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우는 이유 - 엄마 아빠가 꼭 알아야 할 우는 아이의 속마음
아베 히데오 지음, 박화 옮김 / 예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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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우니 도대체 어떻게 해줘야 할지 난감하고, 아이가 정말로 어디가 불편해서 우는 건지 아니면 자기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서 떼를 쓰는 건지 구별이 쉽지 않다. 주위에서 하는 조언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울면 안돼’ 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부모는 아이가 타일러서 얼른 울음을 뚝 그치게 하려 한다. 우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공동체이산으로 상담하고 경험을여쭤볼 어른도 없는 상황에서 초보부모들에게 ‘우는 아이’는 큰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내 아이가 우는 이유」는 그런 엄마 아빠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우는 아이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책은 신생아부터 초등학생에 이르는 아이들이 우는 이유와 그 심리를 알려주고 울음소리에 참을성 잃는 부모의 심리, 아이의 진심을 헤아리는 법, 제대로 울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가 ‘왜’울고 떼쓰는지 사례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 다른 사람들 경험을 참고하여 ‘아이와 부모의 소통’을 원활하게 도와주려 하는 책이다.

일본에서 포옹을 통한 ‘치유의 육아법’을 알리고 있는 저자는, 잘 울고 응석을 부리는 아이야말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므로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이의 울음을 들어주라고 말한다. 부모를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고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응석을 받아줄 사람이 있기 때문에 보채는데, 부모가 그것에 적절히 반응하여 욕구를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울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단순히 마음껏 울게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울음을 통해 어머니에게 마음을 호소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졌을때의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책에서

아이가 우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자신의 욕구를 전달하는 것과 감정을 해방시키기 위함이다. 울음은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상대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음껏 울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아이의 감정 스트레스가 해소되므로 오히려 아이에게 좋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는 아이가 충분히 울도록 따뜻한 태도로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러한 울음의 기능을 알게 되면 아이의 울음을 억지로 멈추게 하기 전에 아이의 속마음을 먼저 듣게 된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게 이끌어주게 되고 기다릴 수 있다. 울 때마다 당황하거나 화를 내지 말고 오히려 우는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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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 그리고 분단체제 뛰어넘기 새사연 신서 1
김문주.김병권.박세길.손석춘.정명수.정희용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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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세력이 위기란다. 노동자·농민·도시빈민·예비노동자의 상황이 갈수록 열악한 데도 그리고 한반도의 앞날에 짙은 전운이 드리우고 있는 데도 진보세력이 제자리에서 주춤거리거나 퇴조하고 있다. 현상만 진단하면 그 어느 때보다 진보 세력이 공감대를 얻어야 마땅한 데도 현실은 정반대인 역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위기의 실체를 진보세력의 ‘콘텐츠 부족’에서 찾는 담론이 있다. 진보세력이 아무런 대안도 없이 비판만 한다는 주장이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일은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꿰뚫는 이론적 바탕에서 실천 가능한 정책적 대안을 생산하고, 그 대안을 민중과 공유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2006. 시대의 창]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www.cins.or.kr)을 준비하고 결성한 100인 가운데 초기 준비위원들이 ‘새로운 사회’를 주제로 연 좌담을 생생하게 담은 책이다. 새로운 사회가 철학적 언술에 그치지 않게 인용된 수치를 확인하고 표와 그래프를 만들어 경제, 통일, 정치의 구체적 윤곽을 그린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대세라는 주장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지구촌 속에서 한국 경제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신자유주의와 분단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제시한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결코 잊지 않고 그 현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려는 사유와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들이 공통으로 이룬 결실이다.

공동 지은이인 박세길, 김문주, 김병권, 정희용, 정명수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건전한 지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활인이다. 현장 일선에서 체득한 문제의식과 경험을 학술 연구자들의 전문 연구력과 결합하여, 현실과 이론을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정책을 생산한다. 그들이 한국 사회의 경제, 통일, 정치를 주제로 일 년 동안 학습과 토론을 한 열매가 이 책이다.

경제를 살펴보면 기존 현실을 비판하는 안티테제에 머물지 않으려고 진테제들을 설명한다. 지식기반 경제라는 용어가 최근 널리 쓰이는데 실제로는 노동 주동형 경제를 눈가림한 용어라고 지적하며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대안과 정책들을 내놓는다.

정치를 짚어보면 최근 일어나는 촛불집회에서 봤듯이 현행 대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현재 헌법은 6월대항쟁으로 만들어졌으나 보수정치인들의 야합이 들어가 있어 민의를 배반하는 국회,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국정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지식과 기술의 발달, 국민의 성숙된 민주적 역량을 모은 신헌법을 주장하며 국민 직접정치를 제안한다.
작년 국내 최초 하남시에서 시행된 주민소환권으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이 책은 더 나아가 국민소환권(현행 국회의원을 그만두게 하는 권리. 열린 우리당 총선 공약이었음), 국민발안제(국민이 직접 정책 제안), 시민감사제(시민이 일상에서 관료사회 감시)와 청빈관료제(고급관료는 명예로 하며 공무활동에 대한 기본 수당 이외에는 물질적 혜택을 없게 만드는 제도) 같은 신선한 정책들을 내놓으며 정치 생활과 분리된 현재 삶에 생활정치를 주장한다.

진보의 위기, 그것은 전통적인 진보적 지식인들의 위기일망정 결코 진보를 갈망하는 민중의 위기일 수는 없다. 이 땅에 자살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까닭은 저 북유럽처럼 개개인의 인생관이 염세적이어서가 결코 아니다. 사회 약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나만 기름지게 살면 된다고 믿는 한국 사회를 깊게 톺아보며 바꿔야 하는 이 때, 이 책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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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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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가 한 말의 50%를 한 시간 이내에 잊어버리고 하루가 지나면 10%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쓴 글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어떻게 썼는지 모르기 쉽다.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얻은 지식 가운데 극히 일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 하는가?

「학문의 즐거움」[2001. 김영사]의 지은이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끈기 하나를 밑천으로 미국 하버드로 건너가 박사가 되고 필드상까지 받은 지은이는 배워서 지혜를 얻고 도전하면 창조하는 기쁨이 생기기 때문에 배운다고 한다.

필드상은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4년에 한 번씩 수학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랑에게 주는 상이다. 그러나 나이제한이 있어서 마흔 이전의 수학자들만 받을 수 있는데 그는 다른 천재수학자들과는 다르게 37살에 ‘간신히’ 최고령으로 필드상을 받는다. 그리고 일본에서 문화훈장까지 받는다.

이 책은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두런두런 늘어놓으며 학문하는 이유와 자기가 학문하는  과정을 되짚으며 겪었던 경험을 진솔하게 담았다. 배우는 즐거움과 창조, 도전하는 정신과 자기 발견이란 항목으로 책을 구성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어려웠던 시기와 배우는 즐거움을 얘기하는 이 책에 눈에 띄는 장점은 이렇다.

먼저 지은이는 성실히 자기의 맡은 바를 다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다. 수많은 천재를 만나면서 기죽을 거 같은데도 남들보다 더 시간을 들이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믿고 꾸준하게 공부하는 지은이의 끈기가 인상 깊다. ‘나는 바보니까.’라고 교만하지 않으려 애쓰고 겸손하게 수학 공부에 매진하며 좌절과 난관을 만나도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다음으로 히로나카 교수가 수학자로 평생을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들은 모두 ‘학습론’이라 할 수 있다. 배움에 대해, 공부하는 자세에 대한 고민과 생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평범함에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몰두할 때의 기쁨은 누구나 안다. 자기 능력을 탓하기 앞서 흘려야 할 땀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흘린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그의 학습 태도는 귀감이 된다.

하지만 수학자다 보니 자신의 필드상을 받은 논문<표수 0인 체상의 대수적 다양체의 특이점의 해소>에 대한 얘기와 푸는 과정을 쉽게 설명하려고 했지만 조금 딱딱하다. 회고 형식에다가 자기 의견을 덧붙이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데 조금 지루한 면도 있다. 이 점만 넘어서면 읽고 배울 게 많다.

느긋하게 기다리고(鈍) 기회가 오면 지나치지 않고(運) 나머지는 끈기(根)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하지만 물기 위해서는 이가 단단해야 한다. 늘 물려고만 했지 자신의 이를 갈고 닦지 않지 않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강태공은 그냥 낚시만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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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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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는 언제나 있다. 한쪽에 편을 들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치의식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생존위협을 받은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한 편에 뚜렷하게 서는 건 모험이다. 그러다보니 진보나 보수를 외치기보다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중간 지대, 색깔로 치면 회색지대가 넓다.

삶은 정치이고 시민의식은 정치의식의 다른 말이기 때문에 불행한 역사를 거쳤다지만 자기 목소리를 감춰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생각을 견주고 토론하며 모여야 민주사회는 나아진다. 참여해야 민주(民主)라는 말 그대로 주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다며 정치판단을 하지 않고 중용인 척하며 점잖은 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정일의 공부」[2006. 랜덤하우스코리아]는 머리말부터 이 그럴싸한 중용을 가차없이 몰아세운다.

내가 ‘중요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만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 머리말

이 글이 아프게 느껴졌다. 5에 있다고 중용이 되는 건 아니다. 10의 중간은 5의 언저리겠지만 10의 중간은 50의 언저리며, 1000의 중간은 500의 언저리다. 과거를 알고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으로 따져야 중용이지, 안주했던 어제의 중간은 오늘의 극단일 수 있다. 또한 중용이라고 취하는 침묵이, 깊은 고민의 결과인가 살펴야 한다. 오늘의 침묵이 내일의 웅변으로 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아는 게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침묵이라면 내일도 침묵할 것이다. 내일이라고 지식이 늘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장정일은 시인이자 소설가이고 현재 대학교수인 ‘지식인’이다. 그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라고 말하며 공부를 한다. 수만은 책으로 쌓았을 그의 지식이 이제야 자신의 무지를 밝히기 위한 지식이었다니. 새삼 공부란 무엇인지, 얼마나 무엇을 알고 있는지 되살피게 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과 선택된 주제들은 2002년 대선 이후 2006년까지, 장정일이 한국사회를 보며 궁금한 것들을 공부한 결과물이다. 그가 책을 파고들며 공부한 내용들은 양심적 병역거부, 후흑설과 통치방식, 친일파와 근대화론, 네오콘과 촘스키, 시오니즘과 이스라엘현대사, 조봉암과 이승만, 하이데거와 나치, 바그너와 히틀러, 레드 콤플렉스, 대중독재론과 박정희 등이다. 얼핏 들어 아는 내용 같지만 따지면 별로 아는 게 없다. 한 주제를 논하려고 여러 책을 뒤지고 꼼꼼히 읽은 그의 땀이 응결되어 이 책이 나왔기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상식의 지경이 넓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책 제목처럼 공부하게 하는 자극을 준다는 데 있다. 원래 공부란 누가 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지은이보다 상대적 지적가난을 느끼게 된다. 두꺼운 책의 지루함을 자기가 다 감당하고 공부 세계로 오솔길을 내주는 지은이를 보며 모처럼 공부열기로 데워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끝으로 공부를 왜 해야 할까? 장정일이 책에 그 답을 적었다.

공부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의견과 의견이 부딪치는 사회다. ‘나만 옳다’는 독단에 빠져 상대방의 개념과 논리에 대해 귀를 닫고 있으면, 민주주의는 기만과 독선에 병들게 된다. 무엇보다 개념과 논리를 서로 이해하고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 모르면 남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 서로 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도 없을 것이다. -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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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게 사는 법
김지수 지음 / 팜파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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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속으로 칼바람이 들어오네요. 춥지 않냐고요? 아마 얼어 죽기 전에 멋진 남성이 따뜻한 코트를 걸쳐줄 걸요?'

 

여성들의 속마음은 이럴까. 교육받은 신여성과 고전인 요조숙녀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달콤하고 씁쓸한 고민을 새삼 알 수 있다. 이 책은 현대 도시 여성에 대한 흥미와 고민을 같이 알려준다. 아래와 같은 글들 보자.

 

"당신이 멋진 원룸에 살지 않는다면 멋진 호텔을 예약하세요. 좋은 둥지를 마련하는 건 수컷의 의무니까요." - 책에서 

 



위의 인용문들은 잡지 <보그>의 김지수 차장의 첫 에세이 <품위 있게 산다는 것>(2008·팜파스)에 나오는 글이다. 이 책은 피처스토리(잡지의 특집 기사로, 독자의 정보요구에 따라 사람들 관심에 주안점을 둔 기사)를 모아 엮은 책으로, 시인이 되고자 했던 지은이의 유쾌하고 빼어난 표현이 가득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서울, 도시 여성들의 꿈과 사랑, 일과 욕망에 관해 사색을 하는 지은이는 여성이 접하는 일상과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발랄하지만 진지하게 잘 드러낸다. '짝퉁은 태생적으로 상처를 안고 있다. 그건 날고뛰어도 명품의 품질보다 못하다는 외형적 상처보다 태생 자체가 ’모방과 거짓말이라는 실존적 상처다', 이런 날카롭고 우아한 표현들이 책 읽는 맛을 더한다. 패션 잡지에 실리는 글이라 조금 가볍게 보려고 했던 짧은 생각은 산산조각 난다.

 

성형외과에서 가슴을 열어 보이는 것과 같은 두려움으로 자궁을 열어 보이며 받은 자궁암과 유방암 진단 체험, 복부지방을 덜어내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에서 땀을 흘린 다음, 뇌의 지방을 덜어내기 위해 심리치료사 앞에서 눈물 흘리는 지은이의 이야기는 무척 관심을 끌 것이다.

 

성형을 단념하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 현대인을 좀 먹으면서 예술인으로 만들기도 하는 우울증, 직장인으로서 유용한 대화 기술인 아부, 고단하지만 달콤한 직업, 그 누구도 모르는 싱글맘, 해체 위기에서 더욱 짠해지는 가족, 위험해서 더욱 그리운 이웃,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봉사 등 가리지 않은 소재와 여러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여성들이 무척 동감할 것이다.

 

이 책은 <품위 있게 사는 법>이란 제목으로 나왔지만 '현대 도시 여성의 솔직한 해부도'가 정확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그저 솔직하기만 하다면 가벼울 수 있을 글이 수많은 책과 영화, 사람들 인터뷰에서 따온 내용을 잘 녹여낸 글 솜씨 덕에 책을 품위 있게 하였다. 사치, 허영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사랑과 나눔을 펼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잘 건드리면서 깔끔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지은이를 '<보그>가 존중하는 가장 특별한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게 한다. 책에 일부를 꼽았다. 천천히 감상해보시길.

 

"담배가 지닌 마술이 동등한 '연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오로지 여성들만 안다. '나를 사랑해?' 또는 '첫키스는 언제 해봤지?'라는 곤혹스러운 질문 앞에서 시선을 피하며 수줍음과 신파적인 분위기를 풍기거나 '모든 게 니가 처음이야'라고 악녀의 이중성을 내보이는 대신, 그저 '잠깐만!'하며 담뱃갑에서 3.3인치의 흰 연초를 꺼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몰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여성은 '방탕함'이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안아준다고 다가와도 연기 냄새를 맡을까봐 전전긍긍. 돌연한 키스라는 낭만 무드가 감지되면, 다시 '잠깐만'을 외치며 진토닉의 애꿎은 매실 한 알을 베어 무는 것이다." -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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