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 김서영의 치유하는 영화읽기 정신분석과 미학총서 5
김서영 지음 / 은행나무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도 높지만 그 못지않게 깔봄과 업신여김도 옴팡진 듯합니다. 자연과학에 푹 빠진 이들은 정신분석이 체계를 갖추지 못한 헛소리라며 짓뭉개고 사회과학을 좋아하는 이들은 정신분석이 넓은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칸막이처럼 쓰인다고 성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설렁설렁 얘기를 들어주다가 어쭙잖게 이론을 들먹이는 짓거리를 걸러낸다면 정신분석은 얼마든지 ‘나’와 ‘사회’를 같이 바꿔낼 수 있는 지렛대가 됩니다.

 

정신분석은 그 환원적인 분석과 수구적 태도에 의해 자본주의의 하수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상징계로 이행하는 과정의 고통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파괴력과 다르지 않다. 거세라는 용어로 표현된─편안한 것을 버리고 변화를 선택하는─행위가 정신분석의 기본 전제라는 사실은 이미 앞에서 강조하였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닫힌 체계를 전복시키기 위한 전제이다.『라캉 읽기』290쪽

 

한편 정신분석에 대한 지나친 떠받듦도 있지요. 오이디푸스, 남근, 실재, 무의식, 전이 따위를 아무 데다 가져다붙이며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게 쓴 글들도 드물지 않더군요. 그러나 예수가 그렇듯 맑스가 그렇듯 누군가를 섬기면서 그것만이 “길”이자 “진리”라 믿는 건 진리에서 멀어지는 길이지요. 프로이트든 라캉이든 그들의 글이나 말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걸 잘 써먹어서 보다 더 산뜻한 삶을 살고 더욱 즐거운 사회를 열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뜻을 잘 녹여낸『영화로 읽는 정신분석』[은행나무. 2007]은 영화들을 살갑게 다루면서 정신분석의 세계로 부드럽게 이끌어주네요.

 

정신분석은 따로 어딘가에 가서 전문의에게 비싼 돈을 내어 상담을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정신분석은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잘못된 일들과 괴로운 기억, 약해진 모습과 숨기고 싶은 사실들을 하나씩 대면하여 다시는 이 괴로운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막”고 “자신이 잘하는 것과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일들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스스로에게 최선의 길을 찾아 주”는 일이니까요.(92쪽) 나 혼자서 곰곰 생각에 잠겨있을 때나 벗들과 가슴 속 얘기를 꺼내서 나눌 때 자신도 모르게 정신분석을 하는 셈입니다.

 

멈추어 자신에게 질문하자: “너 괜찮니?” 나는 현재 마음이 편하고 하는 일이 즐겁고 삶의 방향성이 있는가? 아니면 무엇인가 괴롭고 불편하거나 또는 어떤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가? 혹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참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가? 가끔씩 멈추어 서서 나 자신에게 내 몸과 마음이 평안한가를 질문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이와 같이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정신분석과 함께 살고 있다. 정신분석이란 자신의 상태와 행동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보살피는 과정이다. 91쪽

 

그래서 정신분석을 더 깊이 하면 할수록 슬기와 용기가 생깁니다. 내 안에 미처 몰랐던 나를 만나면서 더 싱싱한 나로 달라집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헤아릴 수 있는 힘이 생기죠. 사람이기에 끝없이 환상에 휩싸이는데 정신분석을 하면 휩쓸리지는 않게 됩니다. 남들과 어울리지만 남들의 욕망을 무턱대고 욕망하지 않는 자유가 생겨나죠. 싫은 건 싫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고 후회의 쳇바퀴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바지합니다.

 

정신분석은 우리에게 ‘파투 놓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 파투가 나도 된다는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미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겠지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다른 사람의 욕망에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234쪽

 

그렇다고 정신분석은 나만 들여다보면서 자아를 다독이는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통해 너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지요. 내 안이 부글부글 끓고 어지러우면 남에게 신경 쓰지를 못 합니다. 정신분석을 통해 내 안의 일렁임이 가라앉으면 그 잔잔함 덕분에 남의 눈물이 보이고 누군가의 한숨이 들리죠.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나를 북돋기, 조금 더 의젓하게 남을 배려하기, 나에게서 세상으로 넘어가기, 이것들이 정신분석입니다.

 

내 안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에 상황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상관없이 살게 됩니다. 진정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이기심과 욕심, 왜곡된 감정들이 채워지고 가는 곳마다, 하는 말마다 모두 다른 이에게 누가 됩니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사실 나밖에 모른다는 말은 엄격히 말해 어폐가 있습니다. 그/그녀는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나와 남과 상황을 분석하면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큰다’, ‘성숙한다’, ‘어른이 된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배려라는 것은 사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바로 그것이 정신분석입니다. 250~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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