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0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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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상하지 않나요? 요즘 사회체제를 모두 다 ‘자본주의’라고 알고 있지만 자본주의라는 말을 쓰기는 좀 꺼려할뿐더러 정작 자본주의가 뭐냐고 물으면 다들 어안이 벙벙하거나 얼버무리기 일쑤니까요. 봉건시대 왕이 지배하던 시대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도 ‘고려’라거나 ‘조선’이라고 알고 있었겠지만 왕의 이름을 입에 잘 담지 않을뿐더러 정작 왜 이렇게 사회가 짜여있고 이렇게 굴러가느냐고 물으면 어리둥절해하거나 공자 왈 맹자 가라사대를 종알거리며 그럴싸하게 얼렁뚱땅 넘길 테니까요.

 

마치 자본주의는 억압된 무의식 같죠. 옛날 사람들이 왕과 양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평소엔 이 질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듯 우리 또한 자본주의 안에서 살아가지만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질 못하니까요. 그러나 짓눌린 것들은 되돌아온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까지는 아니더라도 궁금증은 이어질 수밖에 없죠.『자본주의』는 바로 이 자본주의를 개념 짓고자 합니다.

 

지은이는 처음부터 ‘자본주의’란 말이 얼마나 아리송한지 보여줍니다. 세계 많은 경제학도들의 손에 쥐어진 800쪽 짜리 맨큐의 경제학엔 자본주의라는 말이 한 번밖에 나오지 않으며 이에 맞선다는 스티글리츠의 교재에서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을 정도죠. 그만큼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에 어떤 ‘나쁜 평가’가 덧칠되어 있기 때문에 에둘러 다른 말로 설명하거나 딱 부러지게 개념화하기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자본주의를 두고 경제학자들끼리 골머리를 싸면서 아옹다옹 티격태격하지만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본주의가 뭔지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이 시대의 신이자 아이돌이고, 신앙이자 권력이라는 걸! 그래서 자본주의인 것이죠. 자본주의는 뜻 그대로 돈(資)이 가장 중요한(本) 사회를 일컬으니까요. 지은이도 자본주의를 이렇게 적습니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란 ‘돈벌이’를 말하며, ‘자본주의 사회’란 이 돈벌이의 고려 앞에 인간 세상의 온갖 복잡한 고려와 고민들—윤리적, 미학적, 철학적,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감정적……—이 모조리 무시되는 사회를 말한다. 요컨대 ‘돈이면 다 되는 세태’를 일컫는 것이다. 철이 든 사람치고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일상 대화에서는 이렇게 쉽고 명확한 말이 어째서 개념 규정으로 가면 그렇게 맥을 못 추고 오리무중으로 헤매는 것일까? 13쪽

 

돈으로 모든 게 셈되고 돈의 회오리에 모든 게 빨려 들어가는 세계가 자본주의인 것이죠. 그러나 인간 세상이 본디 이렇지는 않았죠. 이런 사회는 ‘근대’에 이르러 벌어졌습니다. 예전에도 상인이 있었고 돈이 중요해지만 오늘날처럼 모든 걸 돈이라는 자막대기로 재고 후려치면서 돌아가진 않았죠. 아마 불과 100년 전 한반도에서 살았던 사람과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만나면 서로의 사고방식과 일상에 어이가 없을 겁니다. 현대인들은 전근대인들과 달리 합리성은 나아졌을지 몰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덤부터 요람까지 ‘장삿속’에 찌들어있으니까요.

 

이렇게 살아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수많은 움직임들이 터져 나왔고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을 ‘혁신’하면서 버텨가고 있죠. 자본주의는 망한다면서 다른 사회와 체제를 들먹이며 ‘변혁’을 얘기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무너질 거라는 ‘예언들’을 우습게 만들며 자본주의는 거푸 살아났으니까요.

 

그러므로 그저 자본주의를 미워하거나 자본주의는 끝날 수밖에 없다며 비웃음 짓기보다 자본주의가 뭔지 아는 게 먼저겠죠. 이 책 지은이 홍기빈은 자본과 자본주의를 ‘권력과 화폐와 생산의 결합체’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앞서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를 이 세 가지를 통해 얘기했지만 그 가운데 어느 하나에 더 무게를 두었다면 지은이는 이 셋을 다 중요하게 헤아려야 자본과 자본주의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하네요.

 

오늘날 살면서 조금만 자신을 더듬고 살피면 나의 삶은 자본주의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준을 넘어 지금 나의 욕망과 내 꼴마저 거의 판가름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오싹합니다. 정말 자본주의는 ‘나’라는 의식을 지배하는 무의식인 셈이죠. 나 스스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믿을지라도 자본주의라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일 따름이죠.

 

따라서 나의 앞날이 궁금한 사람은 별자리 운을 보거나 점집을 찾기보다 자본주의를 생각하고 묻고 따지며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마을 전체를 휘감으며 돌아가는 자본주의 안에서 태어났고 살아가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변화에 따라 우리 삶도 바뀔 테니까요. 자본주의야, 앞으로 어떻게 될 거니? 물론 이 물음의 답은 이 책이 아닌 우리네 삶에서 나타나겠죠.

 

21세기의 시점에서 사람들이 ‘자본주의’라는 말로 지칭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렇게 우리 전 지구 인류의 앞날이 지구적 규모의 자본 축적이라는 것과 불가분으로 엮여들어 있다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자각이다. 더욱이 2008년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지구적 규모의 금융 위기와 재정 위기는 이렇게 자본 축적과 지구 문명의 미래가 칭칭 엮여 있다는 우리의 예감을 더욱 실감나게 하고 있으며,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더욱 절실한 질문으로 제기하고 있다.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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