 없었다. 

"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준다. 고독이 더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  p.165

세계 60억 인구가운데, 역사상 수천억의 인구 가운데, 그 산의 정상에 오른 자는 겨우 몇명에 지나지 않는다.  라이홀트 메스너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지구상에서 사물이 줄 수 있는 절대의 고독을 지닌 장소가 있다면, 아마도 8,000미터급의 히밀라야 14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평범한 모든 이들처럼 영원히 이 아래 대지에만 머물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극한의 정상에 닿아 본 이는 그곳에서 무엇을 느낄까?  아니 정상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혼자의 몸을 태워 인간의 한계인 극한에 맞서고 있는 인간은, 매 순간 무엇을 느끼고 있는걸까? 

내가 걸어가보지 않는 길이기에, 그것은 낯설다.  타인이 목숨걸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에 냉소의 감정이 솟고,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때로 말이나 글로서는, 그리고 스크린의 생생한 화면조차도 설명하지 못하는 생의 진실이 있는 법이다.  진실은 오직 본인의 체험과 느낌으로만 드러나기도 한다.   체험과 느낌은 글이나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라이홀트 메스너가 낭가파르바트의 정상에서 느낀것이 무엇일까? 조금이라도 감을 잡아보려 애쓴 나의 노력은 헛되다.  그가 체험한 흰 고독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그러나 당장에 내 자신이 낭가파르바트의 그 끝없는 빙벽을 아이젠과 아이스피겔만으로 오르며, 저산소의 갑갑함과 중력의 무거움을 느끼면서,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엄습해오는 그 순간순간을 체험하지 않는한,  그 흰 고독의 정체를 깨닫는게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잠시 고독이란 해악이 아니라 평온함도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조금 얻는데 만족한다.

 


 


 200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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