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이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
공지영.지승호 지음 / 알마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때가 있어요.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반겨주는 거리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이리저리 뒤져보다 문득 외로운 순간이. 누군가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받고 싶고 힘내라고 응원 받고 싶은 아이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살다보면 종종 있지요.

 

그래서 그럴까요. <즐거운 나의 집><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이하 응원할 것이다)>에 이어 위로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괜찮다, 다 괜찮다>[2008. 알마]는 지친 어깨를 토닥이며 위안을 안겨주는 책이네요.

 



지은이 공지영은 책 18권으로 700만 부 이상을 판 유명작가죠. 1994년에 <고등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인간에 대한 예의>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된 일은 한국 출판계에서 지금까지 유일한 ‘사건’이고 7년간 공백을 넘고 다시 작품 활동을 할 때, 소설과 산문 두 분야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작가도 공지영이 처음이지요.

 

화려한 기록들 뒤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배어있죠. 절망의 끝까지 갔고 죽음까지도 생각했다는 그녀는 내면의 성찰과 종교의 힘으로 아픔을 품에 안았네요.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그녀의 글은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지요. 특히 ‘여성으로서 살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겪었던 고통들을 얘기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위안과 용기를 얻었는지 인터넷 서평란을 조금만 뒤져봐도 알 수 있지요.

 

이 책의 산파 지승호는 월간지 <인물과 사상>에서 달마다 인터뷰를 하는 전업 인터뷰어예요. 그는 화제의 인물들을 만나서 취재한 경험이 수없이 많은 사람이지요. 탄탄하게 조사해온 사실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궁금할 내용들을 묵직하게 질문하고 여러 생각들을 나눌 수 있게 준비하는 그의 노력과 열정은 대단하지요. 귀담아 들을 내용들을 끄집어내게 화제들을 적절히 제시하고 이야기를 안정되게 이끄는 솜씨는 그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맞장구칠 거예요. 인터뷰이를 세상에 드러내려고 회 요리를 돋보이게 하는 무채처럼 묵묵히 조연 역할을 하는 그의 땀방울이 이 책에서도 빛이 나네요.

 

책은 공지영의 생각들에 초점이 맞히면서도 다양한 주제로 맛깔난 대화를 하지요. 그녀의 유년 시절, 학창 시절, 결혼과 이혼, 종교와 문학, 딸과 두 아들, 사람과 만남, 여러 에피소드들에 대해 얘기하며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지요. ‘페미니즘과 운동권 경험을 팔아먹는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작가가 구도자가 아닌 이상 글을 팔아야 하고 문제는 상품의 질’이 아니냐며 응수하고 외모와 사생활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며 그녀의 글을 폄훼하였던 사람들에 대해 편해진 심경도 털어놓네요.

 

이문열씨가 공식으로 사과한 이야기, 운동권 학번인 그녀가 오랜만에 거리로 나가 6월 10일 촛불집회에 참석해 딸과 같이 나눈 이야기는 흥미롭네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아내가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었다는 당시 분위기에 슬쩍 웃음도 나고요.

 

특히 <조선일보>와 안 좋은 일화는 여러 모를 생각하게 하네요. <조선일보>가 대통령도 만든다는 소문이 나돌던 1997년 대선 직전, 전여옥씨가 <착한여자>에 대해 쓴 것을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이 싣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실었다고 하며 처음 본 자리에서 “나는 공지영이 싫어”라고 말을 직접 하기에 “나랑 싸우자는 거냐”고 맞섰는데, 그 때 옆에 있는 출판사 관계자들은 일제히 침묵을 지킨 걸 잊지 못한다고 말하지요. 나중에 한명이 “누가 감히 <조선일보>문화부 차장에게 대들어”라고 했다니, 과거에 조선일보의 권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네요.

 

공지영씨에 대해 ‘대중에게 영합해서 글을 쓴다’ 같은 문학계에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요. 하지만 작가라면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을 느끼는지 이해하는 게 글쓰는 기본이 아닐까요. 공지영이 대중영합을 한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그녀가 대중들에게 전해준 위로와 용기에 대해서 평가부터 제대로 해야겠지요. 물론 공지영씨는 칭찬받고 춤추는 고개를 거부하며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래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사형수들을 만나보고 아이들 교육을 시키다보니 ‘지지와 격려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믿는 공지영은 고독과 고통, 그리고 독서가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고백해요. 그 힘든 과정을 겪은 뒤 맺힌 열매를 세상과 나누고자 쓴 공지영의 따뜻한 글들을 읽으니 참 힘이 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방송국을 장악하는 것처럼 정치권력은 언제나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하지요. 언론에 따라 민심이 변하고 지지도가 달라지니까요. 문화공보부 안에 홍보조정실을 만들어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벙어리로 만들었던 전두환 정권이나 언론사에 ‘협조요청’을 했던 김영삼 정권까지 권력은 늘 언론을 통제하려 했지요. 

KBS 사장 해임이나 ‘YTN 낙하산 사장’, PD 수첩 검찰수사처럼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언론 억압을 했던 과거 정부들과 비슷한 움직임이지요. 정권의 나팔수를 만들려고 하지만 이전보다 성숙해진 시민들과 발전한 언론이 가만히 두고 보지 않네요. 여러 언론에서 날마다 정권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언론 길들이기’하려는 정권에 맞장구를 치는 언론들도 분명히 있지요. 흔히 ‘힘 있는 신문들’이라 할 수 있는 그 신문들은 촛불시위를 폄훼하고 PD수첩을 광우병 보도를 왜곡을 했다고 크게 보도하며 KBS 언론비평 프로그램을 비롯해 정연주 사장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지요.

 

신문읽기의 혁명[2003. 개마고원]은 언론을 받아들일 때 고민하며 살펴볼 수 있도록 따끔한 충고를 하네요. 권력의 홍보지처럼 글을 쓰면서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문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려주죠.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의 사설이 주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의 사설을 주의 깊게 읽고 난 뒤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독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 책에서

 

지은이 손석춘은 현재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으로 언론개혁을 위해 애써온 사람이죠. 그는 기자로 근무하면서 느꼈던 문제점들과 오랜 시간 공부한 한국 언론의 병폐들을 다양한 자료로 설명하네요.

 

박종철 서울대생 고문살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사건이지요. 그러나 특종 보도한 중앙일보는 당시 사회면 2단기사로 궁색하게 처리하였고 나흘 뒤에야 동아일보에서 1면 머리기사로 올라갔지요.

 

14대 총선을 앞두고 기무사가 개입하여 군부재자 투표 부정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반면에 조선일보에서는 제2사회면에 보일락 말락 1단으로 게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무척 어이없지요.

 

가장 놀라운 건 권력에 빌붙다가 뒤늦게 비판하는 ‘하이에나’같은 태도죠. 하이에나언론은 죽은 고기에만 날카롭게 이빨을 세운다는 의미로 쓰이죠. 대표 보기로 광주를 짓밟고 정권을 움켜쥐었던 전두환씨를 ‘새 시대의 기수’라고 평가했던 동아일보가 역사에 재판에 서게 되자 ‘정치군인 영욕 끝내 철창으로’라고 쓰는 걸 보면 얼마나 권력 앞에서 신문이 왜곡될 수 있는지 드러나죠.

 
삼성 기업윤리와 삼성의료원에 문제제기하는 기사가 최종 시내판에는 돌연 사라지고 신세계백화점 불법매장 사진이 다른 기사로 대체되더니 바로 신세계백화점 세일광고가 나오는 작태를 보여주며 광고에 의존하는 신문이 얼마나 외부 입김에 흔들리는지 알려주죠.

지은이는 “독자들은 그 10개 정도의 기사들을 지면에 편집되어 있는 위치에서 각각 해체하여 기사 그대로의 가치를 스스로 판별해야 한다. 편집자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지면을 해체한 뒤에 이를 자신의 가치판단으로 다시 구성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신문읽기혁명’의 요체가 있다.”며 독자 자신이 주체가 되어 시시비비를 가려서 세상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외압으로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언론의 정부견제와 비판이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간다는 걸 권력을 쥔 사람들은 왜 자꾸 까먹을까요? 언론이 권력에 휘둘려 “신문기자는 사실을 쓰지만 결국 거짓말이요, 소설가는 거짓말을 쓰지만 결국 사실.”이라고 냉소를 했던 기자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꿋꿋하게 싸우며 지켜온 언론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요.

 

한 나라 한 시대의 언론 수준이 그 나라 그 시대의 독자 수준이자 국민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어요. 독자인 국민들이 적극 나서서 언론을 올바르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미이죠. 시민의식이 높아진 만큼 권력이 언론을 주무르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설 수밖에 없지요.

 

언론은 안경이지요. 안경이 어떠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듯 언론이 어떠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지요. 지금 한국은 어떤 안경을 쓰고 있나요. 정부는 언론을 정권의 충실한 대변인으로 만들려하고 독자들이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되지 않게 나서는 현재 상황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이 될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꼴 1 : 얼굴을 보고 마음을 읽는다 - 허영만의 관상만화 시리즈
허영만 지음, 신기원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운명을 믿으시나요? 운명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나는 이런데 쟤는 저럴까 하는 불만과 호기심은 어린 시절 종종 느끼지요. 나이 들어 누구는 잘되고 또 누구는 잘 안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요. 도대체 왜 어떤 이는 잘 풀리고 다른 인물은 하는 일마다 꼬이는 걸까요?

 

허영만 화백의 만화 <꼴><2008. 위즈덤하우스>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출발하지요. 지은이는 무려 13만 장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네요. 수많은 그림을 그리면서 얼마나 많은 인물들을 그렸을지 짐작이 되네요. 허화백이 그린 인물들은 많은 경우 실존 인물이었대요. 드디어 그가 “얼굴은 운명에 영향을 미치나?”라는 평생 따라다녔던 궁금증에 도전하네요.

 

현재 2권까지 단행본이 나온 꼴은 ‘사람의 얼굴을 통해 마음을 읽는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하지요. 관상학자인 신기원씨를 찾아가서 공부한 내용을 주인공 마수걸이와 고정란을 내세워 진행하는데 꽤 재미있어요. 꼴을 해석하는 마의상법이 천여 년이 지났다는 것, 관상학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마음에 두면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 참고할 만하네요.

 

귀의 비밀, 눈빛, 오악 등 얼굴 부위별로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고 설명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얼굴의 균형과 조화라고 강조하네요. 나이 마흔이면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얼굴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요. 그에 따라 관상은 달라지고 운도 변화하지요. 타고난 형체는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관상과 삶이 변한다는 얘기에요.

 

나쁜 기운을 타고 났더라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면 달라진다. 현재의 불리함이 타고난 운명이라면 그것을 벗어나고자 꼴 공부를 하는 것이다. - 책에서

 

팔자를 탓하고 신세한탄을 하기보다 내일을 준비하며 땀을 흘리는 사람에게는 복이 온다는 말이지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얘기에,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드네요.

 

요즘 워낙 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하니, 성형수술하면 관상도 달라지는지 궁금한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그런데 뼈를 깎거나 살을 찢는 건 소용없다고 하네요. 형태는 고쳐도 운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다만 털이나 점 같은 ‘징조’를 고치면 다소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흥미로운 대목으로 귀부인이 될 4가지 조건이 있어요. 먼저, “이웃과 경쟁하지 않는다.” 둘째로 “고달파도 원망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음식을 절제한다.”이고 마지막으로 “기쁜 일과 놀랄 일에도 평소와 다름이 없다.” 예요. 이 조건은 조금 봉건시대 얘기 같지만 현대 사회에 알맞게 해석하면 곱씹을 내용들이지요.

 

허화백은 70년대에는 독고탁을 그린 이상무화백에게, 80년대에는 까치로 혜성같이 등장한 이현세 화백에게 밀려 늘 2인자였지요. 편집장에게 조금 더 해서 1등을 하라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1등을 하면 이제 내려오는 일만 남은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지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현실에 만족하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꾸준히 그리다보니 이제는 최고의 만화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허화백 얘기는 귀담아 들을 만하네요.

 

현대 사회는 외모가 자본이고 권력이지요. 얼짱, 몸짱이 뜨고 동안신드롬이 생기며 모두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남들과 나를 구분 지으려 오늘도 땀을 흘리네요. 호황을 이루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여기저기 생기는 피트니스 클럽들을 보며 외면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어느새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것 같네요.

 

보기 좋은 거에 마음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죠. 하지만 외모보다 중요한 게 인상이라는 걸 아시나요? 주변을 둘러보면 “저 사람은 잘 생긴 것은 아닌데 참 호감이 가.” “저 분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건 아닌데 분위기가 좋아.” 이런 말을 듣는 분들은 삶에 ‘격’이 배어 나오는 것이죠. 그렇기에 안을 가꾸는 일이 외모를 관리하는 일이지요.

 

겉모습은 결코 마음과 다르지 않아요. 얼굴은 얼이 드러나는 동굴이니까요. 마음의 변화와 관상의 변화를 같이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허화백의 깨달음이라네요. 결국, 관상은 자기 마음이 드러나는 꼴이니까요.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니라 어떤 표정으로 사는지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눔 나눔 나눔
조병준 지음 / 그린비 / 200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플레시아라는 꽃을 아시나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으로 100cm에 달하는 거대한 식물종이에요. ‘사치스러울 정도로 큰’ 이 꽃의 거대함에 대해 생물학자들은 여러 가지 진화론 설명을 하였지요. 그 중에 한 생물학자가 경제 원칙으로 이 거대한 꽃을 설명하는 가설을 내세웠는데 흥미롭네요.

“라플레시아는 다른 꽃들과 달리 비용 효과의 경제 원칙에 지배되지 않는다. 이 식물이 소비하는 영양분은 자신이 번 것이 아니다. 소비하는 영양분을 숙주인 덩굴 식물로부터 가져온다. 라플레시아가 착취하는 영양분의 한계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다. 다른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식물의 세계에서도 불로 소득이 터무니없이 한계를 벗어나는 낭비와 사치로 이어지는 것 같다.”(<식물의 사생활>, 데이비드 애튼보로, 도서출판 까치, 1995) - 책에서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을 때 생물들은 몸 색깔이 화려해지죠. 풍족한 생물들이 몸 색깔을 화려하게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에요. 괜찮은 ‘성적배우자’를 구하기 위해서죠. 먹고 살기 쉬워진 한국 사회에서도 몸치장에만 신경 쓰고 머리는 비우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책이 있어요.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조병준은 <나눔 나눔 나눔>[2002. 그린비]에서 라플레시아를 빗대어 한국 사회를 꼬집죠.


라플레시아의 거대한 꽃은 금세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썩기 시작한다. 우리의 불로 소득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다른 불쌍한 덩굴 식물로부터 착취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베트남에서, 스리랑카에서, 아니 김포와 동두천과 안산에서, ‘피부가 약간 검은’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하는 불로 소득을 가지고 우리가 지금 탱탱한 젖가슴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종속이론을 신봉하며 미국의 독점 자본을 물어뜯던 한국의 대학생들은 왜 이제 입이 닫혀있을까? - 책에서



자신을 꾸미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요. 먹을 것도 귀했던 시절을 지나 풍족해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잘 차려입고 다니고 있지요. 책을 읽으니 이것이 스스로 힘으로 얻은 것인지 고민하게 되네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이 편안함이 많은 이들의 불편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네요. 불로소득의 말로를 보여주는 라플레시아 꽃처럼 땀 흘려 벌지 않는 것은 썩기 마련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네요.


이어서 지은이는 현대인들에게 우상이 된 ‘몸’에 대해서 날카롭게 꼬집어요. ‘외모자본’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느새 몸이 경쟁력이 되었네요. 농경사회도 아닌데 남자들은 팔굽혀펴기를 하여 근육을 키워야 하고 여자들은 다이어트 소리에 자다가도 귀를 기울이고 있죠. 수 십 만원 화장품을 발라야 하고 삶의 자연스러운 징표인 주름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에, 백설공주 동화에 대한 글쓴이의 해석은 여러 모로 생각하게 하네요.


왕자가 백설공주를 살리게 된 것은 오로지 그녀의 ‘아름다움’이 유일한 이유였다. 왕자는 백설 공주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녀를 구원한 것은 그녀의 착한 심성이 아니라 그녀의 ‘착한 몸’이었다. 백설 공주 이야기가 여자들만의 이야기라고 착각하지 말자. 못생긴 왕자, 비쩍 마르고 숏다리인 왕자를 본 적이 있는가? 백설 공주가 그 착한 일곱 난쟁이 중 누구와도 사랑에 빠지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 책에서

지은이는 음악, 연극, 영화, 건축, 여행 다양한 분야를 횡단하고 마이클 잭슨부터 서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종단하며 글을 쓰지요. 이 책에서 그는 특유의 문체와 따뜻한 눈길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나눔'이라는 주제로 풀어나가지요.


이 책에서 '나눔'은 세 가지 의미가 있어요. 지난 세대의 집단주의에서 벗어난 건강한 개인으로 나누어짐(dividing), 건강한 개인들이 연대하기 위해 생각을 나눔(communicating), 연대한 공동체가 서로를 열어서 공유하는 나눔(sharing)이죠.


지은이의 의도대로 마더 테레사와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세계를 이리저리 여행하면서 배운 사람에 대한 믿음과 행복이 읽는 이에게 전달이 잘 되네요. 그가 펼쳐놓는 풍성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건축가 곽재환과 인터뷰한 내용에서 나오는 인상 깊은 글을 소개해요.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걸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 침묵 수도원에 다녀왔으면 좋겠네요.

[자비의 침묵 수도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복도 폭을 75cm로 만들었지요. 신부님, 수사님들이 욕을 바가지로 하더군요. 두 사람도 못 지나가도록 복도를 만들면 어떻게 하냐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 양반들이 그 복도를 그렇게 좋아한답니다. 사제들 간에 형제애를 키우는 복도라고요. 두 사람이 서로 지나가겠다고 우기면 한 사람도 그 복도에선 못 지나갑니다. 한 사람이 옆으로 붙어서 주면 그 때 비로소 두 사람이 모두 지나갈 수 있지요. 그래서 그 복도의 이름이 ‘겸손의 복도’입니다. - 책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걸으면 하나님도 걸어 - 홍순관 단상집
홍순관 지음 / 살림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인가요. 다 함께 피어야 봄이지요.

 

눈을 감고 광경을 그려봐요. 입에서 말뜻을 하나하나 오물거리며 되새겨 보네요. 그리고 인생과 사회로 의미를 늘려보죠. 제게는 이렇게 와 닿네요. 나 혼자 편하다고 행복한가요. 다 함께 잘 살아야 행복이지요. 이렇게 느끼는 건 혼자만 양껏 누리면서 고개를 세상에 돌리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제가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위의 글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네가 걸으면 하나님도 걸어>[2008. 살림]에 실린 짧은 글이에요. 도종환 시인이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겸손과 정직과 정신으로 쓴 글’이라고 평한 단상집이죠. 이 책의 지은이 홍순관은 1995년에 정신대 피해 할머니 돕기 공연<대지의 눈물>을 150회 공연하고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예요.

 

그가 노래에 담아 부르던 혼을 글로 써서 책으로 묶었네요. 글이지만 노래처럼 입으로 읽게 되네요. 천천히 읽는데도 다음 장으로 쉽게 넘어가지 않는 묵직함이 담겨있네요.

 

사람이 죽게 될 때 그 손에는 무엇이 쥐어져 있을까요.

책을 읽던 사람도

돈을 세던 사람도

결국엔 사람의 손이 쥐어져야겠지요.

 

그러나

죽을 때 찾아와 손을 만져 줄 사람을

책과 돈만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날을 상상하게 되요. 곁에서 두 손을 꼭 쥐어줄 이들이 누구일지 곰곰 생각해보게 되요. 그리고 지금 내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고개를 돌려보네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자신에게 묻게 되네요.

 

죽음은 삶의 성실함을 놓치지 않게 해요. 그런데 늘 죽음을 잊고 살아요. 망설일 시간도 없지요. 지금 사랑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해야겠지요. 내일이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시간이니까요.

 

시인 정호승은 노래합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시인 랭보가 노래합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정채봉 선생의 크고 착한 눈동자를 보고

아이 같은 구십 노인 피천득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을 보여 준다면 누더기일거요."

 

노래 만드는 백창우도 노래했습니다.

"삶의 긴 들판에 고운 꽃만 필 수는 없다.

그 긴 여정에 고운 바람만 불지는 않는다."

 

비가 오면 땅은 더욱 굳고,

흐르는 강물에 상처 많은 돌들도 둥근 조약돌이 됩니다.

나는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모난 내 성격을 울어봅니다.

상처 많은 세월에 피어난 오늘을 붙잡고도 울어봅니다.

울었던 내 모습은 착한 자화상이 되어 있습니다.


 

 

삶이 편하고 쉬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석가모니가 얘기했듯이 인생은 고통이지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이 글을 읽으니 위로가 되네요. 숱한 상처들은 세상의 더 큰 상처들을 보듬으라는 자극이겠지요. 사람의 마음은 눈물을 먹고 자라니까요.

 

정호승 시인은 ‘그의 노래는 우리의 가난한 영혼을 울린다. 10여 년 전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숨을 죽였다. 그의 노래에 영성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칭찬을 하지요.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하게 되죠. 그에 대한 호감은 심금을 울리는 노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에요. 어려운 길을 꿋꿋이 가는 그의 삶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죠.

 

그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평화박물관건립모금공연 <춤추는 평화 - Dancing with Peace>을 하였으며 2005년 뉴욕 링컨센터 공연을 계기로 우리가락과 정신을 세계에 알렸지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평화 운동가들과 연대하여 평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국악을 계속 발전 시켜왔지요. 북한에서 동요콘서트 하는 것이 꿈인 홍순관,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네요.

 

제목을 보니, 내가 걸으면 하나님도 걷는다고 하네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말이겠죠. 쉽게 변하지 않는 현실과 부딪히는 게 아프다고 그만 둘 수 없지요. 모두에게 봄인 세상이 되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실천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