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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박민규의『더블』은 살짝 뜨악할 수가 있습니다. 예전부터 글에 쭉 스며있던 차가운 웃음이 이제는 대놓고 넘실거리기 때문입니다.『핑퐁』에서는 아예 이 세상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자고 하지만 그럼에도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가냘프게나마 희망이 서려있었다면 이제는 그마저도 드러나질 않습니다.
이건 박민규가 세상을 더 캄캄하게 읽어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이와 아울러 박민규라는 창에 비친 한국의 풍경이 그렇게도 서글프고 섬뜩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낌새입니다. 책에 실린 한숨은 바로 나와 우리 이웃들의 가슴 속 소리니까요. 왜 사는지 알지 못한 채 돈만을 쫓으며 세월을 보내는 우리네 일상을 박민규는 까발립니다.
돈, 돈 주면 되잖아... 그랬다 돈, 돈만 받으면 문제없지만 모르...겠다, 왜 이렇게 상태가 안 좋은 인간들이 늘어나는지... 결혼도 하고 좋은 차도 굴리는 인간들이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후...꽁초를 던지고 밤길을 다시 바라본다. 모르...겠다, 다시 기침이 터져나온다. 쿨럭쿨럭... 난 아무래도 폐암인지... 아니, 저 밤길을 달리고 하루하루 그저 돈만 받으면 문제없지만... 모르겠다, 형 그 새끼 찾아 죽이지 그랬어요? 야야, 내가 죽는 게 더 쉽더라야... 모르겠다, 왜 미국으로 도망간 인간은 잡을 수 없는 건지... 모르겠다. 모... 르겠다, 이러고 왜 사는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230쪽
오직 물질과 소비만이 사람들을 휘어잡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시대이자 너무 깊은 생각과 진지한 고민은 부담스럽다고 너도 나도 손사래 치면서 엉뚱한 것들에 홀려 시시덕거리는 사회입니다. 살다보면 삶의 의미가 궁금해지고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곰곰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어느새 이런 물음들은 짓눌리지요. 쳇바퀴 돌 듯 살아갈 때 그 흐름을 막아서는 것들은 죄다 거북하고 찝찝하니까요. 그냥 ‘생각 없이’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발을 놀리려는 ‘관성의 욕망’은 이미 우리 삶을 집어삼켰습니다.
그래서 불쾌한 것입니다. 여차저차, 그간의 일들을 나는 늘어놓았다. 해서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냥 저런 게 떠 있으니까요.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데... 예컨대 일, 일, 일... 하는데 실은 저런 게 떠 있는 것입니다. 돈, 돈, 돈, 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래버리니... 문득 이젠 예전처럼 살 순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밥 볶는 얘길 좀 했기로서니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입니까? 인간이 좀
호올스
하면 어떠냐는 것입니다. 왜 저런 게 나타나 기분을 복잡하게 하는지, 또 하필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뭔지... 불쾌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존재의 고민, 그런 건가? 잘은 몰라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어차피 적응은 하겠지만... 적응할거면서 왜 그래? 156~157쪽
이념이 죽어버리고 이념을 갖지 않는 게 이념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지난날의 뜨거움을 간직한 이들에게 남는 건 ‘회한’이나 ‘냉소’입니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힘겹게 싸운 끝에 주어진 시대는 “소녀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슬픔과 노염으로 고개를 떨군 이들 뒤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죽어간 이들의 진실을 보았고, 살아 진실을 논하는 자들의 거짓을 참아야 했었다. 변질과 변절, 변이와 변태... 적도 동지도 사라진 세상 속에서 그는 홀로이 외롭고 외로웠다.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 세계...다시 만난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108~109쪽
그래서 그럴까요? 어느 때보다 종교가 사람들 일상을 파고듭니다. 이 소설집에서도 개신교의 콧김과 입김이 잔뜩 스며있는데, 심지어는 글을 나눌 때 십자가 표시를 쓰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우리네 일상이 교회당의 손아귀에 놓여있다는 얘기겠지요. 돈만을 쫓지만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과 세상살이에서 받는 어마어마한 괴로움을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풀고 있으니까요.
연예오락과 종교광신은 힘겨운 사람들을 달래주는 척 하면서 기운을 빼앗아가고 정치의식을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알랑방귀들입니다. 그 냄새에 취할수록 체념과 짜증으로 소용돌이칠 수밖에 없다는 걸 박민규의『더블』은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