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 박가분의 붉은서재
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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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요즘 젊은 것들』[2010. 자리]에서 박가분의 얘기는 무척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군복무를 마치는 대로 한국사회에 ‘백태클’을 날리겠다는 그의 말엔 발칙함을 넘어서 벼려진 마음맺음을 보여주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요즘 들어 그가 펼치는 주장들과 글들은 수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세례를 듬뿍 받은 그는 단순히 ‘외국지식들’을 사들여와 얌전히 팔고 있는 이들과 다르게 그 이론들을 ‘지금-여기’에 쓰려고 합니다. 헤겔과 맑스를 밑절미 삼아 한국사회를 바꾸고자 목소리 높이며 ‘한국의 지젝’이라거나 ‘젊은 이진경’ 등으로 ‘벌써’ 불리고 있습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머잖아 그의 이름이 사람들 가슴에 불길을 지피겠지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어떻게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박가분

 

‘88만원세대’란 꼬리말은 젊은이들의 현실을 까발리는 효과는 있었지만, 지은이들의 뜻과는 달리 올가미처럼 젊은이들을 얽매기도 합니다. 88만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제모순을 드러내었고 사회담론으로 올렸지만, 그 숫자는 젊은이들 얼굴에 그늘을 짙게 드리웠지요. 그러다보니 젊은이들 스스로도 주눅이 들었고 사회에서도 젊은이들을 ‘불쌍한 녀석들’로 여기기만 합니다.

 

그러나 기성세대라고 다 낡고 구린 게 아니듯 ‘88만원 세대’라고 해서 어깨 축 처진 이들만 있는 건 아니지요. 대중매체에서 다루지 않아서 그렇지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고자 팔 걷어붙인 젊은이들이 수두룩합니다. 나아가 이 사회판마저 갈아버리려고 눈에 초롱불을 켠 젊은이들도 많지요.

 

박가분이 그런 젊은이인데, 그가 블로그에 쓴 글들을 모아 낸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2010. 인간사랑]는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그 까닭은 “20대는 불행하고 흔들리고 있다”는 표상을 깨부수며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어떻게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니까요. 청춘이 얼마나 대단한 힘인지 어디까지 생각의 날개를 펼 수 있는지, 박가분의 글은 아주 빼어나게 보여줍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 기름을 부으며 지금까지도 쉽지 않은 외국정치철학들을 주로 번역하는 출판사 <인간사랑>의 대표조차 박가분의 글을 읽으며 대학원박사과정에 있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20대 중턱의 학부생이 쓴 글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이럴 만치 박가분의 글은 어느 교수보다 훨씬 뜨겁고 여느 지식인보다 되우 탄탄합니다. 박가분은 20대 대학생들을 통째로 지질이로 만들어버리는 사회담론을 북 찢어버립니다.

 

젊은이들이 옮겨야 하는 생각의 발걸음

 

한쪽에선 88만원이다, 청년실업이다 아우성이지만, 다른 쪽에선 젊은이들이 사치품에 눈이 멀고 소비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가엾다는 안타까움과 젊은이들이 개념 없다고 조리돌림이 엉겨있는 곳이 한국사회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어정쩡한 다독임과 어이없는 손가락질을 당하기보다 ‘생각 있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젊은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없다고!

 

다시 말하면, 젊은이들 사이에 어떤 때보다도 떡하니 계급으로 갈라져있습니다. 얄팍한 계급상승과 알량한 허영을 욕망하게끔 부추기지만, 사실, 한국은 이미 신분사회이고 계급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릅니다. 암만 알바를 해서 사치가방을 둘러매고 빚을 내어 차를 끌어도 젊은이들의 앞날은 ‘거의’ 판가름나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부모가, 당신의 미래를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생각의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한국사회 안에서 써버림을 쾌락으로 느끼며 자랐기에 자신이 욕망하는 만치 써버릴 수 없는 ‘88만원’을 받으니 울컥하며 괴로워하는데, 오히려 박가분처럼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괴로움이 사회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 괴로움을 무릅쓰면서 사회를 바꿔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지금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가난하다’는 게 문제라면 오히려 자본가들과 관료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부모들에게 과감하게 ‘가난해져도 좋다’고 외치는 게 급선무이며, 그것이 더 타격이 클 것입니다. (…) 오히려 그것이 진짜 ‘문제’이며 지금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적 상황의 첨예한 모순이지만, 그러한 문제에 대처하는 우리가 ‘연대’하기 위해서라면, 앞으로 달라질 우리 사회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13쪽

 

참을 수 없는 시대의 가벼움에 주먹감자를 날려야

 

두말할 거 없이 박가분의 글이 다 옳거나 누구에게나 잘 읽히며 고개 끄덕이게 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날 있어야 하는 건 어설픈 회의가 아니라 단호한 이행이며 레닌처럼 철저한 반복을 해야 한다는 대목에선 한줌도 안 되는 한국의 좌파 안에서조차 여러 말씨름을 낳고 손사래를 받겠지요.

 

하지만 그가 외치는 ‘대의(Cause)’는 젊은이라면, 이 사회의 앞날을 생각하는 이라면, 누구나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cause엔 원인이란 뜻 뿐 아니라 주의나 주장, 대의란 뜻이 있는데, 이 사회가 휘청거리고 비틀거리는 ‘원인’은 ‘대의’가 사라졌기 때문이니까요.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지만 어느덧 사람들은 ‘이 정도’에 만족하며 허리띠를 푼 결과, 한국사회는 지금 요 꼴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커다란 뜻을 품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마음가짐이 매듭지어져야 합니다. 그 과정이나 방법이 꼭 80년대와 똑같을 순 없겠지요. 여건과 형편이 달라졌으니까요.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건 이 사회의 상스러움과 메스꺼움을 불살라버려야 한다는 사실이며, 이걸 이루기 위해선 ‘참을 수 없는 시대의 가벼움’에 주먹감자를 날려야 합니다. 죄다 응석부리려는 오늘날, 깊이와 묵직함을 다시 불러들어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패기 있는 젊은이답게 발랄하고 깜찍한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대단히 미안하다. 하지만 모든 젊은이들이 김연아나 박태환이 아닌 이상 앞으로 그럴 발랄함을 기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것은 나의 책임도 그리고 우리들의 책임도 아니다. ‘발랄함’과 ‘개드립’에 대한 찬양이 유행하는 이 시대 속에서 이 책을 바로 앞으로의 젊은이들의 새로운 ‘반시대적인 진지함’을 위해 바친다. 17~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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