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한재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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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의 제목과 부제가 흥미롭다. 요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사람들의 동질적인 분위기라고 할까?  부제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일치시킬 수 없다. 그게 일치하는 사람은 행운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곳에 가장 필요한 미덕은 `버티기'가 될 수밖에 없다.  버티기란 말이 풍기는 뉘앙스가 부정적인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버티지 않아도 될 때는 일이 잘 풀리고, 의도하는대로 인생이 흘러갔을 때다. 목표에 쉽게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때,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는 느낌이 들때 우리는 `버틴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즐기는 시간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은 매순간 콘서트장에 서 있는게 아니다. 즐기는게 아니라 `버티기'는게 삶이란 얘기다. 저자 한재우는 이 버티는 일상을 자신의 삶과 버무려 한 편의 에세이로 풀이한다. 한재우 에세이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21세기북스,2019)는 지금 세대의 핵심 키워드를 가장 공감이 가는 언어로 풀이한 책같다. 일단, 저자의 삶이 `노력하고 버텨왔던' 시간 같았다는 인상이 든다. 서울대 법학부를 졸업했지만, 남들처럼 사법고시라는 앨리트 코스에 접어들지 못했다. 늦깍이로 군대에 다녀와 여대 앞에 작은 카페를 열었으나 1년을 겨우 채우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카페에서 일하는 틈을 이용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1,500만이 듣는 팟캐스트 방송을 열었고, 베스트셀러 책을 몇 권 써냈다. 서른 줄에 접어들어서야,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즐겁고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저자는 회사 생활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방송을 만들어 나간다. 이제는 하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이 읽은 책을 남들과 나누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거쳐온 2,30대의 시간들을 회고하며, 그 시절을 견디고 있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그 고민을 이겨낼 수 있는지 작은 지혜를 건넨다. 책의 목차가 `~고민에 대하여'라는 일관된 제목을 갖고 있고, 어떤 주제에 관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처방전을 내놓는다. 그같은 이유로, 독자는 아마 손에 쥔 책을 놓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완벽하게 준비되지가 않아서기 때문이다. 정치논객 진중권 교수는 미학 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행기 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작은 자취방에서 286 컴퓨터로 써낸 글은 다름아닌 3권짜리 <미학 오디세이>였다. 바로 현재 미학대중서의 고전이 된 책이다. 진중권은 20주권 기념판 서문에서 다시는 이런 책을 쓰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한다. 왜냐면, 그 시절보다 지식은 더 정교화되고 실력도 늘었을테지만, 그 시절 갖고 있던 지적 호기심과 새로운 앎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고 말았기 때문이라고. 그 말인즉, 위대한 업적은 결코 실력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는 1년간 카페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었고 그것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쓰지 못했다. 아직 글을 쓸만한 준비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글쓰기 실력이 출중해지면 그 시절의 에피소드를 회고하며 멋지게 글을 써보리라, 생각했지만 이미 살아있는 감(感)은 사라지고 그 위에 `시간과 지식이 진흙처럼 쌓여 굳버버렸다'.  글쓰기 실력은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글을 써야 할 의지와 동기가 사라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시도하려 할때, 필요한 것은 탄탄한 실력과 준비인가, 살아있는 감이자 열정인가?


" 그러므로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그것에 대해 많이 알게 될 내일이 아니라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는 오늘이 아닐까. 완벽한 내일이 아닌 초라한 오늘로부터 시작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41쪽, 한재우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시작이 늦었다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동기들은 다들 갈 길을 정해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나만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시공부든, 취업준비든, 남들보다 출발이 늦어서 불안합니다."  함께 취업준비를 하는데, 친구만 1차에 붙고, 나는 떨어지는 상황이거나, 누구는 인턴에 합격했는데, 나는 떨어졌을 때,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친구에 비해, 아직 취준생이 나는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단적인 예로, 수능시험 점수가 안 좋은 고3학생들은 크게 낙담한다.  1,2년 재수를 하는 학생들의 초조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인생 전체로 볼때 그들이 남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몇 년이 과연 정말로 크게 늦은 것일까?  


저자는 스물일곱에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아홉에 군대를 갔고 서른둘에 취직을 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서른 하나,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 것은 서른 다섯이었다. 자신의 삶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지름길은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늦게 가려 한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했는데도 이렇게 늦었다고 토로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늦게 가도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조금 늦었을 뿐 취직을 했고 책을 냈으며,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었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늦기는 했어도 내 길을 찾아서 내 걸음으로 걷고 있다"는 점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이란 책에서 누구나 자신의 북소리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빨리 성숙해야 할 일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사람이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짓은 마치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는 일처럼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자기 속도에 맞추어서 끝까지 뛰면 된다. 일부러 늦을 필요는 없지만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면 그 또한 인생이다. 그리고 출발이 늦었다고 해서 꼭 전체기록이 나쁘리란 법도 없다."  71쪽


간간이 찾아오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저자의 방법도 눈여겨볼 만 하다. 저자는 30살이 넘어서 꾸준하게 글을 써왔고 주 3회 팟캐스트 방송을 몇 년간 펑크없이 올렸다. 그런 일은 물론 매번 신나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좋았다가 실증났다가, 길을 찾은 듯 하다가 헤매다가, 사람은 본래 그렇게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슬럼프가 오면 모든 것에서 손을 놓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슬럼프 자체가 찾아올 때를 두려워한다. 그럴 때는 일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애니 딜라드는 <창조적 글쓰기>에서 쓰기 싫더라도 매일 글을 써야 할 이유를 "나는 책을 쓴다기보다는 죽어가는 친구를 지키듯이 책을 지켰다" "진행중인 작품을 손에서 놓으면 그 작품이 사자처럼 포악해진다. 매일 찾아서 내가 주인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즉, 슬럼프를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그 일에서 손을 놓지 않고 그냥 계속 하는 것이다.  저자는 슬럼프를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가장 간단하기에 가장 정확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냥 해버리는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그냥 당장 해버리면 된다.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딱 하나다.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버리는 일' " 148쪽 


책의 제목이 통속적이지만 이 책의 깊이와 공감력은 높이 살 만 하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 계속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는 흡입력이 있었다. 책의 전체를 일관하는 고민들은 누구나 살면서 겪게 되고, 지금도 우릴 괴롭히는 문제들이다. 저자는 각개격파 하듯, 하나하나 독자들의 고민을 해소하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많은 작가와 그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이 책은 개인의 에세이를 넘어서는 위로와 위안이 있다.   `존버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저 열심히 버티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 시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버티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버텨야 할 때, 버텨내야 한다. 세상 모든 일에 버티는 능력은 감초의 역할을 한다. 


버티기는 노력이고, 성공으로 가는 씨앗이며, 위대한 성취의 밑거름이다. "버티는 한 기대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른 두살에 글을 쓰기 시작해 마흔을 목전에 남기고 퇴사를 결심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정은 것은, 퇴근 후 오랜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책상앞에 앉아 버티는 힘을 길러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시간은 내가 과연 글쓰는 일을 잘 해 낼 수 있을지 스스로를 시험하며, 따라올 수 없는 내공을 기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에서건, 우리는 고수가 되고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 그런 끈기의 시간이 필요하다. 버텨내야만 도달할 수 있다.  존버의 시간을 버텨내야,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일치시킬 날이 빠르게 올 것이다. 한재우의 에세이는 감동과 깨달음을 전해주며 따뜻한 위로가 있는 책이다. `존버'하고 있는 당신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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