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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사가 전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거의 없는 편인데, 몇 가지 작은 버릇들은 있다. 가장 자주 하는 건 편의점이나 슈퍼에 들러서 꼭 쓸데없는 걸 하나씩 사들고 나온다. 이를테면 붓펜 같은 거.

가끔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는데(나는 소문난 음치라서 노래 부르는 걸 즐기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는 흥얼거리는 일이 거의 없다), 이상하게도 늘 그 옛날 드라마 <손자병법> 주제가를 흥얼댄다. 딱히 이 노래를 좋아하거나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는데, 아마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인 꼬꼬마였을 때 텔레비전에서 자주 들었던 이 노래가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았나보다. 그래서 술이 많이 취하면, 무슨 회사 회식자리에서 술 잔뜩 먹고 어깨 축 쳐져서 쓸쓸히 집에 돌아가는 중인 만년과장인거마냥 혼자서 “너를 품고 달려가는 외로운 길에~ 그대의 긴 그림자 눈에 어린다~ 끝없는 도전 속에~ 피고지는 청춘 속에 내일을 건다~ 아아~ 손자병법~ 손자병법~”을 무한반복으로 부르면서 집에 온다.

지난주에는 이 두 가지 버릇이 동시에 발현돼서 <손자병법>을 흥얼대며 집으로 걸어오다가 슈퍼에 들러 약과를 세 개 샀고, 집에 돌아와서는 “약과니까 약통에 넣어야한다”며 비상약통 뚜껑을 열고 기어이 그 안에 약과들을 넣었다. 그래놓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반창고를 찾으려고 약통을 열었다가 약과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기억이 났다는 그런 이야기. 아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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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끝나고 11시나 돼서 집에 들어왔더니 봉이가 그 어느 때보다 짓궂은 표정으로 넌 괴랄의 끝판왕이자 아무말대잔치였던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꼭 봐야만 한다며 거의 반강제로 개막식을 시청하게 만들었는데, 아오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빵빵 터지면서 봤다. 저 못생긴 미감과, 알맹이 없는 내용에 온갖 곳에서 다 끌어다붙인 공허한 기표들의 대잔치를 IT기술력과 진정성(!)과 신파적 뽕(이를테면 아이들을 전면으로 내세운다거나)으로 그럴듯해보이게 발라버린 너무나 한국적인 이벤트 어쩔거야ㅋㅋㅋㅋㅋ 진짜 무맥락탈미학테크니컬키치의 한국적 정체성의 요약판이자, 한국 기업 간부들이 사원들 PPT에 요구하는 난감하고 괴랄한 미학정 정서의 스팩터클 버전이었다. 그래도 반딧불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천상열차지도를 만들어내던 장면과 드론 오륜기와 김연아로 마무리 지은 성화릴레이 전체는 다 멋졌다. 근데 진짜 봉이 지적대로 강원도의 다섯 아이들이 자라서 너무나 당연히 모두 도시로 떠나는 것까지 한국적으로 웃프고ㅋㅋㅋㅋㅠㅠㅠ 낯뜨겁다가도 중간중간 멋진 씬 하나씩 넣어줘서 까기도 애매하게 만든 것도 너무 한국적으로 웃프고. 다시 봉이의 표현을 빌면, "야 진짜 선진 기술과 후진 마인드의 이토록 완벽한 결합"이자 "한국을 잘 표현하고 싶어서 열심히 만들었을 뿐인데 한국을 메타적으로 표현하는 것까지 성취"한 개막식이었다. 하지만 개막식이 큰 웃음을 선사한 것과 별개로(아마 외국 반응과 어르신들 반응은 꽤 좋을 것이다), 엄청나게 엉망진창인 상태로 전정부에서 넘겨받았을 텐데 짧은 시간 안에 저기까지 해내느라 고생했다. 물론 현정부 고생도 있겠지만, 저기 동원돼서 가성비 맞추느라 말도 안 되는 돈 받으면서 열심히 준비해야했던 개개인들의 노고에 박수를. 친구 동생만해도 추위에 얇은 옷 입고 춤추느라, 평창 왔다갔다하느라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계속 생각나더라. 개인들 쥐어짜서 휘황한 쇼 만들어내는 방식도 너무 한국적이고, 가리왕산 엎어버린 것도 너무 한국적인데 한국에서 준비하는 이벤트가 한국집약적인 건 너무 당연하지 뭐.. 어쨌거나 시작된 올림픽, 꼭 선전하기를. (근데 그 인면조 녀석, 참 자꾸 보고 싶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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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 번째 요가 시간 막바지에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를 처음으로 해보게 됐는데 
세상에, 나 이 아래 사진의 왼쪽 자세에 잠시 성공했다!

2초보다 길고 3초보다 짧았을 것 같은, '순간'이라고 말해도 좋을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머리로 물구나무서기) 자체를 꿈도 꿔보지 못한 요가 초보자에게는
정말로 꿈 같은 순간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기에 무조건 따라해볼 수 있었던 패기ㅋㅋ

한순간 붕 떠서 허공에 발이 머무르던 느낌, 
그순간 무너지지 않으려고 모든 힘을 다 끌어올려 배를 꽉 조였던 느낌, 
못 잊을 것 같다. 허공이 아닌, 잠시 다른 세계에 발을 살짝 들여놓았던 느낌. 

첫 번째 힐링 요가시간, 두 번째 빈야사 시간에도 요가가 제법 재밌다고 느꼈지만, 
훗날 "요가에 처음 푹 빠지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면
이 2.5초의 경험이 될 게 틀림없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집까지 날아왔다. 
왼쪽 자세로 30초 버틸 수 있는 날까지, 
그래서 오른쪽 자세에도 성공할 수 있는 날까지! 

p.s 집에 와서 샤워하고 나니 기분이 더 날아갈 것 같아서
봉이랑 '정석'에 가서 기본과 라면(어디 가서 라면 사먹는 일 거의 없는데 이 집, 라면을 잘 끓인다)에
한라산 두 병을 두 시간 동안 알차게 먹고 왔다.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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