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시클 다이어리 - 누구에게나 심장이 터지도록 페달을 밟고 싶은 순간이 온다
정태일 지음 / 지식노마드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삽니다. 과거는 기억일 뿐이고 미래는 기대에 불과합니다. 나는 살아 있음을 사랑합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다.  인류의 영원한 영적 스승인 소로우에 내가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떠한 관습이나 법률, 체제 안에 가두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삶이 인간의 질서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고 믿는 단순함을 버렸다는 점도 들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삶을 살 수 있었고 거기서 창의적인 사상과 삶이 나올 수 있었다. 하버드를 나온 수재였지만, 산속에 오두막을 짓고 2년간 머물며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고자 노력했고, <시민의 불복종>이란 저서를 통해서 국가라는 체제의 절대성에 맞서 개인의 인권과 개성이 권위와 집단권력에 의해 억압되는 구조를 질타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의 기초를 20대에 닦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20대는 어떤가?  입시지옥에서 탈출하면 모든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대학입학은 입시지옥의 탈출이 아니라, 또다른 지옥의 시작과 같다. 그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이 20대의 운명이자 로드맵이다.  이력서에 뭔가 하나라도 더 기재하기 위해 자격증이나 어학연수, 학점관리에 여념이 없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이 어느 정도 였을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높지는 않았을거다.  정치혐오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었을거다. 그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기 위해, 도서관을 점령하고 있었겠지. 

그러고보면 오늘날 20대는 고3의 연장이다. 20대가 끝나는 시점까지 이 이상한 전쟁은 계속된다.  그리고 30대에 접어들면, 운좋은 `소수의 승자'가 다수의 패자를 뒤로 하고 안정된 30대의 삶을 쟁취한다.  패자의 삶은 언제나 쓸쓸하고 슬프다. `88만원 세대'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그러지 않기 위해 20대의 싸움을 30대까지 이어오기도 한다.  백수라는 딱지를 붙이고 말이다. 

그러는 사이, 인생에 있어 가장 패기있고 정의롭고 신선해야할 20대 시절이 좌절과 분노, 그리고 쇠락의 기운으로 가득찬다. 이것은 비정상이다.  20대는 원래 불안과 좌절과 방황의 시절이라는 타이틀은 안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삶도 그만큼 치열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삶은 치열하지 않은데 사회 구조가 사람을 패배자로 만들어버린다.  대통령 선거날에 국가와 자신의 장래를 위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일보다, 다가오는 토익시험을 위해 영어 단어 몇 개을 외우는게 더 가치 있다고 사고하는, 이 스케일 좁고 기성의 이기적 냄새가 풀풀나는 이 젊은이들이 어찌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이상한 패배와 좌절의 기운, 이 비정상적 젊음에 반기를 들고, 어느날 갑자기 유럽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 젊은이가 있다. <바이시클 다이어리>의 저자. 정태일.  원래 여행을 떠나기전에는 그 여행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저자가 64일간의 유럽 자전거 여행에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비결'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성공의 열쇠를 발견하게 되는 일은 없다. 여행은 여행일 뿐이고, 그것은 삶의 연장이며, 또다른 만남의 시작이다.  

"나는 결국 그렇게 12시간 동안 끈질기게 달렸다. 파리지엥의 만류를 뒤로하고 떠나온 지 9일째, 마침내 뚜르에 도달했다.  뚜르에 도착하자마자 참았던 오줌을 누니 샛노란 기운이 주르륵 쏟아졌다. 온 몸이 바르르 떨리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예상보다 힘든 첫 주행이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싶었던 강렬한 유혹을 떨쳐낸 내 자신이 대견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결국 5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순전히 자전거에만 의지한 것이다. 그때 내가 느낀 자신감과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본문 p.105

나는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 모호한 성공철학에 대한 의미부여보다는 이 책을 쓴 젊은이의 결단과 행동, 그리고 64일간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었던 그의 의지에 더 높은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하나의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하고,실행하고, 그리고 마무리하는 과정은 곧바로 한 사람의 젊은이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일과 흡사하다. 그 둘은 다르지 않다.  64일간의 유럽 여행을 통해, 저자가 경험한 일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홀홀단신, 낯선 나라에 내려앉아 냉정하지만 속살이 따스한 그 도시를 알아보는 일이나, 길을 가다 우연하게 만나는 유럽의 자전거 표랑객들과의 담소, 그리고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들속에서 만난 교과서안의 지성들, 또한 그곳의 생소한 풍광과 어울어지는 예기치못한 로망스의 경험. 이 모두를 통해 저자는 아마도 인생의 성공비결 보다도 더 큰 삶을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를 배워왔을 것이다.

20대,스물 아홉,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누빌 이유는 분명하고, 이미 열정은 그 나이의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잊고, 감추고, 그리고 억압하며 사는 젊음은 불행하다.  젊음의 열망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 구조적 오류는,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길들여진 기성이 해 놓은 비열하고, 옹졸한, 계략이다. 젊은이를 기성의 제도에 옭아 매려는 치졸한 장치다. 젊음은 그 모든 것에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그것을 거부하고, 그리고 스스로 주체로 일어서야 한다. 선거날에 도서관에서 앉아 영어단어 하나더 외우는 것보다, 당당히 잘못된 기성을 심판하고, 자신의 미래에 한표를 던지는 사람. 그가 바로 20대, 스물아홉 젊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내게 자전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시골집 본가에 오래도록 방치해둔 오래된 자전거 한 대를 며칠전 수리해서 아파트로 가져왔다. 자전거 수리하는 아저씨가 너무 오래 안타서 자전거 기어가 퍽퍽 하단다.  나의 게으름이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장가를 들고, 1년도 훨씬 전에 자전거 한대를 사두었으니 이제 자전거가 두 대다. 타지 않던 자전거, 현관을 덩그러니 차지해서 언제나 통행에 장애만을 주던 자전거.  이제 저 자전거에 날개를 달아줘야겠단 생각이 문득 든다. 이 책의 저자처럼 유럽 자전거여행은 못하더라도, 30대가 되어 둘이 타는 자전거는 10대 시절, 철없이 달리던 자전거와 어떻게 다를까?  40대엔,50대엔......또 어떻게 다를까?  

 


 

 2008.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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