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개념어 사전 - 들뢰즈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 87 아우또노미아총서 34
아르노 빌라니 & 로베르 싸소 책임편집, 신지영 옮김 / 갈무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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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한국사회에 들뢰즈가 나타나더니 크나큰 바람몰이를 일어났죠. 오늘날 흐름과 가장 잘 들어맞는 ‘유목의 철학자’라면서 여기저기서 들뢰즈를 끌어다 쓰며 추켜세우곤 하였습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철학은 잘 모르더라도 들뢰즈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을 정도죠. 수많은 철학계의 별들이 뜨고 지는 가운데 들뢰즈라는 태양이 솟았고, 한국사회에 뜨거운 땡볕을 내리쬐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들뢰즈의 책을 펼치면 생각의 유목을 할 수 있기는커녕 불어를 모른 채 프랑스 8대학 강의실에 홀로 앉은 기분이 되기 일쑤입니다.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다지만 들뢰즈 철학의 맥락을 모른 채 그의 글을 읽어나가는 건 나름의 짜릿함도 얻을 수 있겠지만 무척이나 괴로운 읽기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들뢰즈는 개념이나 낱말을 새로이 정의하면서 쓰기 때문에 그의 글을 무턱대고 읽으면 괜히 머리만 지끈거리면서 책을 덮어버리게 되죠.

 

그래서 들뢰즈에 대한 어마어마한 인기에 견줘 정작 들뢰즈 철학이 이 사회에 울림이나 변화를 낳았는지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게 됩니다. 들뢰즈를 공부하고 싶더라도 막상 괜찮은 입문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니까요. 이런 막막함에서『들뢰즈 개념어 사전』는 들뢰즈와 보다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책은 들뢰즈가 펼쳐낸 수많은 말들의 세계에서 중요한 개념어들을 21사람의 철학자들이 정리한 모음입니다. 책 제목 그대로 ‘개념어 사전’인데, 그렇다고 개념과 그에 따른 설명만 늘어놓은 게 아니라 이 개념이 어떤 의미이고 들뢰즈의 철학사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찬찬히 갈무리해두었습니다. 들뢰즈를 공부할 때 옆에 두면 마음이 든든해질 지도 같은 책인 것이죠.

 

도주선, 미시정치, 사건, 소수 문학, 강도, 기관 없는 신체, 내재성, 욕망하는 기계, 탈영토화/재영토화 등등 87개의 개념어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있네요. 어느새 문학, 영화, 예술 평론이나 심지어 신문의 여느 칼럼에서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이런 개념들을 들뢰즈는 왜 만들어냈고 어떻게 썼는지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철학이 세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읽어내면서 내 삶을 바꿔내는 뜨거운 약물이 되어야 하건만 일상과 동떨어진 채 젠체하는 도구처럼 써먹히는 퀴퀴한 먹물처럼 되어버렸고, 이에 많은 이들이 철학 언저리만 가도 손사래를 치면서 몸서리를 떨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즐거움과 쾌락의 시대에 철학은 뭔가 우중충하고 뒤처진 학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의 철학이 더 매력 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릅니다. 철학은 생성이자 창조이고 긍정이라며 들뢰즈는 평생 주장하였으니까요. 철학이 선뜻 내키지 않는 이들에게 들뢰즈는 철학과 친해지도록 도와주는 괜찮은 친구입니다. 젊은 날에 멋진 철학자를 동무로 두는 것만큼 내 삶을 두근거리게 해주는 일도 없지요. 그 철학들을 통해 내 삶은 조금 더 자유로워질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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