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지나간 길을 걷는 게 참 좋다. 오늘은 병원에서 긴 검사를 하는 날이어서 여기저기 찔리고 눌리고 핵의학실에서 조영제 맞느라 좀 지쳤는데도. 병원이 회사쪽에 가까운 지하철역A와 한 정거장 먼 B 사이, A에 5분 정도 가까운 어디쯤에 있는데 좀 더 걷고 싶어서, 지하철 안에서 오며가며 읽으려고 갖고 나온 책이 무척 흥미진진한 덕에 좀 더 읽고 싶어서, 당연한 듯 B로 걸어왔다. 이번 검사도 통과했으면 좋겠네. 근데 검사는 싫지만 “오늘 나 핵의학 검사해”라는 말은 장르적으로 좀 마음에 들어서 핵의학 검사 받는 날은 어딘가에 전화하고 싶어진다ㅋㅋ (내 안의 김진명인가....-_-) 그리고 십 몇 분 후에는 목요미스테리북클럽이 있어 두 시간 동안 신나게 추리소설 이야기만 잔뜩 할 예정이고 끝나면 베프와 만나 아마도 맥주를 한 잔 하며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인 그녀를 요 며칠 매일 같이 술 마시게 만들었다는 ‘대박사건’에 대해 들을 것 같다. 진짜 장르적인 하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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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내내 스피노자를 읽고 정리하는 데에 푹 빠져있다가 아침 요가와 함께 일상으로 돌아왔다. 퇴근하고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추리소설가와 번역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양꼬치모임까지 너무 좋은 흐름으로 며칠을 살았다 아아 너무 즐거웠네 정말. -스피노자-요가를 왔다갔다하는 세미묵언수행모드가 어쩐지 꽤 삶을 한적하면서도 꽉 채우는 느낌이라 5월 초까지는 최대한 사적인 약속을 줄이고 이렇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하기 쉽지는 않을 테고 전환을 빨리빨리 잘하는 걸로.

 

* 전에 다니던 회사에 내가 무척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여러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특히 가장 존경스러웠던 점은 일상을 뒤흔들만한 재앙이 밀려들었을 때 충분히 흔들릴 줄 알고, 그럴 여지가 잠재되어있는 어떤 일들에 일단 마음을 열어볼 줄 아는 단단함이었다. 보통의 경우 그 어느 것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게 단단함인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이 닥치면 거기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그러니까 단단하게 버티기 위해, 그 일에 내포되어있는 여러 가시들을 다 발라내서 부드럽게 씹어 넘길 수 있는 살만 남겨놓은 다음에야 삼켜 넘길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가시가 여기저기 박혀있는 걸 일단 그대로 입에 넣었고 그 상황에 내재되어있는 어떤 괴로운 결들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괴로워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결국 단단하지 못해서 단단하려고 했고, 한 번 크게 흔들리고 난 그 이후가 늘 두려웠고, 내 영혼의 관성력을 신뢰하지 못해서 잘 흔들리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 친구에게는 한없이 요동치다가도 결국 잔잔한 어딘가에 가닿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어딘가에 가닿지 못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뭐 어때~라고 생각할 줄 아는 대담함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늘 어딘가로 나아갔지. 내가 늘 가지고 싶어했던 단단함은 그런 거였던 것 같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모든 걸 다 쳐내어버리는 단단함이 아니라 파도에 나를 내맡겨볼 수 있는 단단함.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아니라 흔들릴 줄 아는 단단함. 그냥 어쩌다보니 맥락없이 막 흔들리는 게 아니라 흔들릴 준비가 되어있고 기꺼이 선택하는 단단함. 이번 생에서 가져나 볼 수 있을지. (그렇다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같은 김난도식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질색...)


* 요가 수련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은 아쉬탕가도 아니고 빈야사도 아니고 코어요가 시간인데 빈야사를 플랭크처럼 하는 시간이라 코어 근육을 굉장히 많이 써야한다. 지난 달에는 코어요가 수업 듣고 오면 그 다음날 배와 엉덩이 근육이 욱신거려 크게 웃지도 못했는데ㅋㅋ 이번주는 그래도 한결 낫다. 게다가 지난 달에는 신경 쓴다고 신경 썼지만 버티다보면 힘이 자꾸 분산돼서 안 가야할 어깨랑 허리 손목으로 힘이 가서 약간 뻐근했는데 이번 주는 그것도 한결 없어졌다. 한 동작씩 없는 힘을 짜내서 홀딩을 하고 있으면 평소에 그 동작을 할 때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내 몸 안에서 힘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느껴볼 수 있어 이것 또한 좀 좋은 것 같다. 코어요가는 꾸준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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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아쉬탕가 두 번, 빈야사 한 번으로 가장 바라마지 않던 스케줄로 움직였고, 무엇보다 아침 요가를 두 번이나 갔다! 사실 아침 요가는 너무 일찍 일어나야하는 부담이 있어서 애초에 요가 시작할 때도 당연히 저녁 타임만을 생각했는데 아침 시간대 요가선생님이 가장 꼼꼼하게 가르쳐주는데다가 어쩐지 보고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어서 자꾸 아침요가를 가고 싶어진다.. 이 선생님이 저녁 타임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 덕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뭐 하나 포기하면 뭐 하나 얻고 다 그렇지 뭐. 앞으로도 아침 수업을 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게 될 것 같다. 오늘은 빈야사 수업 마지막에 누워서 명상을 하는 중에 아직 여운처럼 남아있는 허벅지가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호흡을 맞추는 기분으로 가만히 집중했다. 그러다가 지금 내가 이렇게 누워 요가를 하고 있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그러니까 요즘처럼 살고 있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여러 가까운, 그리고 떨어져있는 원인들에 굉장히 감사하고 소중하고, 어쩌면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기분과 기운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 아, 정말 감사하다, 라는 마음 뒤에 항상 애틋한 마음이 따라오는 것은, 지금의 내 상태에 대한 행복감이 지나가고 나면 어떤 류의 비장함이 남게 되는 것은 아마 모든 감사한 것들의 뒤에는 항상 그만큼의 빚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나 혼자 분투해서 얻어낸 감사라고 해도 그걸 얻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외면하거나 모르고 지나갔던,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감사에서 누리는 행복을 몸에 가득 담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빚을 하나씩 갚아나가기 위해 오늘도 또 힘내자. 요가 하이 상태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점심 시간에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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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요가를 가기 위해 6시 30분부터 일어나서 준비. 오늘 처음으로 아쉬탕가를 배웠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고 기대만큼 재미있었는데 물론 안 되는 동작도 두세개있었다. 모두 균형잡는 데에서 오는 문제. 흥미로웠던 건 아쉬탕가 중간중간에 빈야사로 몸을 풀고 호흡을 골랐던 점이다("빈야사로 돌아가서 잠시 숨을 고르도록 할게요.") 지난 달에 빈야사를 들을 때는 빈야사만도 에너지 소모가 크고 꽤 힘이 드는 편이었는데, 아쉬탕가 중간중간에 빈야사, 그중에서도 차투랑가 단다아사나- 부장가 아사나- 아도무카스바나 아사나를 하니까, 같은 동작인데도 이번에는 정말로 몸이 풀리고 호흡이 골라지며 마치 휴식처럼 잠시 머무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아쉬탕가가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인지, 아니면 아쉬탕가 동작들의 특성때문에 아도무카스바나 아사나로 몸을 길게 늘여주는 게 시원하게 느껴져서인지. 평소 아도무카스바나 아사나할 때 불필요하게 어깨에 들어가는 힘도 저절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아 아쉬탕가 너무 재밌네. 퇴근하고 저녁에는 모처럼 금주모드인 워녀리를 만나서 3년 반만에 페밀리 레스토랑에를 갔다. 돌아와서 새벽까지 영화도 한 편 보고. 하루 정말 길게길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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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축구팀 에이스와 오랜만에 그라운드 밖에서 만나 신나게 저녁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서야 아이폰을 열었더니 지옥이 펼쳐져 있네.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인터뷰 영상은 차마 다 보지도 못했다. 저렇게 피해자의 실명과 신상공개를 팩트체크의 기준처럼 삼는, 너무나 위험하고 유해한 보도 방식을 언제까지 봐야하는 걸까. 개다가 덧글창마다 여기저기 지옥이네. 삼성이 묻힌다는 둥(이 와중에도 정치공학이 어쩌고 하며 마치 자기들만 큰그림 볼 줄 아는 듯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성폭력을 "상대적으로" 별거 아닌 작은 그림으로 후려치고 있는) 김어준 예언 운운하며 아무렇지 않게 2차 가해 퍼붓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런 2차 가해의 프레임을 거하게 짜주고 결과적으로 저런 안 그래도 나서기 힘든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던 것만으로도 김어준 너는 쓰레기야. 양아치 새끼들. 전부 다. 


여러 생각들로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결국 한 시간도 못 잤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오늘 받은 선물을 올려놓고 괜히 만지작거렸다. 위안이 되는 것이 필요한 밤이다. 내가 지나가듯 어딘가에 '우리 동네 커피 불모지'라고 썼던 걸 마음에 담아뒀다가 아직 십자인대부상도 다 안 나았으면서 맛있다는 커피가게까지 부러 걸어가서 더치커피와 원드를 삳사들고 온 친구의 마음 같은 것. 오랜만에 옛날에 살던 동네 먹자골목에서 함께 먹은 닭발의 맛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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