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국가 권력의 노예고, 재벌들의 노예다. 당신들은 이중 노예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당신들의 비극이고, 절망이다.

 

이번에 재벌의 재산권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이 또다시 벌어졌다. (…) 왜 그런 사태가 거듭 벌어지는 것일까. (…) 나라의 주인이고 이 사회의 주인인 국민과 대중들이 그 끔찍한 사건을 방관하고, 묵인했기 때문이다.

(…)

어떻게 그런 황당무계한 불법 범죄 행위가 무죄가 될 수 있는가? 국민인 당신들이 노예이고 싶지 않다면 이 점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당신들 모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아야 한다. 그 엄청난 경제 범죄를 무죄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비자금의 막강한 힘이었다.

(…)

그들은 그 탈세한 검은 돈을 이 나라의 모든 권력 기관에 다 뿌렸다. 정치인, 법조인, 정부 관료들은 물론이고 언론인, 학자들까지도 그 돈을 받아먹었다. 그러나 놀라지 마라. 재벌을 감시 감독해야 하는 검찰, 국세청, 공정위, 금융감독기관도 모두 그 돈을 달게 먹었다. 이 사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국가의 모든 권력이 재벌의 손아귀에 들어가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무죄가 될 수밖에. 좀도둑은 포승 받아도 큰도둑은 상 받는다. 우리의 속담이다.

(…)

재벌들이 저지르는 그 불법 행위는 분명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범죄이고,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씌워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재벌들의 경제 범죄에 대해 너무나 관대했다. 왜 그랬을까. 기업들이 잘 되어야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순진함을 넘어 바보 같은 기대고 희망이었다. 그건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가 취해 있었던 환상이고 몽상이고 망상이었다.

(…)

우리가 그동안 일방적으로 품어 왔던 그 기대와 희망은 바로 자발적 복종이었다.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청한 것이다.

긴 인류의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의 우리들 자신이었다.『허수아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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