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살다 - 12년 9개월
이은의 지음 / 사회평론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삼성을 살다』를 삼성비판서라고 여기고 집어든 사람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눈썹 가운데가 찡그러질 수 있습니다. 어느새 ‘크나큰 악’처럼 되어버린 삼성을 질겅질겅 씹는 맛에 취한 나머지 이 책 또한 자신의 ‘안줏감’으로 삼으려 한다면,『삼성을 살다』는 그 욕망을 살며시 꺾어버리니까요. 이와 다르게 직장성희롱을 다룬 이의 글이라기에 솔깃한 나머지 침이 바싹바싹 말라가며 그 얘기가 언제 나오는지 책을 휙휙 넘기는 이들도 있겠죠.

 

그러나 ‘놀랍게도’『삼성을 살다』는 제목 그대로 12년 하고도 9달을 삼성에서 일한 사람의 경험일 ‘뿐’입니다.『삼성을 생각한다』가 김용철이 겪은 이야기였듯 이 책도 마찬가지로 삼성에서 청춘을 보내며 느끼고 고민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행여나 자신의 정치의식’에 변화가 생길까봐 인문사회 책은 전혀 읽지 않거나 정치경제문제는 잘 모른다면서 삼성이라는 낱말에 심드렁할지라도 지은이가 수다 떨듯 쓴 글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네요. 특히나 젊은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연애사와 가족관계를 잘 버무려 한층 더 글이 맛깔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초점은 ‘못된 삼성’이 아닙니다. 삼성과 소송하여 이기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여겨봐야 하는 건 ‘그녀가 싸우는 이유’, 바로 이것입니다. 여느 여자들처럼 인기 있는 연속극들을 본방사수하고 여행하길 좋아하며 신문에 사진이 실릴 때 초라하고 화난 것처럼 나오기보다 예쁘게 나오길 바라는 ‘평범한 직장 여성’이 다들 알아서 쉬쉬하며 기는 삼성과 맞장을 뜹니다. 그녀는 어떤 배짱이 있던 걸까요?

 

무엇보다도, 이건 그냥 나를 위한 싸움이었다.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오롯이 내 의지로 하는 싸움이니, 이 싸움이 내 의지에 반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당장에라도 그만할 수 있었다. 책임져야 하는 마음이 많아지는 만큼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271쪽

 

여성으로서 당하는 설움과 노염들을 다른 여자들에게 되풀이되지 않거나 적어도 또래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싸운 것도 있겠으나, 그보다 ‘나’를 위한 싸움이라는 말에 어떤 ‘바뀜’을 느낍니다. ‘정의’라든지 ‘민주화’라든지 뭐 대단한 ‘이념’을 위해서 ‘나의 희생’을 당연하게 믿고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놓던 몸가짐은 아예 물러난 것이죠.

 

다시 말해, 한국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닥쳤으며 그에 따라 새로운 윤리가 빚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다름 아닌 ‘나의 소중함’입니다. 지은이가 여러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싸운 까닭도 ‘정의’나 ‘민주주의’같은 것들을 그 자체로 떠받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싸운 것이죠. 나의 욕망을 떳떳이 드러내는 ‘자유의 사회’로 접어든 것이죠.

 

이런 ‘나의 소중함’은 나뿐인 이기주의라기보다는 서구근대화의 영향에 따라 ‘자유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오래 살아온 나이든 이들은 자신이 따르는 집단에 자신을 끼어 맞추며 살았다면 이젠 삶의 틀이 변한 것이죠. 국가도 중요하고 손윗사람의 분부도 귀담아듣겠지만 이에 앞서 ‘나의 욕망’을 헤아리고 이를 누리는 것이 채워져야 하는 시대입니다. 좋든 나쁘든 이 자유주의의 흐름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매우 자연스럽고 하나의 도덕처럼 자리 잡았죠.

 

한국에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휘두르는 배불뚝이들이의 허튼소리처럼 되어버려 ‘자유주의’라는 말에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데, 아직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대단한 진보성’을 갖고 있기에 너무 차갑게 대할 수만은 없죠. 지은이도 겪었듯, 어디서 주워들은 같잖은 용어들을 중얼거리며 좌파랍시고 흥분만 하는 이들보다 어떤 면에선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상대가 아무리 무서워도 입 다물지 않는 자유주의가 이 사회에 필요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전 제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미처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라 옷을 후줄근하게 입은 거, 가방을 바꿔들고 나오느라 BB크림도 없어서 민낯을 들이미는 거, 피곤했던 하루라 꼴이 초췌한 거... 제가 마음에 걸리는 건 이런 겁니다. 저한테 생긴 일이나, 제가 걸어가는 과정이나, 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잖아요? 저는 그걸 알고 있을 뿐이에요.” 319쪽

 

삼성이 정해진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지은이는 법정 소송까지 벌이게 되었다고 밝힙니다. 성폭력에 따른 피해보다 더 고통스러운 ‘2차 피해’들과 그밖에 무마시키려는 온갖 회유들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맞설 수 있었던 것도, 여러 등쌀과 왕따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개 떨구지 않은 까닭도, 자기 스스로 당당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죠. 남들의 시선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나의 행동을 나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싫은 걸 참으며 끙끙대기보다 내키지 않는 건 싫다고 말하는 ‘자유의 윤리’를 느낄 수 있네요.

 

삼성이라는 말 안엔 한마디로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와 욕망들이 뒤범벅되어있습니다. 이건희 일가가 지배하는 재벌기업 삼성부터 많은 이들이 뜨겁게 일하는 직장으로서의 삼성까지, 한국의 자랑이랍시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분칠된 삼성부터 국적을 넘어선 세계자본으로서의 삼성까지, 헌법에서도 보장하는 노조를 막고자 그악스럽게 탄압하였던 삼성부터 젊은이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기업으로서 삼성까지,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서 삼성부터 백혈병으로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의 삼성까지, 이 수많은 엉킴들 사이에서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길을 지은이는 삶으로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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