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와 자본 - 인지, 주체-화, 자율성, 장치의 측면에서 본 생명과 자본 아우또노미아총서 32
조정환 외 3인 지음 / 갈무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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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는 ‘생명’으로서 살지만 정작 생명이 무엇인지는 별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들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인지’하고 있지만 정작 이 인지가 무엇인지는 묻지 않습니다. 얼핏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까면 깔수록 아리송하고 놀라운 생명과 인지를 네 사람이 뜨겁게 파 들어갔네요. 그렇게 빚어진 사유가『인지와 자본』으로 엮어졌습니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생명과 인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다룹니다. 내로라하는 수많은 학자들이 불려나오고, 그들을 통해 정치학, 생명철학, 과학사 뒤얽히며 생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도록 머릿속을 간질입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 사회학자들과 공학자들 사이는 데면데면함이 흐르기 십상인데, 철학과 과학이 만나 어우러질 때 얼마나 사유가 힘차고 탄탄해지는지 이 책은 보여주네요.

 

네 사람이 저마다 글을 풀어나가는 책이기에 하나로 아우르기는 좀 뭐한 지점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네 사람을 가로지르는 주제가 있는데, 바로 사회와 사람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은 무엇이고 어떻게 인간은 살아야 하는지 이들은 고민하며 글을 써내려 갔고, 글을 읽어나갈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됩니다. 문체가 딱히 까다롭고 어렵지는 않지만 내용이 묵직하니까요.

 

황수영은 베르그송을 꼼꼼하게 다루면서 생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진화해나갈 때 지성이 얼마나 중요하였는지를 드러냅니다. 유인원이었던 인간이 허리를 곧추 세운 것, 손을 쓰기 시작한 것, 언어가 생긴 것, 뇌가 발달한 것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지점인데, 이 과정에서 도구를 만들어내고 지성을 높아지면서 오늘날의 인간으로 변한 것이죠. 주어진 대로, 정해진 대로 살지 않고 무언가 창조와 변화를 만드는 것이 생명 진화엔 언제나 있었으며, 그래야만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과학사를 훑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 이정우는 생명현상들에 대한 설명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개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갈무리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것-되기로서의 주체-화를 얘기하며 존재론과 윤리론을 기똥차게 겹쳐냅니다. 그는 우리 안의 생명/기(氣)는 끊임없이 “당신의 사건을 살아라”고 속삭인다면서 무엇으로도 딱히 되돌려질 수 없는 이-것으로의 주체, 창조성으로 넘실대는 특이존재로서 자신의 사건을 살아내어야 한다고 주장하네요.

 

여기에서 ‘창조적’이란 존재론적으로 새롭고 윤리적으로 좋음을 뜻한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좋음이란 생체권력, 기호체제,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생명, 주체, 노동을 귀환시키는 행위임을 뜻한다. 이런 주체-‘화’야말로 바로 자신의 사건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0쪽

 

인지생물학자 마뚜라나를 설명하면서도 따끔하게 비판까지 해낸 최호영은 홀츠캄프의 비판심리학을 끌어들여옵니다. 인간이 그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실험하면서 인간을 보잘것없게 만드는 지배자들의 심리학과 다르게 홀츠캄프는 사회관계에 결정되어있지 않고, 움직이면서 사회 판 자체를 변화시키는 주체로서의 행위능력에 눈길을 보냅니다. 어떻게 해야 자율성을 갖춘 주체로서 살 수 있을지 상상하게 이바지하네요.

 

마지막으로 조정환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했으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속속들이 파헤칩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착취하여 상품을 만들어 잉여가치를 얻는 자본주의 개념이 더 이상 잘 먹히지 않는 요즘 시대에 장치라는 개념을 통해서 새롭게 자본주의를 설명해냅니다. 푸코가 말한 생명권력은 사실상 생물권력이며 훈육권력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차근차근 따진 대목은 무척 번뜩이네요.

 

자신의 인지는 곧장 자신의 삶이 되며, 자신의 인지에 따라 삶도 달라집니다. 사회환경에 따라 생명들의 움직임은 달라지지만 생명들의 욕망과 활동에 따라 세계는 바뀌죠. 이렇게 생명과 인지, 삶과 세상은 따로 놓을 것이 아니며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기에, 그리고 이왕이면 보다 싱싱하고 튼튼한 삶을 바라기에, 이런 책을 읽으며 자극받아 산뜻한 생각을 하고 쌈박한 행동을 해야 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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