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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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가 한 말의 50%를 한 시간 이내에 잊어버리고 하루가 지나면 10%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쓴 글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어떻게 썼는지 모르기 쉽다.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얻은 지식 가운데 극히 일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 하는가?

「학문의 즐거움」[2001. 김영사]의 지은이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끈기 하나를 밑천으로 미국 하버드로 건너가 박사가 되고 필드상까지 받은 지은이는 배워서 지혜를 얻고 도전하면 창조하는 기쁨이 생기기 때문에 배운다고 한다.

필드상은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며 4년에 한 번씩 수학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랑에게 주는 상이다. 그러나 나이제한이 있어서 마흔 이전의 수학자들만 받을 수 있는데 그는 다른 천재수학자들과는 다르게 37살에 ‘간신히’ 최고령으로 필드상을 받는다. 그리고 일본에서 문화훈장까지 받는다.

이 책은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두런두런 늘어놓으며 학문하는 이유와 자기가 학문하는  과정을 되짚으며 겪었던 경험을 진솔하게 담았다. 배우는 즐거움과 창조, 도전하는 정신과 자기 발견이란 항목으로 책을 구성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어려웠던 시기와 배우는 즐거움을 얘기하는 이 책에 눈에 띄는 장점은 이렇다.

먼저 지은이는 성실히 자기의 맡은 바를 다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다. 수많은 천재를 만나면서 기죽을 거 같은데도 남들보다 더 시간을 들이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믿고 꾸준하게 공부하는 지은이의 끈기가 인상 깊다. ‘나는 바보니까.’라고 교만하지 않으려 애쓰고 겸손하게 수학 공부에 매진하며 좌절과 난관을 만나도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다음으로 히로나카 교수가 수학자로 평생을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들은 모두 ‘학습론’이라 할 수 있다. 배움에 대해, 공부하는 자세에 대한 고민과 생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평범함에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몰두할 때의 기쁨은 누구나 안다. 자기 능력을 탓하기 앞서 흘려야 할 땀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흘린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그의 학습 태도는 귀감이 된다.

하지만 수학자다 보니 자신의 필드상을 받은 논문<표수 0인 체상의 대수적 다양체의 특이점의 해소>에 대한 얘기와 푸는 과정을 쉽게 설명하려고 했지만 조금 딱딱하다. 회고 형식에다가 자기 의견을 덧붙이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데 조금 지루한 면도 있다. 이 점만 넘어서면 읽고 배울 게 많다.

느긋하게 기다리고(鈍) 기회가 오면 지나치지 않고(運) 나머지는 끈기(根)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하지만 물기 위해서는 이가 단단해야 한다. 늘 물려고만 했지 자신의 이를 갈고 닦지 않지 않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강태공은 그냥 낚시만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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