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정치학
아브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S. 허먼 & 데이비드 페터슨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범벅 된 20세기를 지났기에 21세기는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를 걸었지만, 그 희망을 어김없이 작살내는 일들로 지구동네가 범벅입니다.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전쟁과 학살, 보도는커녕 다른 이들의 눈과 귀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묻히는 수많은 범죄들, 그리고 알려지더라도 사실과 달리 그릇되게 써먹히는 수두룩한 사건들, 그리고 그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며 이득을 보는 배불뚝이들.

 

『학살의 정치학』은 이런 그늘을 파고들어갑니다. 학살은 저 멀리 나쁜 놈들이 불쌍한 인간들을 죽이는 끔찍한 일이 아니라 우리 편이 자신의 권력과 이윤을 위해서 저 놈들을 이용하고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까발리죠. 그렇지만 언론은 이런 현실을 보도하지 않거나 치우치게 기사를 쓰곤 합니다. 오늘날 벌어진 학살들의 뒷모습을 조곤조곤 풀어낸 이 책을 읽다보면 엉터리 언론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의식은 삐뚤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누군가를 무더기로 죽여도 ‘우리’가 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괜찮지만 우리의 이익에 눈곱만큼이라도 줄일 만한 너희가 잘못을 저지르면 어마어마하게 뻥튀기한다는 것을 숱한 보기들을 통해 조목조목 밝혀냅니다. 서구 언론이 쓰면 그것을 받아쓰는 한국이었기에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알고 있던 ‘진실’이 온통 ‘거짓’이었다는 사실에 잠깐 휘청거릴지도 모릅니다.

 

여러 예가 있지만 그 가운데 르완다에서 일어난 ‘대학살’은 무척 충격입니다. 이 사건은 후투족이 후투족 출신인 대통령을 죽이면서까지 민중들의 분노를 일으켜 투치족을 학살하게 만든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호텔 르완다>도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요. 수잔 손택도 후투족이 투치족을 칼로 내려치는 사진을 두고 글을 쓸 정도였죠. 하지만 사정은 딴판이더군요.

 

대통령이 암살당하자마자 투치족 학살을 막는다면서 르완다애국전선은 들고 일어났고, 그렇게 100일 만에 국가권력을 쥐었습니다. 후투족이 투치족을 죽이기도 했지만 훨씬 많은 후투족이 학살을 당했는데, 이 사실은 다들 쉬쉬했습니다. 르완다애국전선의 뒤엔 미국이 있었고, 미국의 돈과 무기에 힘입은 투치족은 오랫동안 이 사건을 준비하였으니까요. 그렇게 학살자는 연립정권을 무너뜨리고 독재하면서 추켜세움을 받습니다. 수백만의 죽음을 뒤로한 채!

 

르완다에 관한 엄청난 거짓말은 이제 제도화되었고 서방세계의 공통된 이해(사실은 오해)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진실은 르완다의 폴 카가메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살자란 것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훌륭한 신화구조 덕분에 후견인 워싱턴의 보호 하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학살자의 이미지는 서방세계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존경스러운 이미지로 둔갑했다. 129쪽

 

코소보 사태도 세르비아가 얼마나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사람들을 죽이는지 서구 언론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보도를 해댔고, 한국에서도 그렇게만 전해졌죠. 하지만 세르비아가 오히려 ‘인종청소’를 당할 만큼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졌지만 이에 서구언론은 눈을 감은 채 세르비아만 ‘무시무시한 악당’으로 만드는데 힘을 쏟았더군요.

 

이런 일들은 차고 넘칩니다. 중남미 지도자들의 암살부터 동티모르 학살까지, 베트남 전쟁부터 이라크 침공까지 등등등. 그러나 실상과는 다르게 퍼져나가곤 하죠. 마치 이스라엘이 행짜를 부리지만 생뚱맞게도 아랍권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이런 ‘왜곡’ 속에서 세계지배는 이뤄지는 것이죠. 그래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에겐 누구나 침을 뱉지만 크메르 루즈가 권력을 쥘 수 있는 배경이었던 미국의 섬뜩한 폭격에 대해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대량살상무기를 없애겠다면서 ‘대량살상’을 저질렀지만 조금도 처벌을 받지 않는 미국과 이 ‘학살’을 지지한 국가들만 생각하더라도 세상은 뭔가 탈이 났고 이상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라크보다 미국이 더 가깝기에 후세인이나 빈 라덴은 ‘악마’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오히려 미국이 ‘그 악마들을 키워냈다 잡아먹은 괴물’이라면 어떨까요? 힘 센 이가 지금도 학살을 하고 있다는 것, 이에 짝짜꿍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21세기 인류의 모습이고, 바로 이것이 학살의 정치학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