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내내 스피노자를 읽고 정리하는 데에 푹 빠져있다가 아침 요가와 함께 일상으로 돌아왔다. 퇴근하고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추리소설가와 번역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양꼬치모임까지 너무 좋은 흐름으로 며칠을 살았다 아아 너무 즐거웠네 정말. 일-스피노자-요가를 왔다갔다하는 세미묵언수행모드가 어쩐지 꽤 삶을 한적하면서도 꽉 채우는 느낌이라 5월 초까지는 최대한 사적인 약속을 줄이고 이렇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하기 쉽지는 않을 테고 전환을 빨리빨리 잘하는 걸로.
* 전에 다니던 회사에 내가 무척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여러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특히 가장 존경스러웠던 점은 일상을 뒤흔들만한 재앙이 밀려들었을 때 충분히 흔들릴 줄 알고, 그럴 여지가 잠재되어있는 어떤 일들에 일단 마음을 열어볼 줄 아는 단단함이었다. 보통의 경우 그 어느 것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게 단단함인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이 닥치면 거기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그러니까 단단하게 버티기 위해, 그 일에 내포되어있는 여러 가시들을 다 발라내서 부드럽게 씹어 넘길 수 있는 살만 남겨놓은 다음에야 삼켜 넘길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가시가 여기저기 박혀있는 걸 일단 그대로 입에 넣었고 그 상황에 내재되어있는 어떤 괴로운 결들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괴로워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결국 단단하지 못해서 단단하려고 했고, 한 번 크게 흔들리고 난 그 ‘이후’가 늘 두려웠고, 내 영혼의 관성력을 신뢰하지 못해서 잘 흔들리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 친구에게는 한없이 요동치다가도 결국 잔잔한 어딘가에 가닿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어딘가에 가닿지 못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뭐 어때~라고 생각할 줄 아는 대담함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늘 어딘가로 나아갔지. 내가 늘 가지고 싶어했던 단단함은 그런 거였던 것 같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모든 걸 다 쳐내어버리는 단단함이 아니라 파도에 나를 내맡겨볼 수 있는 단단함.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아니라 흔들릴 줄 아는 단단함. 그냥 어쩌다보니 맥락없이 막 흔들리는 게 아니라 흔들릴 준비가 되어있고 기꺼이 선택하는 단단함. 이번 생에서 가져나 볼 수 있을지. (그렇다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같은 김난도식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질색...)
* 요가 수련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은 아쉬탕가도 아니고 빈야사도 아니고 코어요가 시간인데 빈야사를 플랭크처럼 하는 시간이라 코어 근육을 굉장히 많이 써야한다. 지난 달에는 코어요가 수업 듣고 오면 그 다음날 배와 엉덩이 근육이 욱신거려 크게 웃지도 못했는데ㅋㅋ 이번주는 그래도 한결 낫다. 게다가 지난 달에는 신경 쓴다고 신경 썼지만 버티다보면 힘이 자꾸 분산돼서 안 가야할 어깨랑 허리 손목으로 힘이 가서 약간 뻐근했는데 이번 주는 그것도 한결 없어졌다. 한 동작씩 없는 힘을 짜내서 홀딩을 하고 있으면 평소에 그 동작을 할 때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내 몸 안에서 힘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느껴볼 수 있어 이것 또한 좀 좋은 것 같다. 코어요가는 꾸준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